군에서 사법시험 합격한 진수일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법시험은 가장 어려운 시험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군복무 중이던 201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군 안팎에서 화제가 되었던 진수일 변호사. 네 차례나 쓴잔을 마셨던 그가 군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부대장의 배려로 다시 도전한 사법시험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을 모아놓고 ‘사회생활과 군생활 중 어느 쪽이 더 편했어요?’라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당연히 사회생활이 더 편하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군생활이 편했다. 사회에 있을 때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이른바 고시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고달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 형,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방 하나에서 지낼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자연히 부모님은 고교 때 반에서 1, 2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하던 내게 많은 기대를 두셨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내가 무슨 공부를 해야 부모님께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했다.

결국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기로 하고 2005년 대학 입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학과도 아닌 내가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법학과목을 35학점 이상 이수해야 응시자격이 주어지기에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법학과목을 수강해야 했다. 사법시험의 합격률은 평균 3%에 불과하다.

만만찮은 실력을 갖춘 수재들과의 경쟁에서 이처럼 희박한 확률을 뚫고 합격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게다가 하숙비나 식비, 교재 구입비나 학용품 구입비 등을 모두 내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꼬박 만 5년 동안 시험공부에 매달리다가 2010년 6월 2차 시험을 치르고 3주 뒤 군에 입대했다. 5주 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내가 배치된 곳은 강원도 원주였다. 그리고 2010년 10월 말,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불합격이었다. 평균점은 커트라인보다 높았지만 한 과목이 기준점에 미달되어 불합격하고 만 것이었다. 나 자신은 물론 주위의 기대도 컸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런데 내 사정을 알게 되신 부대장님께서 내가 본부대에서 도서관 관리병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 행정병으로 일하는 틈틈이 시험공부를 하라는 배려였다. 부대장님의 자상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감사했다.

국방일보 사진 제공, 일러스트 이가희 기자
국방일보 사진 제공, 일러스트 이가희 기자

서너 시간씩 자며 새벽근무를 자청하다
흔히 행정병은 각종 근무나 힘든 훈련에서 열외하는 비교적 편한 보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 부대는 사정이 달랐다. 혹한기나 유격, 화생방, 소총사격 등 각종 훈련을 빠짐없이 받아야 했으며, 특히 20km 행군은 세 달에 두 번 꼴로 실시했다. 또 막힌 배수로 뚫기, 나무 심기, 잡초제거, 재활용 쓰레기 정리 등 부대정비 작업도 거의 매일, 하루 반나절씩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도서관 관리병이 생각만큼 여유로운 보직인 것도 아니었다.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장병들을 위해 일 년에 1,300권 정도의 우수도서를 보내준다. 매 분기마다 이 책이 들어오는 날이면 도서관 관리병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빠진다. 우리 도서관의 장서는 약 1만 2천 권이었는데, 새로 온 책들을 꽂을 공간을 확보하려면 1만 2천 권의 책을 모조리 꺼내 새롭게 정리해야 했다. 새 책들을 장병들이 쉽게 찾아 대출할 수 있도록 분류해 바코드를 붙이고, 책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 입력하는 일도 해야 했다. 그러다보면 하루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하루 3~4시간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어떤 시험인가. 난다긴다 하는 수험생들이 꼬박 몇 년 동안 먹고 자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도 붙을까 말까 하는 시험 아닌가. 하루 3~4시간 공부해서는 절대 합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등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연등이란 군대에서 잠자리에 드는 밤 10시 이후에도 2시간 정도 독서실에서 공부나 개인업무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다. 종일 업무와 훈련, 작업 등으로 피곤한 몸을 커피로 깨워가며 책과 씨름했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밤 10~12시에 불침번이나 보초 등 근무를 서야 하는 일이 있으면 사정을 설명하고 새벽시간에 근무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새벽 근무는 다들 기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모두가 흔쾌히 내 청을 들어줬다.

육군 규정상 장병들의 취침시간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8시간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데 2시간, 근무 서는 데 2시간, 근무 나가기 전 준비하는 데 30분, 다녀온 후 옷 갈아입는 데 30분을 쓰고 나면 실제 취침시간은 3~4시간에 불과했다.

잠이 부족해 힘들 때도 많았지만,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버텨나갔다.

시간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이렇게 하다 보니 매일 5~6시간 정도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청소가 끝나는 8시 50분부터 저녁점호가 있는 9시 30분까지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샤워를 다른 병사들보다 먼저 했다. 다른 병사들이 10분 정도 걸리는 샤워를 5분 만에 끝냈다. ‘5분 만에 어떻게 샤워를 끝내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훈련소에서라면 5분 만에 샤워에 빨래까지 마칠수 있다. 이 시간 동안 간단한 서술형 문제를 두 개씩 풀었다. 행군을 할 때도 ‘이 힘든 걸 또 해야 해?’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미리 생각할 주제를 준비해 머릿속으로 되풀이해 외웠다.

그렇게 꾸준히 공부하며 2차 시험 준비를 해나갔다. 사법시험 2차는 나흘 동안 치러진다. 당시 내게는 9박 10일의 정기휴가가 있었는데, 2차 시험에 대비하려면 휴가기간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특급전사 선발제도를 알게 되었다. 사격 20발 중 18발이상 명중, 3km 달리기 12분 30초 이내 완주, 팔굽혀펴기 2분에 72개 이상, 윗몸일으키기 2분에 82회 이상을 달성하면 특급전사 ‘금장’을 획득하고, 4박 5일의 휴가를 얻는 제도였다. 나는 다른 병사들보다 일곱 살 이상 나이가 많았지만 꼭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결국 금장을 획득해 4박 5일의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2차 시험을 열흘 가량 앞두고 휴가를 나와 마지막 정리에 돌입했다. 군에서와는 달리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행복했다. 주변 고시생들은 힘들어했지만, ‘2주 전 그 힘들다는 40km 야간 행군도 하고 왔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2011년 6월 22일부터 나흘간 치러진 2차 시험에서 나는 1년 여 동안 쌓아온 모든 실력을 유감없이 쏟아부었다. 불합격한다 해도 아무런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4개월 뒤,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합격자 명단에는 내 이름 석 자와 수험번호가 당당히 올라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군생활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바쁜 중에도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의 싸움, 업무와 훈련으로 녹초가 된 몸을 채찍질한 육체와의 싸움, 그리고 ‘군대에서 공부를, 그것도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란 불가능하다’라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이었다. 우리가 군에서 보내는 20대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1분 1초가 아까운 인생의 황금기를 어떻게 하면 더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내 군생활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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