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비 A. 님리 ANTHONY A. NIMELY 라이베리아 교육부 차관

안토니 A. 님리 차관과의 두 번의 만남.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을 맞아, 그가 전한 메시지가 더욱 귓전에 맴돈다. 지구 반대편 라이베리아 내전의 현장에서 자라난 그가 전해준 그의 성장기는 거의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반면 전쟁을 겪었지만 빠른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기자는 저절로 감사함을 느꼈다. ‘강압적인 리더십은 반드시 복수와 반란을 불러온다’며,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마인드가 필요하며, 그런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의 이야기는 울림을 남겼다. 부디 그의 바람처럼 라이베리아와 대한민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사회복구까지 이뤄질 수 있기를!

라이베리아 내전으로 세살난 아이였던 안토니 A. 님리는 아버지를 여의고 학교 문턱을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는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소위 ‘결손 가정의 아이들은 비뚤어지기 쉽다’는 말은 불행 중 다행히도 소년을 피해갔다. 소년에게는 이웃집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웬 옆집 아저씨가 무슨 도움을?’ 하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아저씨는 자주 텔레비전을 켜놓고 라이베리아 국가상황을 이야기해 주셨고, 안토니 A. 님리는 ‘그런 아저씨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고 회상한다.

“저는 아저씨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국가 정세를 잘 아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저씨처럼 교육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내전이 일어났고 그 전쟁으로 사회 기반이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잔인한 폭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시민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피난민으로 거리에 내몰리기도 했다. 국제 사회는 ‘라이베리아의 지식층이 몰살되어 라이베리아 국가가 다시 회생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당시 대학에서 경제학도이던 안토니 A. 님리는 전쟁을 피해 잠시 가나로 피난을 떠났다. 그는 피난민캠프의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 찾아가서 경제, 수학, 영어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근에 있는 가나 대학을 둘러보곤 했다.

라이베리아 학교를 찾아가 교육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굿뉴스코 라이베리아 단원들.
라이베리아 학교를 찾아가 교육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굿뉴스코 라이베리아 단원들.

꿈이 있었기에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가나에서 또래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슴 아팠습니다. 제 꿈은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라이베리아를 위해, 그리고 라이베리아 국민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쟁으로 무너진 교육 현장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또 했습니다. 꿈꾸던 것들을 어떻게 이룰지,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되뇌었습니다.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여전히 있다’고 말입니다.”

어렵사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던 청년 안토니 A. 님리는 사라지지 않는 꿈과 신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숙명처럼 여겼다. 2004년 전쟁이 끝나고 다시 라이베리아로 돌아왔을 때 못다 이룬 학업에 매진하여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꿈이 한 발 앞으로 다가온 걸 느꼈다.

“물론 공부를 하면서 돈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라이베리아로 돌아오면서 나라를 위해 공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뤄야 하는 목표와 행동이 좌지우지左之右之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부 차관이 된 안토니 A. 님리는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기 위해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학창시절에 1등을 하고 싶다면, 정말 1등을 해야 한다면 수업시간에 쉽게 졸수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아는, 정확한 ‘마인드’가 없이는 오랫동안 공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 잠재력과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자신이 할 일도 찾아서 하게 됩니다.”

내전으로 사회 기반이 무너져 가난한 라이베리아 아이들이 굿뉴스코 단원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전으로 사회 기반이 무너져 가난한 라이베리아 아이들이 굿뉴스코 단원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교실보다 훌륭한 교사를
교육자로서 라이베리아의 사회를 새롭게 재건할 젊은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운 안토니 A. 님리 교육부 차관. 그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한국의 성장 동력을 ‘교육’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는 라이베리아에서 우리의 선례를 벤치마킹하길 원했다. 현재 그는 라이베리아 국민을 교육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 등용’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한국에는 이미 전자 칠판에 책상마다 컴퓨터가 있는 교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라이베리아에 아름다운 교실이 없더라도 훌륭한 교사가 있다면 학생들이 현재 처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도움을 받아 교육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라이베리아에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교사들과 미국 피스코 교육 봉사자, 한국 굿뉴스코 해외봉사자들이 꾸준히 활동 중이다.

“지금 라이베리아에는 한 세대가 목숨을 잃어서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해 라이베리아의 교육에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재를 교육해내는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그는 한국의 교육자들이 라이베리아 학생들에게도 멘토가 되어주길 바랐다.

안토니 A. 님리 차관이 말하는 리더십이란?
그는 ‘리더란 정부의 높은 관료, 즉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더라도 사회 붕괴 현상을 막고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리더의 역할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올바른 본보기를 보여야 해요. 어린아이와 젊은이들은 자신이 자라면서 본 것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게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매일 술에 취해 집으로 온다고 가정해봅시다. 내가 아내에게 뭔가 말하면서 때리고 아이들은 전혀 신경을 안 쓴다고 할 때 나는 동시에 두 가지를 무의식중에 교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술에 취해서 들어와도 돼. 이게 여자를 다루는 법이야. 여자는 때려도 돼’ 하고 말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이 리더라면 가족을 안내해줘야 합니다. 리더는 관용적이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길러야 하고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 모든 것에 마음 쓸 줄 안다면 더 성숙한 리더가 될 준비가 된 것이죠.”

안토니 A. 님리 차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의 절실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교육열’이 급상승했고, 지식 있는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야학 선생이 되어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배움을 나눠주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지식이 넘쳐나서 교사의 권위가 추락했다. 부디 라이베리아에서는 더디더라도 마인드 교육이 함께 이뤄져, 인성이 훌륭한 인재가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안토니 A. 님리
라이베리아는 현재 내전으로 인해 한 세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라이베리아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는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열린 월드캠프에 참석한 이후,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인드 교육’임을 절실히 깨닫고, 라이베리아 교육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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