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케냐의 방송국 PD로 일하는 송태진 씨가 그만의 시각으로 아프리카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집 주소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이라고 한다. 한 케냐 청년의 재미난 실구매담을 이번호에 담는다.

아프리카에 등장한 새로운 시장
아프리카 전통 시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어깨 쭉 펴고 걷기도 힘들 만큼 빽빽이 몰린 사람들과 축축한 진흙 바닥 위에 서 있는 곧 무너질 것처럼 허름한 점포들, 손님을 부르는 장사꾼들의 대찬 고함소리와 어딜 가나 그득한 꼬릿하고 퀴퀴한 냄새. 불끈한 근육을 드러낸 짐꾼과 징징대는 아이, 깔깔 웃는 아낙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도둑과 사기꾼들.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 빨래통처럼 혼잡스럽지만 한편으론 아프리카의 활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찾고, 흥정을 하고, 바가지를 쓰는 건 아프리카 생활에서 겪는 즐거움이다.

최근 아프리카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자상거래가 그것. 전자상거래는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있다. 분쟁과 기아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21세기 들어 초고속 성장에 돌입했다. 수입이 늘며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비 이외의 여유자금이 생기게 된 사람들은 중산층을 형성했고 소비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들이 아끼고 모은 돈으로 가장 먼저 구입하는 물건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 컴퓨터 같은 IT 기기다. 아프리카에서 2013년 한 해 동안 판매된 스마트폰보다 2015년 7월 한 달 동안 판매된 스마트폰이 더 많다. 그만큼 스마트폰은 빠르게 보급되고 있고 한 조사에 의하면 2025년이면 아프리카 내 인터넷 보급률은 50% 이상, 스마트폰은 3억 6천만 대가 보급될 것이라고 한다. 고속 경제 성장과 소비 욕구가 강한 중산층의 등장, IT 기기의 대대적인 보급은 장차 뜨거운 아프리카 전자상거래 시장을 필연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주미아 광고 화면.
주미아 광고 화면.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전자상거래
아프리카 전역에 3억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중산층이 형성되며 거대한 소비시장이 만들어졌다. 세계의 기업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려 앞다퉈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고, 그에 발맞춰 전자상거래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도 쇼핑센터가 많지 않고 매장에 가기까지 교통이 불편하기가 일쑤다. 막상 찾아가더라도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없거나 짝퉁 모조품으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고가품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한 면에서 확실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갖추고 집까지 배달해주는 전자상거래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생소한 개념인 온라인 쇼핑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물건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웹사이트에 기재된 주소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고 생각하고 직접 돈을 들고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했고, 상품을 배달하는 운전기사들이 물건을 빼돌리거나 험하게 다뤄 부서트리기도 했다.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이 위조지폐로 결제하는 일도 왕왕 발생했다. 그러한 성장통을 겪으며 아프리카의 전자상거래는 현지 사정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초기에 이베이나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 쇼핑 몰에서 이루어지던 아프리카의 전자상거래는 OLX, 주미아Jumia 등 뛰어난 서비스를 갖춘 거대 온라인 유통 업체가 등장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또한 이미 오프라인 매장을 갖추고 있는 현지 기업들도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하며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맥킨지스앤컴퍼니에 따르면 아프리카 늘국내총생산GDP에서 인터넷 시장은 2013년 1.1% 정도였지만, 오는 2025년엔 10%로 성장해 3천억달러(약 32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프리카에서 거대한 파이가 구워지는 모습을 보며 세계의 투자자들은 군침을 흘리고 있다.

화려한 메인화면을 가진 주미아 사이트.
화려한 메인화면을 가진 주미아 사이트.

복잡한 건 싫다. 엄청 쉬운 인터넷 쇼핑
케냐 나이로비에 살고 있는 버나드는 중산층에 속한다. 그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입하려 시내의 매장을 둘러보았지만, 상점마다 가격차이가 심해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자칫하면 잘못된 제품을 구입해 사기를 당할 수도 있었다.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원했던 버나드는 고민하지 않고 온라인 쇼핑몰 주미아Jumia에 접속했다.

웹사이트에서 여러 종류의 스마트폰을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한 그는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고 주문을 신청했다. 상품을 주문하기 위해 복잡한 회원가입과 본인인증을 거치고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를 설치한 후 수많은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름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배달부와 만날 장소를 적기만 하면 됐다. 정말로 그게 전부였다. 물건 선택부터 주문 완료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스마트폰으로도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2014년 아프리카의 인터넷 보급률은 15.6%였고, 그마저도 대도시 위주였다. 아직 가정의 인터넷과 PC 보급률이 높지 않다보니 케냐에서는 오히려 스마트폰의 무선 인터넷을 이용한 접속이 더 편리하다.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는 높은 접근성과 편리한 주문 방식은 아프리카에서 전자상거래의 확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품은 집까지 배달 받을 수도 있고 정해진 배송지로 찾아가 직접 수령할 수도 있다. 버나드는 자신의 회사로 배달 받기를 선택했다. 배달을 받으면 400실링(약 4,000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케냐에는 집마다 주소가 없다. 초원에 달랑 서 있는 마사이 유목민의 흙집에 주소를 매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집 주소는 없고 우편물을 받는 사서함 번호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배달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주소를 ‘대학로 삼거리에서 대학 방향으로 들어와서 1km 직진하면 회사가 있음’이런 식으로 적으면 된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융통성을 느낄 수 있다.

5일 후 버나드는 물건을 가져오고 있다는 배달기사의 연락을 받았다. 약속 장소로 나간 그는 오토바이를 탄 배달부를 만났다. 버나드는 그가 가져온 스마트폰을 켜서 사용해보고 상자 속의 내용물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만약 주문과 다른 것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워낙 사기가 많다보니 직접 눈으로 보고 물건을 고르는 것을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설령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7일 이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환불이 가능하다. 사기를 당하더라도 제대로 환불받을 수 없는 케냐의 일반 매장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혜택이다. 버나드는 이러한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받다보면 자연스레 주미아를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직 5년도 되지 않은 신생 업체 주미아가 케냐 전역에서 이름을 알리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다.

주문한 물건을 배달하는, 주미아의 상징 노란박스.
주문한 물건을 배달하는, 주미아의 상징 노란박스.

요모조모 스마트폰을 살피던 버나드는 만족하며 배달부에게 돈을 지불했다. 하지만 현금은 보이지 않는다. 버나드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송금서비스인 엠페사로 결제를 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직접 주미아 계좌로 물건 값을 보내기에 배달부에게 현금을 주면서 생길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위조지폐나 사기가 심한 아프리카에 최적화된 거래 형태로 전자 상거래는 발전하고 있다.

배달부가 몰고 온 오토바이 뒤에는 작은 상자가 달려있었다. 상자 안에는 배달을 기다리는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하루 20건이상 배달한다고 한다. 나날이 배달 양이 늘어서 조만간 새 직원을 뽑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케냐에서 전자상거래는 더 이상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란 배달박스의 주인. 오토바이로 신속하게 고객들을 만난다.
노란 배달박스의 주인. 오토바이로 신속하게 고객들을 만난다.
스마트폰을 주문한 케냐 청년 버나드가 배달부가 가져온 물품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주문한 케냐 청년 버나드가 배달부가 가져온 물품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물건에 만족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엠페사 결제를 한다.
물건에 만족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엠페사 결제를 한다.

아프리카를 수출하는 전자 상거래
전자상거래는 비단 아프리카인들이 상품을 구입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물건을 해외로 수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 영세한 아프리카의 기업들은 외국으로 자신들의 제품을 수출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이 열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온라인매장을 만들었고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패션가나닷컴’은 아프리카 외부의 고객이 웹사이트에서 옷을 주문하면 아프리카 현지에서 직접상품을 구매해 외국으로 배송한 뒤 온라인으로 대금을 받는다. 뛰어난 패션 감각과 품질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의류 업체들은 전자상거래를 이용하여 더 많은 수의 고객들을 만나게 되었고, 해외에 정기적인 납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서구의 부유한 손님들은 상품의 가격을 몇 배로 올려도 전혀 거부감 없이 구입을 하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Skinny laMinx’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온라인 사이트는 수입의 80%를 미국과 호주의 해외 고객으로부터 얻는다. 잡화와 공예품을 판매하는 이 사이트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케이프타운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과 연계하여 마케팅을 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업마다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이제야 시작 단계다. 이러한 온라인 매장은 앞으로 수없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상거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외부인들에게도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전통 시장에서 왁자지껄하게 물건을 구입하던 아프리카인들은 지금 새롭고 편리한 전자상거래를 사용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아프리카 케냐 GBS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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