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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TV도 컴퓨터도 없습니다"자존심 버리니 달라진 세상
김다은 | 승인 2016.04.11 15:53

얼마 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기조 연설에서 페이스북을 만든 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딸이 열세 살이 될 때까지 페이스북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IT 산업의 발달이 주는 문명의 혜택을 뒤로 하고 마크 주커버그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 역시 어린 시절 TV, 컴퓨터, 휴대전화라는 3대 통신 매체와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자연스럽게 자존심을 꺾고 지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생활들이 오히려 나에게 유익함을 가져다 주었다.

3대 통신이 없어 좋은 습관이 생겼다

내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다. 태백은 광산 지역으로 아버지는 광산에서 감독하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점점 변하면서 광산업이 쇠락하고 하나둘씩 폐광됐다. 아버지가 다니는 광산 회사도 부도가 났다. 결국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정 형편이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요금이 연체되면서 텔레비전, 인터넷이 끊겼다.

그리고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10대를 지나면서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초고속 LTE로 세상의 유행들을 볼 수 있지만 휴대전화도 없고, TV와의 이별로 괜히 기가 눌려 소심해지고 말이 없었다. 집 전화기로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는 있어서 다이어리에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적으며 다섯개 이상 친구의 집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기본이었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으며 대화 속에서 정보를 이해해야 했다. 나도 자존심이 센 편이라 가난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은 내 자존심마저 버리게 했고, 나는 또래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귀담아 들어야만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듣는 습관이 생기면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학교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 책은 나에게 상상 속 새로운 세상을 매일 선사했다. 상상하면서 그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책과 대화하듯 여러 가지 생각의 나래를 마인드맵으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그때 그때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책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선물로 얻었다.

 

자연을 배우고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했다

집 전화기마저 사용하기 어려울 때는 종종 엄마가 동전을 주며 어디 누구 집에 전화하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킬 때가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는 집에서 좀 떨어진 가게 앞에 있었다.

나는 불평도 할 만했지만 불만을 빨리 버리고 나니 그 길을 가면서 자연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파트 앞에 있는 텃밭을 지나면서 매일 채소가 얼마만큼 자랐는지 확인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놀이터를 구경하기도 했다. 길가에 은행나무 가로수를 지날 때면 언제쯤 나뭇잎이 물들까 생각하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른 산을 보다보면 벌써 공중전화 앞에 도착해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로 가는 내내 눈은 쉴 틈 없이 구름 한 점 놓치지 않으려 자연을 보면서 자연치유가 됐다. 특히 비가 그치고 난 뒤 그 길을 지날 때면 빗물이 스며든 흙이나 수풀이나 꽃들이나 나무에서 나는 고유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원한 공기가 내 마음을 정말 상쾌하게 했다. 내가 그런 자연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그런 기운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하루는 아버지가 나에게 버스비를 빌려달라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모아둔 5천 원을 다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빠와 함께 등굣길을 나섰다. 그리고 도로 사이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가 버스를 탔다. 남들은 지폐 한 장을 내고 타는데 나는 10원, 50원을 모은 동전들로 대신했다. 그런데 그 동전 소리가 왜 이렇게 내 귀에만 크게 들리는지 어린 마음에 별것이 다 창피스러웠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면 반대편에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말이 없고 평상시 조금 무뚝뚝한 편인데 등굣길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조금 전까지 창피했던 기억은 없어지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부모는 그런 짐이 무거워 가정을 버리거나 이혼하기도 한다. 우리 아빠가 가장으로서 지고 있는 무게를 견디며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고 계신 것만으로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매일 밤마다 나눈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 수다를 떨던 친구들은 대학에 입학한 후 종종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청하기도 한다. 물론 지난날 그저 듣고만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오히려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나 역시 내가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이러한 가난한 환경 속에서 부끄럽고 자존심 상할 일이 많았지만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니 불만스럽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가족 간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울해하고 좌절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부족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매일 밤마다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 나만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부분이 힘들고 어려운지를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절대 어려움으로만 끝내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그 시간이 30분이 되고 한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되면서 가족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똘똘 뭉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난은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내게 행복을 주었다.

김다은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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