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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였다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라
전경철 | 승인 2016.04.05 16:49

모든 문제의 원인이 그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이 센 편인 나는 특히 ‘남자가 뭘 그리 외로워하느냐?’ ‘왜 능력이 없느냐?’ 그런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런 지적을 받기싫어서 어렸을 때부터 완벽주의를 추구했고, 나름대로 성격이 좋고 수더분하게 생활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많아서 수업 시간이 끝나면 내 주위에는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순탄하기만 했던 내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몇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문제를 대비하고 괴로움을 피하고 싶었다

평소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형이 사업을 같이하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을 곁에서 보았다. 형의 어려움은 온 가족의 어려움으로 번졌고, 형은 한동안 공황 상태가 되었다. 늘 당당하던 형은 술과 담배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친구도 잘못 사귀면 마음고생이 크구나. 나는 그런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있고 얼마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어려움을 가까이서 보았다.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셨는데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억대의 손해를 보았고, 큰 어려움을 겪었다. 평생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그로 인해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가족들이 함께 어려움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며 반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돈이란 빌려달라면 그냥 줘야지, 절대 받기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면 친구를 잘 가려 사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당시에는 절절한 고민 중 하나였다.

문제를 고민할수록 생각이란 탑 속에 갇혀서 지냈다. 사람들이 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나와 달리 해맑게 웃는 또래 친구들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시시해 보였다. 나는 좀 더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닥칠 어려움을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고, 목표를 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목표란 좋은 대학교, 좋은 자동차, 좋은 집, 좋은 직장, 좋은 아내를 의미했고, 하나씩 이루면 충분히 만족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계 안에서의 사고는 자만심을 키웠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서울에서 지내면서 내 마음에는 혹독한 시베리아 벌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는 부푼 꿈도 잠시, 무엇보다 서울로 상경해온 이후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워서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해도, 고등학교 친구만큼 가깝지 않았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수업으로 인해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잠시였다. 남들도 이런 이상한 감정으로 고민하는지 궁금했지만 솔직히 남자가 무슨 이런 고민 따위를 하느냐고 핀잔을 들을까 봐 자존심이 상해서 물어볼 길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학과 공부에 열을 올렸고, 그런 만큼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착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에게 필요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을 정해놓고 만나게 되었고, 사람을 사귀거나 대하는 데 말이 없어졌다. 속으로 생각하는 감정들이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싫었다. 다음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막연하게나마 새로운 꿈을 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게 꿈을 꾸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각박한 현실에 적응하며 달려가는 모습만 덩그러니 남았다. 교수님에게,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갔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서울살이가 각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점검하면 할수록 계획을 수정하고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지만 좋은 학과에 입학했던 만족감도 사라졌다. 매 학기가 지나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자존심 빼면 시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졸업할 무렵 ‘병’을 얻었다. 병원에서는 ‘기력이 쇠하였으니 건강을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요양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체 의학자 몇 분을 만나 상담을 하면서 왜 내가 병을 얻었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한 선생님은 ‘부정적인 생각과 스트레스’가 몸을 망가뜨린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누구처럼 당하지 않아야지 하면서 똑똑한 척하며 살았는데 오히려 병만 얻었다. 좀 바보같이 살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매일 자존심을 벗는다

졸업 후 오랜 시간 요양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졌다. 나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다른 사람처럼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무너지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오히려 나는 허상을 추구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막연한 무지갯빛 꿈은 사라졌고 자존심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향해 편견을 가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음 정리가 끝나고 나니,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 나는 잠들 때 이루어내지 못한 것들 때문에 자책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문제의 모든 원인이 ‘이놈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전경철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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