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친자매처럼 애틋하게 여기고 아껴주는 두 사람이 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문혜진 씨와 그의 도우미로서 손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최지나 씨. 지난 1월에는 태국 탐마삿대학교에서 열린 월드캠프에 두 사람이 각각 마인드 전문강사와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다녀왔다. 그곳에서 펼쳐진 이 특별한 인연의 다사다난했던 스토리를 소개한다.

내가 항상 밝게 웃는 이유
힘든 시간을 함께해주는 사람들

내가 다니는 강남교회 청년회는 8개 조로 나뉘어 있다. 그 중 내가 요한 조의 조장을 맡아 인사도 하고 친목도 도모할 겸 조원들과 식사를 하고 싶어 한 명 한 명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조원 중에 최지나라는 동생이 있었다. 지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름, 나이, 전화번호뿐이었다. 약속된 식사자리에서 처음 지나의 얼굴을 보았다. 초면이었지만 마치 알고 있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졌고 편했다. 지나는 내숭을 떨거나 낯을 가리거나 체면치레를 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통해서일까? 당시 경찰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면서 혼자 자취하고 있는 지나의 고생담을 듣고 나니 마음이 많이쓰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생각나고…. 그래서 꾸준히 연락하게 됐고, 서로집안 이야기, 살아온 여정 등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아끼는 관계가 되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길이 나올 때면 행사 스태프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그들 때문에 마음 뭉클할 때가 많았다.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길이 나올 때면 행사 스태프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그들 때문에 마음 뭉클할 때가 많았다.

하나씩 만들어진 연결고리
지나는 지난해에 치른 경찰공무원 시험에 낙방했지만 실의에 빠질 새 없이 국제마인드교육원에 입사했다. (이후 나도 그곳에 소속되어 마인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나가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집과도 가까워졌다. 하루는 지나가 “언니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해 흔쾌히 초대했다. 나는 9년 전 일어난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지낸다. 그 때문에 피가 밑으로 쏠려 발과 다리가 퉁퉁 부을 때가 많다. 혼자 있을 때는 침대에 누워도 있다가 휠체어에서 양반다리도 했다가 이리저리 자세를 바꾼다. 그런데 놀러온 지나와 이야기하느라 정자세로 가만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김없이 발등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지나는 “언니, 소파로 옮겨 앉아봐, 내가 발마사지 해줄게!”
하면서 당차게 나를 내려앉혔다. 퉁퉁 부은 발을 야무지게 마사지해주던 지나는 내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다리가 많이 부으셔서 마사지를 많이 해드렸으며 지금의 손놀림이 그때 배워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다리를 이리저리 정성스럽게 만져주며 말했다. “붓기가 안 빠지면 얼마나 괴로운지 나는 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몸이 불편해지고 난 뒤에는 몸이 아팠거나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한 면이 있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나 소통거리가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는 환자의 생활이 어떠한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과 다르게 더 깊이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탐마삿대학교에서 마인드 강연을 마친 후, 학생들이 찾아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며 함께 사진 찍기를 요청했다. 물론 OK! 했다.
탐마삿대학교에서 마인드 강연을 마친 후, 학생들이 찾아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며 함께 사진 찍기를 요청했다. 물론 OK! 했다.

도우미 지나와 함께하는 학교생활
지나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턴 월급을 받으며 월세와 휴대폰비를 내고 나면 교통비나 식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생각하던 중 마침 마땅한 자리가 나왔다.

 

 
 

나는 사고 이후 학교를 그만두었다가 2014년 8월에 편입했다. 매 학기마다 강의실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지만 학교 측의배려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만 강의실을 배정받아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지만 자동문이 아닌 곳이 많기 때문에 문을 열고 닫는 것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이나, 식사를 할 때 이동하는 것이 혼자로서는 불가능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알아보니, 정부에서 하는 ‘장애인활동보조’ 체제로 복지센터나 기관에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도우미를 파견해 주고 일하는 시간만큼 시급을 지급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도움을 주는 사람도 상부상조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신청했다. 그렇게 한 대학생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는데, 갑자기 그 학생에게 일이 생겨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래서 비워진 자리에 지나를 추천했고, 지나는 흔쾌히 활동보조 교육에 참여하여 자격증을 수료한 후 현재까지 같이 학교에 다니며 나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성격이나 가치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태국에서의 동고동락
일주일 동안 월드캠프가 개최되는 태국 탐마삿대학교에서 나를 마인드 강사로 초청했다. 나는 태국 학생들에게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의 위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길이 절망과 소망으로 나뉜다’를 주제로,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고, 자살하기에까지 이르는 요즘 학생들의 약한 마음에 올바른 삶의 자세를 제시하는 마인드강연을 하기로 했다. 국제마인드교육원 직원인 지나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함께이겨낼 수 있는지를 몸소 체험해보는 마인드 레크리에이션과 독서토론회를 준비하여 태국 학생들과 함께 할 스케줄로 일주일이 꽉 차 있었다.

비행기를 탑승할 때부터 나의 여행길은 순조롭지 못했다. 타이항공을 타고 갔는데 비행기 안이 너무 좁아서 작은 의자로 옮겨 앉은 후, 승무원 두 사람이 헹가래하듯 나를 들어 올려 좌석에 앉혀줘야 했다. 도와주는 사람들은 괴로웠겠지만 나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지나도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태국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행사가 열리고 있는 탐마삿대학교 대강당으로 향했다. 이동 거리가 꽤 길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태프의 도움으로 차를 타고 다녔다. 차에 타고 내릴 때는 힘이 좋은 남자 분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승용차보다 좌석이 높아서 혼자서 타고 내리기 역부족이었기에 누군가가 나를 좌석으로 안아서 올리고 내려야 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 여간 시간을 까먹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하면 이동하거나 볼일을 볼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이 가장 답답하다.
나는 자연적으로 대소변을 처리할 수 없다. 보통 하루에 네다섯 번씩 인위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거나 약을 먹어서 처리하는데, 물을 먹는 양에 따라 횟수가 달라진다. 숙소와 행사장을 네다섯 번씩 왔다갔다 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에 물을 최소한으로 마시고 태국에서 많이 나는 맛있는 열대과일을 먹는 것도 참아야 했다. 날이 뜨거워 물을 자주 마시고 싶어도 외출 중일 때는 절제가 필요했다.

 

 
 

지나가 내 휠체어를 끌어주면서 땀을 많이 흘렸다. 나는 보송보송해도 지나의 등을 만져보면 땀으로 옷이 축축해져 있는 것을 종종 발견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돌멩이 천지인 흙길이 많아서 휠체어를 끄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낮에는 밖에서 학생들과 함께 뛰고 이야기하며 에너지 넘치게 일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푹 퍼져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잠자기 전 마지막 소변 뒤치다꺼리와 목욕 도와주기로 항상 늦은 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난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지나의 체력이 받쳐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나도 힘든데 나를 끌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지나는 오죽했을까! 엄마가 참 많이 떠올랐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케어해주는 것에 대해 당연히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고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감사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모든 일정이 끝난 어느 날, 이번 행사에 스태프로 일했던 학생들과 숙소 옆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형마트 같은 곳이다. 기꺼이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듬직한 학생들. 중간 중간에 있는 턱이나 높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을 만나면 휠체어를 들어 올려야 했다. 평소라면가지 못했을 힘겨운 길을 학생들과 지나와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휠체어를 타다보면 함께 있는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한다. 때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고, 그래서 신세한탄을 하기도 한다. 바로 가도 되는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많다.

어린이들은 내 앞까지 뛰어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왜 거기 앉아 있어요?
일어나보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기분이 좀 다운된 날은 그러한 시선과 말들이 소화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지나도 이번 여행에서 나와 한마음이 되어 휠체어에 앉아 사는 삶을 함께 겪었다. “아, 언니 이런 시선이 있었구나.” 하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주는 게 어찌나 고맙던지.
힘들 때는 힘들다고 이야기해주면서 나와 조절해줄 줄 아는 지나가 고맙고 예뻤다. 힘든 시간을 견뎌준 지나를 새롭게 알았다.

끈기도 있고 자기 의견도 양보할 줄 아는 모습을 이번 여행에서 자주 보면서 듬직한 동생이 생긴 것 같다. 함께였기에 더욱 즐거운,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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