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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를 뒤집는 조용한 혁명 엠페사M-PESA송태진의 in아프리카, 아프리카人
송태진 | 승인 2016.03.14 15:47

케냐의 방송국 PD로 일하는 송태진 씨가 그만의 시작으로 아프리카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이번호는 모바일 뱅킹의 발달로 마트에 갈 때 현금 하나 없어도 결제 할 수 있다는 케냐의 놀라운 IT문화가 주제다.

“뭐라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니!”
아내로부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스티브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급하게 버스에 오른 그는 회사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중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휴대 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뱅킹으로 버스비를 지불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 스티브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아내는 문득 떠올랐는지 전기세와 수도세, 그리고 막내딸의 학비를 오늘까지 내야한다고 말했다. 통화를 마친 스티브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로 아내가 알려준 계좌 번호에 공과금과 학비를 보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스티브는 병원앞의 상점에서 어머니를 위해 과일과 요깃거리들을 구입했다. 계산은 역시 모바일뱅킹을 이용했다. 스티브는 병실에서 만난 어머니의 병세가 걱정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아 안심했다. 얼마 후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확인한 그는 진료비를 내기 위해 병원 수납처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휴대전화만 들려 있었다.

 

   
보다폰Vodafone Group Plc은 영국의 이동 통신 사업자 중 하나로, 매출액상 전 세계 1위의 이동통신 사업자이다. 현재31개국에서 사업 중이며, 40개국의 통신사와 협력 중이다. 지도에서 빨간색이 보다폰 직영 서비스국이고 파란색이 보다폰 제휴 서비스국이다.

쇼핑 결제, 공과금 납부, 교통비, 보험, 대출 등 경제 활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티브는 모바일 금융을 이용한다. 그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성인 인구의 60%가 넘는 국민들이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아마 싱가포르나두바이는 아닐까? 모두 아니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모바일 뱅킹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케냐에서는 이미 스마트폰이 보급되기도 전인 2007년부터 휴대전화로 돈을 주고받는 ‘엠페사M-PESA’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모바일을 뜻하는 ‘M’과 스와힐리어로 돈을 뜻하는 ‘페사’를 섞어 이름 붙인 ‘엠페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케냐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나이로비 도심 주차장에서 주차 요금을 낼 때 뿐 아니라 빈민촌의 허름한 노점에서 구운 옥수수를 사먹을 때도 엠페사가 사용된다. 월급도 엠페사로 지급받고 불우이웃돕기성금도 엠페사로 모금하며 속도위반 벌금도 엠페사로 낼 수 있다.

 

   
케냐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엠페사 에이전시 간판. 칠이 벗겨진 나무판이지만 첨단 금융서비스의 주축이 되는 곳이다.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에서조차 젊은 층을 제외하고는 아직 모바일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케냐에서는 꼬부랑 할머니도 휴대전화로 돈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다. 케냐에는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엠페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티몬과 품바가 뛰어 다니는 사바나 초원의 흙집에 사는 시골 마사이족이라도 늘상 모바일 뱅킹을 사용한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집으로 돈을 보 내세요
미국의 경제지 포츈은 작년에 ‘세상을 바꾸는 기업’1위로 케냐의 사파리콜과 영국의 보다폰을 꼽았다. 2위는 구글이었다. 사파리콤과 보다폰이 바로 엠페사를 창조한 기업이다. 그들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엠페사는 2009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작년엔 약 3,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것은 2012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한 수치다. 이제는 케냐를 넘어 탄자니아와 남아공 같은 아프리카 국가와 인도, 루마니아 등에서도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엠페사가 갖고 있는 매력이 무엇이기에 잍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먼저 엠페사 이전의 케냐 금융환경이 어땠는지 돌아보자, 2007년 케냐의 1인당 국민 소득은 800달러 정도(현재는 1,400 달러 선)에 불과했다. 일반 은행들은 저축이나 대출을 활용할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4천만이 넘는 인구 중에 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은 30%남짓이었고, 한반도의 2.7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에 은행 지점은 수백 개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몇몇 대도시에 몰려 있어 사실상 대다수의 케냐 국민들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돈을 맡길 곳이 없었던 케냐인들은 현금을 집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돈을 보낼 일이 생기면 직접 찾아가서 전달하거나 버스 운전사에게 수고비를 쥐어주고 현금 뭉치를 부탁해야 했다. 이 방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음은 물론 위험하기까지 했다. 현금을 품고 지방과 수도를 오고가는 버스가 강도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사파리콤과 보다폰은 이처럼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가 필요했던 케냐 국민의 절실함을 꿰뚫어보았다.

2007년부터 사파리콤은 모바일 계좌로 돈을 보관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엠페사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의 모바일 뱅킹은 일반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만 사용 가능했지만, 엠페사는 계좌가 없어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자그마한 전화기가 은행지점이 된 셈이다. 케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사파리콤은 ‘집으로 돈을 보내세요Send money home’라는 명쾌한 광고 메시지를 내세워 가입자를 불러 모았다. 모바일계좌 개설 비용은 무료. 누구나 간단한 신청서만 작성하면 기존의 휴대전화로 엠페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성인의 절반 이상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된 상태였기에 모바일 뱅킹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송금에 불편을 겪고 있던 사람들은 빠르고 안전하고 저렴한 엠페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금융 서비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엠페사가 유용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케냐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이토록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일까? IT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아프리카인들이 휴대전화 안에 돈이 들어 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최신 정보기술에 밝은 한국인들도 아직 모바일 뱅킹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보다 훨씬 뒤쳐진 케냐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엠페사가 보급되었다는 것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방식이 다를 뿐 엠페사 역시 금융의 한 갈래다. 한국에서 경험하는 금융 서비스를 떠올려보자. 은행에 갈 때 우리가 준비해야하는 수많은 것들 - 예컨대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신분증, 도장, 각종 서류 사본 등 - 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바리바리 챙겨 은행 창구에 가면 직원은 좁쌀 같은 글씨로 적힌 약관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설명을 귀 기울여 들은 후에도 결국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일쑤, 그저 서류에 색연필로 표시해놓은 자리에 서둘러 사인을 하고 땀을 닦으며 일어서게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직원들이 몹시 친절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들이 고압적이었다면 은행처럼 가기 부담스러운 곳도 없었을 것이다.

 

   
엠페사 에이전트. 허름하지만 ATM기능을 갖추고 있다.
   
주유비를 낼 때도 주유소에 있는 엠페사 번호로 돈을 보내면 된다.
   
엠페사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케냐의 마트.

더 편리하게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모바일 뱅킹과 인터넷 뱅킹은 어떤가. 공인인증서 확인을 거치고 아이디를 입력하고 수차례 다른 종류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서야 뭔가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세대는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영어와 아리송한 기호들에 기가 눌려버린다. 호기심이 많은 나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아이디를 만들고 공인인증서를 발급받는 등 몇 번의 과감한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종이가 사라지는 바람에 결국 인터넷 뱅킹을 포기하고 말았다. 세계에서 IQ가 가장 높다고 자랑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게 금융인데 어떻게 저개발국 아프리카 케냐의 전 국민이 모바일 금융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케냐 국민 중에는 교육을 받은 자도 있지만, 초등학교도 가지 못하고 평생 농사만 지은 사람도 있고, 소녀시절 결혼해 자식만 키우다 늙어버린 할머니도 있다. 이들은 새롭고 복잡한 첨단기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심지어 문맹이기까지 하다. 엠페사는 이러한 정보 소외 계층의 사람들마저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법이 간단하다.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잡화점 중 엠페사 로고가 붙은 곳에 가면 엠페사 에이전트(대리인)를 만날 수 있다. 말이 좋아 거창하게 엠페사 에이전트지 그냥 동네 슈퍼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면 즉석에서 엠페사 계좌를 만들어 돈을 입금할 수 있다.

만약 사용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라 할지라도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사촌 엠페사 에이전트에게 휴대전화와 돈을 건네주기만 하면 입금은 간단히 끝나게 된다. 모바일 계좌에 들어있는 현금을 인출할 때도 엠페사 에이전트를 찾아가 필요한 돈의 액수를 말하면 된다. 이들이 기존의 은행 ATM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8만 명이 넘는 엠페사 에이전트가 케냐의 도시와 마을의 모퉁이 길에 구석구석 퍼져 있다. 수백 개 남짓한 은행 지점 수와 비교해보면 엠페사의 접근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이해할 수 있다.

엠페사 계좌는 가입자의 휴대전화와 연결된다. 다른 사람의 엠페사 계좌로 돈을 보낼 때는 휴대전화에 상대방의 번호와 송금액을 누르고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된다. 설령 문맹일지라도 0부터 9까지 숫자 열 개만 읽을 줄 알면 스스로 송금을 할 수 있다. 공인인증서, 복잡한 어플리케이션은 필요 없다.

이체나 인출 때는 어느 정도의 수수료가 붙지만, 예전에 현금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의 불편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다. 이처럼 쉽고 간편한 엠페사는 교육 수준이 낮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성향에 맞아떨어졌고, 삽시간에 케냐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엠페사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
엠페사가 시작된 지 10년째를 맞이한 2016년. 이제 사람들은 굳이 집구석에 불편한 현금을 보관해두지 않는다. 시골 농부는 도시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농산물 판매 대금을 바로 받을 수 있다. 사업가들은 수금을 하러 여기저기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축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본 계획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로 일하러 나간 자녀들은 시골의 부모에게 쉽게 돈을 보낼 수 있다. 엠페사로 이루어지는 1일 송금액은 100억 원이 넘는다. 도시의 돈이 시골로 흘러들어가며 돈이 돌고 경제에 활기가 오르고 있다.

엠페사 효과는 비단 돈을 주고받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모바일 금융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도시는 물론 시골에도 휴대전화 보급률이 매우 높아졌다. 덕분에 휴대전화를 통한 여러 지식산업까지 동시에 시골에 보급되며 디지털 격차가 해소되고 정보교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인구 100명당 휴대전화가 10대 늘면 경제성장률이 0.5%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듯이 엠페사로 인한 휴대전화 보급은 케냐 사회를 발전시키고 경제를 끌어 올리는 힘이 되고 있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아프리카 케냐 GBS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송태진  impork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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