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스쿨 교사 최상훈

학창시절, 자존심 하나 세우려고 객기 부리고 모진 행동을 일삼았다는 최상훈 씨. 그는 네팔에 가서도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걸 즐겁게 여겼다. 그러나 잠시의 즐거움이 행복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는 지금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답게 푸근한 인상의 최상훈 씨는 링컨학교 교사이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는 학창시절 소위 ‘문제아’ ‘불량학생’으로 불렸다. 누구에게 지고 못 사는 성격이라 싸움이 붙으면 상대를 꼭 이겨야 했다. 그래서 피 터지게 싸웠던 그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기에 그가 살던 울산에서 성적이 가장 바닥을 긴다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불량아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조직 생활에 가담해 있었다. 그 세계에서라도 잘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마냥 어두운 길을 다니며 자기과시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살던 상훈 씨. 오로지 놀고 즐기는 데만 관심이 있던 그에게 생뚱맞게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보지 않겠냐?”고 권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인도와 브라질에 각각 다녀온 누나와 형이었다. 해외봉사를 다녀오기 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형과 누나를 보니 분명 자신에게도 뭔가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굿뉴스코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같은 반에 동생뻘 되는 학생이 네팔에 가자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나라인데 선뜻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남자니까 칼을 뽑았으면 출발이라도 해봐야지’라는 일념으로 멋지게 네팔로 향했다. 그러나 네팔 국제공항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산골마을 버스터미널 같은 규모의 공항은 분위기도 굉장히칙칙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풍경은 텔레비전에서 본 한국의 6.25 직후의 삶과 비슷했고, 힌두인들이 신으로 여기는 소들이 길거리를 다니며 이리저리 널려 있는 쓰레기를 주워 먹었다. 한마디로 암울했다.

‘잘못 왔구나.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그는 네팔에 갈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가장 좋은 브랜드 제품들만 골라서 가져갔다. 당시 휴대폰도 거의 보급되지 않았던 네팔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신기함의 대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의 옷,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신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을 옮기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값비싼 제품을 갖추고 자기과시를 하며 뿌듯함을 느끼곤 했던 그는 네팔에서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갖고 싶은 거다 갖추고 다른 사람들 앞에 멋지게 보이는 것이 잠시는 즐거울지 몰라도 행복하진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항상 행복을 갈구했지만 이러한 것들로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네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신발조차 없어서 맨발로 다닐 정도로 가난하지만 가진 것이 아닌, 삶 자체를 행복으로 여겼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부모님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밥을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들을 보며 부끄러웠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어요. 얼마나 갖추고 좋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고 부족해도 마음이 행복하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한국에서만 지냈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이나르빠띠 동네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러가는 길. 드높고 장엄하게 솟아오른 산맥을 뒤로하고.
이나르빠띠 동네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러가는 길. 드높고 장엄하게 솟아오른 산맥을 뒤로하고.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구나!
태권도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적으면 책 한 권이 나온다는 상훈 씨. 함께 활동중인 단원들이 “상훈이가 태권도를 할 줄 아니까 태권도 가르치면 되겠다”라며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보라고 제안했다. 사실 그는 10년 전 꼬마 시절 태권도를 배워본 것이 전부였다. 막막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품새, 발차기 영상 등을 다운받아 연습도 하고 한국 굿뉴스코 본부에 연락하여 중고 도복을 후원받았다. 네팔어도 할 줄 알아야 되기 때문에 달력 뒤에 빽빽이 글씨를 쓰며 평생 안할줄 알았던 공부도 했단다. 하루는 시골 마을에서 만난 코이카 해외봉사 단원을 통해 그 마을에서 가장 큰 태권도장의 관장님을 알게 되었다. 관장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도장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쳐 주길 부탁했다.

“저도 태권도를 잘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관장님께서는 그래도 괜찮다며 꼭 와달라고 하셨죠. 그곳에 가니 많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교를 잘 부리며 실력도 있어 보였지만 의외로 기초가 많이 무너져 있고 변형되어 있었어요. 기초밖에 모르는 저는 다행히 그러한 부분들을 가르쳐 주고 바로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학생들은 그를 구루(네팔어로 태권도 사범을 의미)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며칠 뒤, 관장님께서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는 제자 로맨스를 데리고 가셨는데 그도 함께 갔다. 8강전부터 경기를 보았는데 선수들이 너무도 단순한 패턴으로 겨루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잠시 로맨스를 찾아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도만이라도 코치를 해주었는데, 결승에서 이겨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선발전이 끝난 후에는 도하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기 위해 네팔에 온 한국인 감독도 만날 수 있었다. 그 감독은 네팔어를 잘 몰라서 통역해줄 사람을 찾고 있던 즈음, 그를 만나 굉장히 반가워했다.

“감독님께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저를 불러주셨어요. 그곳에서 통역을 하며 선수들과 함께 스파링(실제 경기 형식을 따르는 연습)도 할 수 있었죠. 그 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네팔 선수들이 많은 종목에 출전했지만 유일하게 태권도 종목에서만 세 개나 되는 메달을 땄어요. 태권도를 전문적으로 한 것도 아닌 제가 그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네팔에 오기 전에는 불량한 행동만 일삼는 자신을 사회의 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집 거실 벽면에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라는 문구의 액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실망스럽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팔이라는 나라는 그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 달간 함께 연습했던 네팔 국가대표 선수들과. 선수들이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기 전 기념 촬영을 했다.
한 달간 함께 연습했던 네팔 국가대표 선수들과. 선수들이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기 전 기념 촬영을 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그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모든 지인들이 놀랐다. 80㎏에 육박했던 거구가 1년 사이에 15㎏이나 빠져 외모가 많이 달라진 것 외에도,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이 안 나오던 그가 예의바르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네팔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상훈이가 이럴 놈이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마침 울산에 대안학교인 링컨스쿨이 생길 무렵이었다. 네팔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던 그의 활약상을 잘 알고 있던 학교 관계자가 그에게 링컨스쿨 사감교사로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학창시절 그는 선생님과 학생부를 가장 싫어했기 때문에 주저되기도 했지만 문득 스치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인생의 모든 선택을 다 제가 했죠. 그러나 선택할 당시에는 잘한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모든 것이 엇나가있었어요. ‘이제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링컨학교 사감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네팔어, 현지 음식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 시버에게 다양한 야채를 넣어 커리를 만들어주었다.
네팔어, 현지 음식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 시버에게 다양한 야채를 넣어 커리를 만들어주었다.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는 교사
처음 링컨학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에게 나름대로 잘 대해주었다. 문제아들에게는 더 많이 마음을 주었다. 학창시절 더한 문제아였던 자신도 이렇게 교사가 되었으니 학생들 또한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마음을 주고 잘해주었던 학생들이 학교를 못 다니겠는 발언을 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교사와 학교의 마음도 몰라주는데 배신당한 느낌이었어요. 교장선생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교장선생님께는 제게 ‘부모님들이 학교에 학생을 맡길 때 교사들이 부모의 마음으로 대해주길 원하신다.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줘’라고 하셨지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연배 있으신 선생님들에게도 여쭈어보고 학생의 입장이 되어서도 생각해보았어요.”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팔이라는 나라는 그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팔이라는 나라는 그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학생들도 고민이 있으면 그에게 와서 잘 이야기해주곤 한다. 가정의 불화를 계기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한 학생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주먹이 먼저 나가고 싸움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바르고 착실하고 칭찬받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요”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그는 자신이 변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며 상담해주었다. 이제 그 학생은 어떤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화를 내기보다는 먼저 곰곰이 생각해본단다. “선생님, 지금 전 너무 행복해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잡아주어서 정말 감사해요”라고 고백했던 학생의 함박웃음이 교사생활을 하는 그의 마음 한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든 곤란에 처해 있든 아무 관심 없이 자신의 재미와 즐거움만을 위해 살았던 최상훈 씨. 이제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깊이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 진정한 행복이란 걸 실감하고 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링컨학교 사감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링컨학교 사감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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