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리비엣!(안녕) 닫힌 마음이 열리다

아름다운 겨울을 가진 러시아. 하지만 너무 추워 샤프카(털모자)를 쓰지 않으면 뇌에 손상이 올 정도다. 작년 한 해 러시아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돌아온 김보은 씨는 그 추운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진다고 한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었던 그를 밖으로 나오게 해준 사람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게임 중독
우리 가족은 여섯 식구이다. 엄마, 아빠, 두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야채 가게, 생선 가게, 열쇠 집, 치킨 가게 등 항상 장사를 하셨다. 언니들은 나와 터울이 열 살 이상이어서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 개구쟁이 남동생은 밖에서 놀다 늦게 왔고, 난 언제나 집에서 혼자였다.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학교를 마치자마자 책가방을 집 문 앞에 던져놓고 어두컴컴하고 메케한 담배냄새가 가득한 PC방으로 달려갔다. 교복을 입고서 저녁도 거른 채 컴퓨터 모니터로 빨려들어갔다. 또래 여중생들이 용돈을 받아서 옷을 살 때 나는 온라인 캐시와 아이템을 샀다. 컴퓨터 앞을 떠나도 머릿속은 온통 게임뿐이었고 점점 현실과 가상세계가 구분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게임에 빠질수록 사람들이 무서웠다. 급기야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너, 뭘 봐?” 이렇게 날 향해 따져 물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도록 긴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아빠 차를 타고 밖에 나갈 때도 창 밖의 사람과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게임 중독 증세가 더욱 심각해지자 부모님께서는 나를 PC방에 못 가게 하셨다. 게임을 당장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불안했고, 눈이 펑펑 내리던 크리스마스 날, 결국 나는 집을 나갔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집에서 꽤 떨어진 낯선 동네에 이르렀다. PC방에 들어가서 또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퍽’ 뒤통수에 통증을 느꼈다. 뒤돌아보니 아빠가 상기된 표정으로서 계셨다. 서울 시내의 PC방들을 돌고 돌아서 마침내 나를 찾아내신 것이다. 아빠는 날 끌고 산으로 올라가서 나뭇가지를 꺾기 시작하셨다. 나뭇가지로 나를 힘없이 몇 대 때리시더니,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보은아…”
그렇게 소리쳐 흐느끼며 당신의 정강이를 마구 때리셨고 아빠의 다리에 핏망울이 벌겋게 맺혔다.
“아빠, 그만해!”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 내가 행복해지겠다!
혼자 힘으로 게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에 고등학교는 기숙형 대안학교에 갔다. 공연을 봉사활동으로 자주 했는데, 나는 주로 의상 담당이나 스태프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조역할만 했다. 무대에 서서 갈채를 받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신기하게도 게임 중독에서 금방 벗어났고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 요리사, 과학자, 미용사 등 매력적인 직업이 많았지만 정말 내게 맞는 길이 무엇일지 몰라 고민했다.

어느 날 <투머로우>에 실린 산부인과 의사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분은 매년 여름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나는데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와 그 에너지로 1년 동안 또 한국에서 일을 한다고 하셨다. 평생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분의 인터뷰를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른 사람이 웃을 때 내가 행복한 것이구나!’ 그 인터뷰 기사를 오려서 책상에 붙였다. 나는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간호사가 되어서 사람들의 몸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의료봉사를 가는 간호사의 모습만 상상해도 너무 행복했다.

한국 사람과 한국 드라마를참 좋아하고 한국말도 잘 하는똑똑한 친구, 율리야.
한국 사람과 한국 드라마를참 좋아하고 한국말도 잘 하는똑똑한 친구, 율리야.
한글학교에서 ‘추석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한글학교에서 ‘추석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초라한 내 모습을 벗어나고 싶었다
부푼 꿈을 안고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진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간호대학에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의 의욕은 대단했다. 해결하기에 벅찬 과제들이 쌓여갔고,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학습에 대한 열정도 사라졌다. 어느새 나의 꿈은 온데간데 없고 학교에서 겉돌고 지내는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알게 됐다. ‘굿뉴스코 해외봉사’야말로 내 마음을 다시 살아 숨쉬게 할 것 같았다. 1, 2지망은 아프리카 나라들을, 3지망은 러시아를 선택했다. 무조건 아프리카에 가려고 생각했는데 러시아에 다녀온 선배단원의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에 매료되어 최종적으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라드 정교 교회 앞.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라드 정교 교회 앞.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내겐 놀리는 말로 들렸다
러시아의 ‘니즈니 노브고라드’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러시아어도 배우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내가 하는 러시아어를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몇 살 어린 현지인 친구들이 나에게 체구가 작아 귀엽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날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고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놀리는 말로 들렸다. 러시아의 추운 날씨도, 기름진 음식도 모두 불편했다. 이런 내 마음을 니즈니 IYF 지부장님이나 현지인들에게 얘기하지 않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 상황에 100% 공감해 줄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린 작은 세계에 갇혀 2개월을 흘려보냈다. 항상 따뜻하게만 대해주시던 지부장님이 그날은 냉정하게 내 모습에 대해 말씀하셨다. 현지인 친구들이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치는 것을 무시해서 상처 줬던 일, 내 기분이 상하면 사람들이 불러도 대답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일, 한글학교 준비를 온 마음으로 하지 않고 대충했던 일… 해외봉사를 하기 위해 러시아까지 왔는데, 닫혀 있는 마인드로 사람들을 오해하고 상처 주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젭스크 한글캠프에 참석했던 친구들과 함께
이젭스크 한글캠프에 참석했던 친구들과 함께

그 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예의 없고 내 맘대로 행동하는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주고, ‘나’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지부장님. 내가 신경 쓰지 않고 하는 일들을 묵묵히 도와준 해외봉사 동료들. 말도 잘 하지 않고 찬바람 쌩쌩 부는 나에게 먼저 다가온 현지인 친구들.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를 자주 찾아오던 현지 여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너 러시아에 처음 왔을 때 많이 힘들었지? 지금도 한국에 가고 싶어?”
나를 걱정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러시아어를 못해서 너희가 날 비웃을 것 같았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자 이런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이해한다고 나를 꼭 안아주고 러시아어를 매일 가르쳐주겠다고 자청했다.

 
 

다시 찾은 꿈 ‘러시아어 통역 간호사’
신기하게도 러시아 음식이 입에 맞았고 불편했던 조건들이 감사할 조건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어가 일취월장했다. 그 이유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든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러시아에 와서 꿈이 생겼습니다.” 그렇다. 나는 꿈이 생겼다. 순수하고 밝은 러시아인들을 위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 러시아는 의료시설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의료 시술을 받으러 온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러시아어 통역 간호사’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내가 먼저 인사하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무척 놀랐다. 옆집 아주머니가 “너 보은이 맞아? 예전에 네 눈빛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내가 눈도 못 마주친 거 알아?”라고 하셨다. 해외봉사가 날 얼마나 밝게 만들어줬는지 새삼 느꼈다.

2016년 2월 2일, 나는 다시 러시아행 비행기를 탄다. 니즈니국립언어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좀 더 배우고 싶어서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러시아어 통역 간호사가 되려면 환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러시아 사람들을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려 한다. 닫힌 내 마음을 열어준 나라, 내게 꿈을 준 나라, 어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니즈니 노브고라드
러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밑에 있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수도 모스크바와 가깝기 때문에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서 공산품이 많이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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