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라 ‘핑계’

예전에 할아버지가 나를 앉혀 놓고 해주신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얘기 속의 할아버지도 내 나이셨다.
그 일로 할아버지가 겪었을 마음의 갈등과 죄책감을 생각하면, 핑계를 댄 사람이 핑계거리가 된 사람보다 확실히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가 보다.

 
 
어려서 나는 내 것보다 동생 것을 먼저 챙겼단다. 내가 동생에게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 손톱깎이가 있었는데 당시에 그것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아버지께서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벽에 걸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손톱깎이를 쓴 뒤에는 잃어버리지 않게 항상 여기에 걸어 놔라.”
“예, 아버지.”

그런데 내가 친구들에게 손톱깎이를 자랑하고 싶어서 아버지 몰래 학교에 가져갔다. 쉬는 시간에 손톱깎이를 꺼내 자랑했더니 한 친구가 물었다.
“나무도 끊어지나?”
“끊어진다.”
곁에서 지켜보던 또 다른 친구가 물었다.
“못도 끊어지나?”
“끊어진다!”

나는 손톱깎이를 자랑하려는 마음에 그만 잘못 대답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교실 마루판의 못을 뽑아 와서 끊어 보라고 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나는 못을 손톱깎이에 넣고 눌렀다. 그러자 손톱깎이가 ‘딱’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갑자기 내 눈앞에 아버지 얼굴이 보이면서 무섭고 겁이 났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그 부러진 손톱깎이를 동생의 필통에 몰래 넣고 태연히 있었다. 그 날 따라 아버지가 저녁 때 손톱깎이를 찾으셨다.
“여기 손톱깎이 누가 가져갔느냐?”
“몰라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아버지는 동생을 쳐다보며 물으셨다
“너는?”
“저도 몰라요.”
“너희들 책가방 가져와 봐.”

 
 

내 가방에는 당연히 손톱깎이가 없었다. 그 다음 동생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열어보니 부러진 손톱깎이가 나왔다.
그때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던 동생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놈, 손톱깎이 가져가지 말라고 내가 말했는데!”

아버지는 회초리로 동생의 종아리를 한참 때리셨다. 용기 없고 비겁한 나는 ‘아버지, 제가 그랬습니다!’ 하고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 일이 마음에 사무쳐 그 날 이후로 내 기억에 한 번도 동생을 섭섭하게 해준 적이 없었다. 훗날 어른이된 뒤 동생에게 ‘숨겨둔 비밀’을 털어놓으니 웃으면서 “형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데 때로는 자존심 하나 때문에 피하려다가 말을 돌려서 할 때가 있다. 자기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핑계를 대거나 진심을 숨긴 채 겉도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마음에 없는 이야기는 거짓말과 다름없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핑계를 대거나 거짓말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과 죄책감 때문에 점점 마음이 어두워진다.
우리 마음은 밭과 같다. 그래서 마음 밭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열매가 맺힌다. 어두운 마음이 있으면 절망과 두려움이 싹튼다.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어두운 마음들이 있다. 행복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행복한 환경에 살아도 우리 마음에서 느끼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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