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은 고등학생 때 자정이 넘어서 귀가해 부모님께 크게 혼이 났다. 차비가 없어서 차로 1시간가량인 등하굣길을 6시간 넘게 걸어왔던 것! 친구들에게 돈을 꿀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누굴 닮아서 그렇게 고집불통이니!’ 주변에서는 이런 그의 모습에 답답해했다.

고립은 인생의 독
박수정은 다섯 살 때부터 음악을 배웠다. 딸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우려 했던 어머니의 바람으로 한글을 익히기도 전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매우 예민한 감성을 지니게됐지만, 그는 매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재능없음을 괴로워했다. 초등학생때에는 이미 음악에 질려버리고 성격이 무척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자기 안에서 점점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그러다 보니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저만 생각했어요. 옆에 있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든지 제게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박수정은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으며 TV 에 빠져들었다. 공중파는 물론 같은 시간대의 웬만한 케이블 프로그램까지 주요 장면과 대사를 줄줄 꿰고 다녔다. 반면 TV 속 세상이 아닌 일상에서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는 이러한 가운데 자신을 위로하며 합리화했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 ‘사람들은 내 맘을 몰라’ 가끔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작은 키와 까무잡잡한 외모에 열등감을 느끼며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설사 가까워진 친구가 생겨도 물과 기름을 넣은 병을 흔들면 잠시 섞이다가 다시 나뉘듯 얼마 안 돼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는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될까 봐. ‘애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해만 해!’ 모든 친구를 동료가 아닌 경쟁상대로 여겼다.

2015 굿뉴스코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동거동락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왼쪽에서부터 야스민, 박설하, 칼라, 이연진, 박수정의 모습. 야스민과 칼라는 당시 해외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중이었다.
2015 굿뉴스코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동거동락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왼쪽에서부터 야스민, 박설하, 칼라, 이연진, 박수정의 모습. 야스민과 칼라는 당시 해외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중이었다.
마음을 여는 연습
“대학생 때에는 마음이 너무 지치더라고요. 외로움 속에서 독하게 지내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굿뉴스코를 만난 거예요. 처음에 1차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마인드 강연에서 ‘노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노력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말이 얼마나 뼈저리게 와 닿던지요!”

박수정은 13기 단원이 되어 미국 동부로 떠났다. 세계 최대의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미국. 그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미국 문화가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생활양식을 흡수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그에게 지부장님은 수시로 ‘이곳에서 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밝아지길 빈다’며 격려해주셨다. 현지 센터를 오가는 친구들도 그를 많이 배려해주었다. 피부색이 다른 흑인, 백인 학생도 영어에 서툰 그를 위해 천천히 말하거나, 쉬운 단어만 골라 이야기했다. 그를 위해서 일부러 한국말을 배워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조금씩 제 마음을 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티 영어캠프예요. 2010년 규모 7.0의 대지진과 잇따른 해일로 폐허가 된 곳이지요. 누더기차림의 아이들이 영어를 몇 마디 배우려고, 두세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걸어왔어요. 그런데도 그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해요.”

아이티에서 만나 친해진 튀니스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과 똑같이 땋아주었다.
아이티에서 만나 친해진 튀니스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과 똑같이 땋아주었다.
50만 명의 사상자와 1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곳.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더위속에서 오랜 기아로 가축들도 비쩍 말라 있었다. 사방으로 무너진 건물과 도로들이 보였다. 박수정은 오랜 시간 행사장까지 걸어온 아이들에게 물 한 병 사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열악한 현지에서는 노점상에서 파는 물도 꽤 비싸서 주머니 사정이 허락치 않았다.
그때 한 학생이 작은 봉지에 포장된 물을 사 왔다. 그리고 우‘ 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부터 물을 드리자!’며 그에게 내밀었다. 박수정은 몇 모금 정도 되는 물 봉지를 받고 눈물을 가득 머금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학생들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며 온 정성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아이티에서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대했다. 2013 북미 그라시아스 크리스마스 칸타타 홍보를 할때는 도보로 한 집 한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매일 600여 장의 초청장을 돌렸다. 하루는 피자 배달부였던 동생이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람을 만났다. 슬픔을 나눌 친구가 간절했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기에, 낯선 동양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박수정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또 마약을 복용 중인 그를 위해 행복을 빌었다.

박수정의 꿈은 사진작가이다. 그는 얼굴너머 미소 속의 마음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한다.그런 그가 이번에는 본지 표지모델로 섰다. ‘매일 찍기만 하다가 피사체가 되어보니 쉽지 않네요’라며웃었다.
박수정의 꿈은 사진작가이다. 그는 얼굴너머 미소 속의 마음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한다.그런 그가 이번에는 본지 표지모델로 섰다. ‘매일 찍기만 하다가 피사체가 되어보니 쉽지 않네요’라며웃었다.
마음을 울리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박수정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미국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지만, 많은 사람이 극심한 빈부 격차와 잦은 총기사고로 저마다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곳. 실제로 뉴욕은 다른 지역보다 월세가 무척 비싼 탓에 맨해튼에는 거리로 쫓겨난 노숙자들이 많다. “아이티를 떠나는 날이었어요. 아이들이 자기를 기억해달라며 머리핀을 빼서 줬어요. 사진을 몹시 찍고 싶었지만, 당시 제게 카메라가 없었거든요. 지금도 ‘아이티에서 사진을 찍었다면 그 장면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텐데….’하며 아쉬워해요.”

아이티 영어캠프에서 친해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캠프 중간에 쉬는시간을 빌려 포즈를 취했다. 맨 앞 줄의 왼쪽에서 첫 번째가 박수정.
아이티 영어캠프에서 친해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캠프 중간에 쉬는시간을 빌려 포즈를 취했다. 맨 앞 줄의 왼쪽에서 첫 번째가 박수정.
그는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굿뉴스코 사진기자로 활동 중이다. 이는 박수정이 사진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좋아하게된 일. 특유의 감성으로 순간순간 사람들의 표정을 포착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은 사진촬영과 기사작성, 편집 디자인이 모두 가능한 기자가 되는 것. 이에 지난해에는 본지 10월호에 3페이지 분량의 기사도 직접 담당했다. 주변 사람들은 요즘 ‘수정이가 몇 년 전보다 몰라보게 성숙해졌다’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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