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검색창에 마음이라는 단어를 치면 ‘마음 다스리는 법’ ‘마음의 상처’ ‘마음 편해지려면’ ‘마음 정리법’ 등 관련어가 감자넝쿨처럼 계속 올라옵니다. 많은 이들이 마음앓이를 한다는 뜻이겠지요.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마음에 들지 않는 직업, 마음이 통하지 않는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성경에서 발견한 솔루션을 알려드립니다.

ⓒ The Stockpile
ⓒ The Stockpile
대학생들이 공부를 하든 졸업해서 직장을 갖든, 그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마음의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들 모두에겐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열심히 공부하면 다른 사람보다 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가 뜻대로 안되는 경우가 있고, 열심히 공부했어도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부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가는 항상 악보부터 챙기고, 판사는 법전을 곁에 두고 봅니다. 나는 목사라서 성경을 늘 가지고 다니며 읽습니다. 성경은 1천8백 쪽 분량인데 한 쪽 읽으려면 보통 2분 걸리고 다 읽으려면 3천6백 분이 필요합니다. 하루 10시간씩 집중해 읽으면 6일에 한 번, 아무것도 안하고 성경만 본다면 일 년에 50번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다가 열 번째쯤 되니까 성경의 주된 내용이 마음 이야기인 것이 보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이 힘들어서’ 생을 포기하거나 ‘마음이 안맞아서’ 고립 속에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어두운 삶이 어떻게 가장 밝아질 수 있을까
성경에서 이런 마음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예화가 누가복음의 탕자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가 ‘아버지 재산 중에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 말에 아버지가 재산을 각각 나눠주었고, 둘째아들은 자기 몫을 챙겨 먼 나라로 갔습니다. 가진 돈을 모두 술집여자에게 날려버렸을 때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둘째아들이 너무 배가 고파 돼지 치는 일을 했는데, 주인이 돼지에겐 쥐엄열매를 주면서 돼지치기인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겁니다. 여기서 둘째아들이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고 뛰어가 부둥켜안고 기뻐합니다. 아버지가 하인들에게 말하자마자 제일 좋은 옷과 신발이 나오고 둘째아들 손에 가락지가 끼워집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탕자이야기에는 인간이 가장 불행하게 사는 장면과 가장 행복하게 사는 장면이 보색대비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돼지우리에서 굶주린 둘째아들은 고독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에 해당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와 잔치하는 모습은 인간의 밝은 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둘째아들이 ‘어두운’ 돼지우리에서 나와 ‘밝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출발은 둘째아들의 말에서 시작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돼지우리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 집이 너무 멀고, 여비도 없고, 또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쓴 것에 대한 질책이 두려워 가볼 엄두도 내지 않다가, 어느 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품꾼까지도 풍족한’ 아버지 집에 먼저 마음으로 가봅니다. 그때 둘째아들은 ‘너무 따뜻하고 풍요로운 아버지 집에 마음은 갈 수 있지만 몸은 돼지우리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실체를 발견합니다. 이윽고 둘째아들은 마음이 간 길을 따라 몸도 아버지 집을 향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음과 몸은 달라서, 우리 몸이 외국에 가려면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고 비행기 표도 사야 하지만, 마음은 어떤 준비물도 없이 아무 때나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마음이 먼저 행복한 곳에 가볼 수 있도록 대화로 이끌어갑니다.

‘잔인한 초원의 지배자’ 츄안츄안 족
제가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백 년보다 긴 하루>라는 러시아 소설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이 배경입니다. 평화로운 키르기스스탄에 츄안츄안 족이 쳐들어왔고, 병사가 부족해 남자아이들까지 전쟁터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츄안츄안 족에 패배했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츄안츄안 족은 포로들을 마냥 먹일 수 없어서 노예로 팔려고 만꾸르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껍데기’라는 뜻의 만꾸르뜨는 노예를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츄안츄안 족이 만꾸르뜨를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참혹합니다. 먼저 잘 드는 칼로 포로들의 머리털을 밀고, 다음에는 암낙타를 잡아서 젖가슴 부위를 도려냅니다. 낙타의 젖가슴 가죽은 어느 부위보다 탄력이 뛰어난데, 그것을 포로들의 머리에 수영모처럼 씌웁니다. 그리고 포로들을 햇볕 아래 기둥에 묶어 두면 낙타 가죽이 마르면서 머리를 죄어오고,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됩니다. 꽁꽁 묶인 포로들은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치다가 정신을 잃고, 얼마 후 의식을 되찾으면 다시 고통이 쏟아져 결국 하나둘 죽어갑니다. 열 명 중 세 명 정도 남았을 때 풀어주는데 그 고통을 이겨낸 포로들이 만꾸르뜨입니다. 고통 속에서 백 년보다 긴 하루를 보낸 만꾸르뜨의 뇌리엔 아무런 기억도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겐 고향도 없고, 부모도 없습니다. 암낙타 가죽이 가져다준 고통은 사랑, 미움, 슬픔, 기쁨 등 모든 것을 깨끗이 지우기에 충분했고, 오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만꾸르뜨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두려움만 기억하는 기계와 같은 노예, 만꾸르뜨
키르기스스탄의 청년 졸라만도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는 활을 잘 쏘는 명궁수였지만 암낙타 가죽을 머리에 쓴 이상 다른 만꾸르뜨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고통이 신경에 닿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기계에 불과했고, 하루 종일 양떼나 소떼를 돌보는 노예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졸라만의 어머니 나이만 아나는 사랑하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아들의 생사여부라도 알고 싶은 어머니는 여행객들이 오가는 주막에 가서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누군가가 만꾸르뜨에 대해 말했습니다. “젊은 만꾸르뜨가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얼마나 불쌍하던지….” 어머니가 바짝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나이는 얼마나 되어 보였어요? 키는”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울면서 “틀림없는 내 아들이에요.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세요.” 하며 여행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졸라만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 쓸데없는 일이에요. 그 사람이 졸라만이라는 확증도 없고 설령 졸라만이라고 해도 어떻게 할 거예요? 엄마를 몰라볼 게 틀림없는데,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이웃사람들이 한사코 만류했으나 어머니는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낙타 등에 음식과 옷가지를 싣고 어머니는 몰래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여행객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아들을 찾아서 나선 것입니다. 언덕을 넘고 넘어 며칠 뒤 양떼 가운데 서 있는 졸라만을 발견합니다. 낙타가 양떼를 향해 달릴수록 아들은 더 가까워지고, 가까워질수록 그가 졸라만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습니다. 낙타가 다리를 구부려 앉기도 전에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어머니는 달려가 아들의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졸라만, 엄마가 왔다.” 어머니는 반가워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꿈에 그리던 아들이 앞에 있었지만 아들의 상태는 예전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졸라만, 네 아버지는 활을 잘 쏘셨어.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었지. 그리고 너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 그래서 너는 활을 잘 쏜단다.”
옛 기억을 되살려주려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도 아들은 여전히 무표정했습니다. 그때 츄안츄안 족이 멀리서 나타났고 어머니는 얼른 달아났습니다. 츄안츄안 족이 졸라만에게 물었습니다.
“그 여자가 너에게 뭐라고 했어”
“엄마라고 했어.”
“그리고 또”
“내가 활을 잘 쏜다고 했어.”
“그래? 활을 한번 쏘아봐.”
졸라만은 시키는 대로 화살을 먹여 활시위를 당겼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정확히 목표에 꽂혔습니다. 츄안츄안 족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다시 오면 이 활로 쏘아 죽여. 아니면 암낙타 가죽을 씌울 거야.”
그 말에 졸라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낙타 가죽을 씌우지 마! 안 돼!”
“그래, 알았어. 그 대신 그 여자를 꼭 쏘아 죽여야 돼.”
다음날, 어머니는 낙타를 타고 다시 양떼 곁으로 왔는데 웬일인지 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졸라만, 어디 있니? 엄마가 왔다. 졸라만, 어디 있는 거야”
아들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양떼 틈에서 어머니를 향하여 활을 겨누고 있는 아들이 보였습니다.
“쏘지 마!”
하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어머니의 목에 적중했습니다. 어머니는 낙타에서 떨어졌고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낙타 안장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고 사는 현대판 졸라만
츄안츄안 족이 만꾸르뜨를 만드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마음 안에 작동하면서 사람을 강도로, 사기꾼으로, 중독자로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미움에서 자기 마음을 건져내려고 애쓰지만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졸라만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 의해서 자기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만꾸르뜨가 된 졸라만이 츄안츄안 족의 조종을 받으며 사는 것처럼, 나도 어떤 힘에 끌려 다녔지만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열아홉 살 때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별로 해롭진 않더라도 없는 말들을 보태니까 얘기하기도 그럴싸하고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 거짓말을 조금씩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거짓말을 용납한 뒤로부터 거짓말이 무서운 속도로 비약, 발전해가는 겁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나는 거짓말의 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거짓말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돼. 해서는 안 돼.’ 이를 악물고 각오와 결심을 했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나 아닌 어떤 힘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잘해보고 싶고 열심히 해보고 싶고 성실하게 해보고 싶은 좋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적당히 처리하고 대충 넘어가고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 여러 종류의 마음들이 우리 내면에서 어떤 관계를 서로 형성해 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약중독자 가운데 마약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끊으려고 하지만 안되는 것입니다. 게임중독자, 알코올중독자, 도박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Paweł Kadysz
ⓒPaweł Kadysz
내가 게임을 하기 싫은데도 계속한다면 누가 하는 걸까?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2009년에 북경에서 청소년 교육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참석한 어느 어머니와 상담을 했는데, 그분 말로는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폭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어떻게 자기를 잘되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때립니까? 그게 인간입니까? 짐승만도 못하지요.”
“당신 아들이 선생님을 때린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들도 자기가 때렸다고 했어요.”
“당신 아들이 아닙니다.”
“목사님, 우리 아들이 때린 게 맞아요. 본 사람들도 많아요. 학교 수업시간에 그랬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잘 들어 보세요. 컴퓨터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게임을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맞지요? 그래서 게임을 신나게 하는데, 마음 한쪽에서 이런 생각들이 올라옵니다. ‘재미있다, 계속 하자.’ ‘아, 게임을 너무 오래 했어. 이러다 숙제를 못 하겠다. 그만하자.’ 게임을 하고 싶어서 하고, 게임을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은 내가 하고 내가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내가 그만해야 해. 더 하면 내일 시험도 제대로 못 칠 거야. 공부해야 해.’ 컴퓨터게임을 그만하려고 다짐하고 결심합니다. 누가요? 내가 결심합니다. 이제 나는 컴퓨터게임 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안하려고 하는데 계속 게임을 하게 됩니다. 나는 분명히 하기 싫은데 말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아드님이 때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길을 알면 삶의 문제해결이 가능해진다
때린 학생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가 한 것이 아니라니, 이해가 안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합니다. 그 마음의 세계에는 힘의 원리가 작용해, 약한 힘은 강한 힘에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300마력 자동차와 500마력 자동차를 연결해 놓고 양쪽에서 당기면 300마력 자동차가 500마력 자동차에 끌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리적 힘의 세계처럼 마음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나는 컴퓨터게임을 그만하고 싶은데, 나는 도박에서 손 떼고 싶은데, 나는 마약을 끊고 싶은데, 나는 거짓말을 안하고 싶은데, 나는 성실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사람의 본성이나 의지보다 강한 어떤 힘이 끌어가면 컴퓨터게임을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헤모글로빈이 부족하면 빈혈 증세가 나타나듯이, 이런 마음의 구조를 지닌 사람에게는 이런 증세가 나타나고 저런 마음의 구조가 있는 사람은 저런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의 세계를 분명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마음의 세계를 성경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성경을 반복해 읽다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이 보이고, 그 길을 알면 삶 속의 어려운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예측하고 피해갈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정직하게 살자, 성실하게 살자’ 하는 우리의 다짐과 노력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들 처음부터 절도범이 되고 싶고 게임중독자가 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애초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 알코올중독자, 정신병자, 범죄자들은 계속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실하고 밝게 살고 싶어도, 마음속에 어떤 힘이 강하게 끌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 도박꾼이 되고 마약중독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설마, 내가? 나는 중독될 사람이 아니야.” 만약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겨낼 힘이 없다면 누구든 공허함에 술을 마시게 되고 마약을 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예상치 않은 일이 닥칠 때 우리는 거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 몸을 움직이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가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가는 길에 든든한 안전망이 될 것입니다.

 


박옥수
현재 기쁜소식강남교회 담임 목사.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로 각종 범죄와 중독증으로 고통받는 청소년을 선도하고 있다. 마인드 강연 전문가로도 활동하며 매년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대학생캠프에도 초청받아 강연한다. 저서로는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외 4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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