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라

여러분도 자존심 때문에 좋아했던 사람을 잃어버리거나 ‘미안하다,고맙다’라고 먼저 말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하지 못한 적이 있으신가요? 자존심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문제가 일어나고, 생활 속에서 놓치는 게 얼마나 많은지요? 이번 호에서는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한 구지원 강사의 ‘드레스 벗은 사연’을 공개합니다.
-편집자 주-

 
 
누구나 멋진 드레스를 입고 품위 있게 보이고 싶을 겁니다. 특히 여성이 드레스를 입는 경우는 결혼식과 같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하지만 드레스를 한껏 차려입고, 멋지게 꾸며진 내 모습을 보며 기쁨을 누리는 것은 단 하루여야 합니다. 내가 입고 있는 드레스가 너무 좋고 이쁘다고 계속 드레스를 입고 살 수는 없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드레스라도 바로 벗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드레스는 오히려 내 삶을 불편하고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레스를 평일에 입고 거리를 거닌다면, 매일 드레스를 입고 생활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자존심의 드레스’를 입고 벗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사전적 의미로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때로는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닌데도 자존심을 세우다가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점점 피하다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경우를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특히 대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면서 자존심의 드레스를 입기만 하지 벗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지 못 할 때, 그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불편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드레스를 입고 계신지 생각해보세요. 저는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는 게 정말 중요하다
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은가?
많은 기업에서 저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면접관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일까요? 정말 기업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학벌과 스펙을 기꺼이 버리고 누구에게든 배울수 있는 겸손함을 갖춘 사람입니다. ‘자존심이란 드레스를 벗을 수 있는 사람’, 그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취업 준비생들은 면접관의 입장 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스스로 후한 점수를 줍니다. 취업하기 위해 나름대로 충분히 준비한 스펙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뿐만이 아니라 회사에 입사해서는 바로 아이디어를 기획하거나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고 큰일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면접관은 취업준비생들을 회사 사정을 모르는 신출내기일 뿐이며, 잡다한 심부름, 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 등 기초부터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도움이 되는 자료 수집을 시킬 정도라고만 생각하지 처음부터 큰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기획은 보통 기업의 부장, 팀장급이 하는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면접관과 동상이몽을 꿈꾸는 사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신입사원이면 누구나 하게 되는 허드렛일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저는 IMF의 여파로 요즘보다 취업 경쟁이 더 치열했던 시기에 졸업했습니다. 학교 취업 센터를 매일 기웃거려 봐도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LG증권에서 대졸 여사원 90여 명을 뽑았습니다. LG증권에 합격하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사 후 LG증권 테헤란로 지점의 창구직원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제가 배워야 하는 업무는 허드렛일이었습니다. 전문대학만 나와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막상 제가 하는 일 자체가 그렇게 멋지고 드라마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LG라는 브랜드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은 저를 대단하게 여기곤 했습니다. 두달 간 본사에서 교육을 받은 후 인턴 3개월을 거친 후 정직원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LG증권을 다녔습니다. 회사에서 신입 사원인 저를 대다수가 예뻐해 주셨습니다. 아침마다 남자 직원들만 참석하는 회의에도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창구에서 일하던 고졸 출신의 선배들은 저에게 극한 적대감을 가지고 저를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닥 청소부터 문서 분쇄기의 엄청난 파지를 정리하는 일, 돈을 세는 일을 시켰습니다. 대학에서 공부만 했던 저는 상업고등학교 출신 선배들에 비해 돈을 잘셀 줄 몰랐습니다. 이대 나와서 돈도 잘 세지 못한다고 얼마나 핀잔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객장이 미어질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이런 일이나 하려고 이대를 졸업한 게 아니었는데....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내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건가 ....’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객장을 찾으면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일일이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증권회사 고객들은 은행 고객과는 달랐습니다. 계좌에 기본 5~10억 정도 들어 있는 사람들이 고객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객장의 직원을 굉장히 하찮게 대했습니다.

동기들과 이야기하다가 서러움에 북받쳐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선배들이 ‘생각보다 잘 견딘다’며 일을 조금씩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늘 일이 익숙지 않아서 헤맨 저인데 선배들의 자리를 욕심 낼 만큼 일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했습니다.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고 나니 울 일도, 푸대접을 받는다는 억울함도 사라졌습니다.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국내 최고의 법률회사인 Kim&Chang 비서직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3개 언어는 기본인 사람들도 응시했습니다. 그룹으로 영어 면접을 보는데 저는 늘 영어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면접이 끝나고 제가 뽑혔다는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Kim&Chang’ 비서 업무는 거의 영어로 이루어집니다. 전화도 영어전화가 대부분이고, 문서들도 거의 영어로 쓰여 있습니다. 저는 영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주변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모르고 부족하니까 많이 물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그런 제가 불쌍했는지 저를 오히려 좋아해주고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마음을 쓰고, 더 세심하게 일을 했습니다. 결국은 일을 잘 한다고 칭찬도 듣게 되었습니다.

Kim&Chang에서는 젊은 주니어 변호사가 연륜 있는 시니어 변호사에게 호되게 혼이 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니어 변호사라도 평생 1등만 했고 연수원 성적도 Top 10 안에 드는 최고의 수재입니다.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매일 저에게 찾아와서 ‘시니어 변호사님이 출근하셨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허드렛일은 모두 주니어 변호사의 몫이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대단한 사람인데, 그는 살아남기 위해 남에게 공손하게 자신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Kim&Chang에서는 제가 이대를 나왔다는 이력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드레스를 입기만 했고 벗은 적이 없어서 힘들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야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온 인재라고 해도 기업에서는 윗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맞추어 함께 일할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보다 똑똑하지 않은 상사와도 함께 일하며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 출신 학벌이나 스펙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존심의 드레스가 상사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존심만 세우는 사람은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 경력자를 뽑을 때는,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을 우선으로 봅니다. 하지만 처음 취업에 도전하는 여러분들은 이제껏 입었던 드레스를 벗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구지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그녀는 (주)LG투자증권과 ‘Kim&Chang’ 법률사무소에서 배운 경험담을 바탕으로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으라는 강연을 이화여자대학교 후배들에게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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