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는 역사강의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국사 강사 설민석. 그는 단순히 역사지식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강사가 아니다. 선조들의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재담꾼이자, 볼거리와 배울거리가 가득한 역사라는 세계 속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다.

폭소와 탄성 속에 역사 배우는 강연콘서트
12월 9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민회관. 겨울의 문턱답게 꽤나 쌀쌀한 날씨였지만 회관 내 대강당은 설민석의 역사강연을 들으려고 몰려든 600여 관객들의 열기로 오히려 뜨겁기만 했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조선조 21대 임금인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임오화변壬午禍變. 영화 ‘사도’를 비롯해 소설, 드라마 등으로 숱하게 리메이크된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이다.

그 전까지 기자는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콘서트장까지 가는 사람들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않았다. ‘인터넷에서 가수들의 노래와 뮤비를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는데, 뭐 하러 돈 내고 시간 들여 콘서트장까지 가나?’ 이날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민석의 강연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보고 들을 수 있다. 더구나 현장강연은 온라인강의처럼 동영상과 이미지, 음향효과를 보탤 수 없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처럼 역사 속 사건을 이야기에 담아 전하는 그의 스토리텔링 솜씨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무수리 소생인 영조의 ‘출생의 비밀’부터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 등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관객들은 ‘와하하~’ 하는 폭소로, 때로는 ‘아!’ 하는 안타까운 탄성으로 화답했다. 영화만으로는 미처 설명이 되지 않던, 아버지와 아들 간에 불신이 싹틀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았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노래하면 관객이 추임새를 넣듯 주거니 받거니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1시간 30분이 훌쩍지나가 버렸다.

 
 
그를 만나면 영화도 역사교재가 된다
설민석이 역사강사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3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하하의 역사선생님으로 출연하면서부터다. 이후 ‘광해’ ‘관상’ ‘역린’ ‘명량’ ‘사도’ 등 역사영화가 개봉할 때에 맞춰 그는 그 영화의 배경과 시대적 특징,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강의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영화가 인기를 끌수록 그의 강의 동영상 조회수도 덩달아 뛴다. 지금까지 그가 올린 유튜브 강의들의 조회수를 모두 합치면 1,000만을 훌쩍 넘는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게 최근 3~4년 사이의 일인 데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그는 1970년생이다) 그를 샛별처럼 나타난 신인강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실은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역사강의라는 외길을 걸어온, 준비된 베테랑 강사다.

“군 복무를 마친 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그러던 중 어느 학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뜻밖에 학생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더 열심히 공부해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수업준비에 투자하면서 한국사에 점점 매료되어 갔습니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게 내 천직이구나’ 하는 확신이 든 설민석은 내친 김에 연세대 대학원으로 진학해 역사교육학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렇게 시작한 강사 이력이 지난해로 정확히 20주년을 맞이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한국사만 강의하다 보니 분필 한 자루만 있으면 고조선 건국부터 현대사까지 어느 시대든, 지도에 연대표에 한자어까지 척척 써가며 술술 강의를 풀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의 강의를 들어본 수험생들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베를 짜듯,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역사적 사실들 간의 연관성을 찾아내 일목요연하게 가르친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늘 같은 내용을 강의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강의방식과 교재내용, 교재에 실리는 문제를 매년 새롭게 개편하지요. 제가 운영하는 한국사 전문 교육기업 태건에듀의 연구원들과도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자주 갖습니다.”

‘하던 가락’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노력은 동영상강의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화 ‘암살’을 다룬 11분짜리 스페셜강의다. 일제강점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대해 해설하면서 설민석과 태건에듀 연구원들은 당시 중국 길림성에있던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모습을 3D로 재현해 보여주었다. 물론 현장답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든 영상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인터넷강의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손색이없을 정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설민석의 인터넷강의는 사극이나 역사영화를 보다 재미있고 깊이 있게 보고 싶다면 반드시 예습해야 할 필수코스가 되었다.

 
 
역사야말로 위인들의 지혜와 만날 수 있는 통로
현재 설민석의 수강생은 크게 두 부류다. 첫 번째는 수능시험이나 공무원시험, 한국사능력 검정시험 등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 두 번째는 일반 대중이다. 강의대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바로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을 전해주자’는 것.
“수험생들은 당장 성적을 올려주는 강의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적 향상을 가장 큰 목표로 하되,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하려고 애를 씁니다. 또 수험생들은 시험이 주는 압박감에 시달리느라 웃을일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웃음까지 줄 수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재미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성대모사까지도 합니다.”

반면 일반 대중을 위한 강의, 즉 대중강연을 앞두고는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강연을 주최하는 기관, 강연의 목적, 청중, 심지어 강연날짜까지 염두에 두고 주제를 선정한다. 가령 CEO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라면 ‘역사 속 위인들의 리더십’을 주제로 잡는다. 반면 가정주부가 청중이라면 ‘역사 속 자녀교육법’이나 ‘내 자녀를 위한 효과적인 역사 공부법’이 주제가 된다.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즐겨 인용하는 격언이 있다.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이다.

 
 
“역사 하면 과거에 일어난 단편적인 사실들을 학습하는 지루한 학문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과 뗄 수 없는 현실적인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도 북한의 정치상황이 급변할 경우 중국이 개입할 명분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만 우리 민족과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역사를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비전을 찾는 통찰력은 바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 비슷한 사례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면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가장 먼저 살펴봅니다. 역사를 공부하면 수많은 위인들의 현명한 지혜를 경험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두 달 전 극장에 가서 봤던 영화 ‘사도’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관상’ ‘역린’ ‘명량’도 마찬가지다. 한 번씩은 봤던 영화들이지만, 그의 영상강의로 예습을 하고 다시 영화를 보면 그 이해의 폭과 감동의 깊이는 오히려 더 클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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