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 기획 전문가 조미호 대표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첫자를 딴 마이스MICE 산업은 21세기 고도의 지식 산업이다. 최근 불황 속에서도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취업을 준비하는 20대에게 도전해볼 만한 새로운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마이스 산업에서 손꼽히게 두각을 나타내는 (주)화제인의 조미호 대표는 행사장에서 늘 긴장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 머리끝이 쭈뼛 서는 일을 겪지만 인터뷰에서는 달인다운 여유로움으로 오랜 경험을 풀어놓았다.

한국경제연구원(2015)의 자료에 의하면 2012년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세계 마이스 산업은 2017년에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된다고 한다. 국내 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주)화제인 역시 2008년에 창립해 매년 성장세를 걸어왔다. 지난 7년간 정부를 비롯해 관공서, 기업, 대학을 대상으로 크고 굵직한 행사를 1년에 11회씩, 77회나 성공적으로 치러낸 저력이 있는 기업 (주)화제인은 국제포럼도 도맡아 진행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부각해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당시에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비전이 담긴 그린오션포럼도 성공적으로 개최해 큰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15년 11월 18일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제41회 국가품질경영대회가 열렸을 때도, 1,800명의 기업인이 참여했고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표창이 수여된 규모가 큰 행사를 총괄 진행한 조 대표는 ‘훌륭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손색없이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재주를 잘 넘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법. 몇 달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수포가 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업종이므로, 조 대표는 ‘철저하게 준비한 만큼 점검하는 일, 그리고 하늘의 도움도 따라야 명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마이스 산업은 재능과 실력만 있다고 성취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현장 실무경험이 풍부하고, 인맥 네트워크의 연륜도 깊어야 하며, 차별화 된 아이디어로 클라이언트보다 앞서 고민 하고 먼저 준비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마이스 업계에서 (주)화제인이 창의적인 기업으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조미 호 대표는 ‘무엇보다 늘 새로운 것을 기획 해내야만 하는 피디 생활이 성장에 큰 밑 거름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청개구리 같은 내 인생
고3 때 배우 홀리 헌터가 출연한 영화 <브로드 캐스트 뉴스>를 열 번이나 반복해 보면서 피디가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조 대표는 그때부터 피디를 평생 업業으로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 연주로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녀의 음악적 재능에 기대를 건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17년간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한 번도 평생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앉아서 외롭게 연주해야 하기에 피아노에서 손을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생각보다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작곡을 공부했어요. 결국 사업차 일본으로 가셔야 했던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에 유학 가서 상미학원대학에서 방송을 전공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어렵게 되어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됐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일본에 남 아서 취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그녀가 피디의 길을 걷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 취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면에서 저보다 월등했던 일본 청년들을 따라잡기가 힘들었어요. 스무 군데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TV 제작사를 찾아가서 면접을 보았는데 ‘뽑아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다’고 눈물로 호소했어요. 집으로 돌아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필사적이었어요. 그런 저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합격했어요. 취업 이후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녀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3년간 NHK, 후지TV, TV도쿄의 방송 프로그램과 기업의 홍보 비주얼을 제작하는 (주) 아바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AVACO CREATIVE STUDIO에서 근무했다.

최종 면접 자리에서 솔직함이 적중했다
청년 조미호가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일본에서는 대지진과 쓰나미 등의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딸이 혼자 일본에서 고생 하는 것을 걱정한 부모님은 그녀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권고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 MBN 매일경제 TV에 면접을 보았다.
“MBN 매일경제TV 방송 피디로 면접 봤을 때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단계를 거치고 장대환 회장님의 면접을 보는 최종 자리에서 다른 지원자들은 증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얼마나 잘 아는지 유창하게 설명했어요. 저는 주식시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어요. 지금까지도 주식 통장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히려 ‘피디가 주식시장을 잘 알아야 하느냐’고 되물었어요. 그분이 ‘그러면 매경에 왜 지원했느냐’고 하셨어요. ‘피디가 주식시장 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분석가들을 잘 섭외하고, 주식시장을 건전하게 바라보고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 는 프로그램들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피 디의 역할이다’라는 포부를 말씀드렸어요. 제가 생각해도 엉뚱한 답변을 했으니 분명히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붙어도 저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매일경제 장 회장이 소신 있는 답변을 한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물론 후에 일하면서 그런 솔직함을 반기지 않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용기이고, 그녀가 일하는 스타일이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매일경제TV에서 그녀는 제2의 피디 인생을 맞게 되었다.

모자랐기에 남들보다 두 배로 준비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기획을 만들어냈고 취재도 잘하기로 소문났다. 국내 상위권 대학 출신이나 스펙을 중시하는 방송사의 문화와 달리 조 대표 자신은 정작 출신 좋고 스펙 뛰어난 인재들 사이에서 특별한 학연과 지연이 없기 때문에 한없는 부족함을 느꼈다. 그 모자람이 그녀를 피디로서 더욱 집중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장정 셋 데려가도 미호 못 당한다’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조 대표는 ‘매일경제신문 비전코리아(총 10회)’, ‘세계지식포럼(총 4회)’에서 총괄 피디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햇수로 5년간 SBS 보도국 미래부로 이직하여 PD로 활동했고, 미래한국리포트, 서울디지털포럼 등 국내 내로라하는 포럼을 진행하는 총괄 피디를 맡았다.
“학연과 지연을 중시하는 인재들 사이에서 피디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 때 저는 두 개를 만들었고, 남들이 집에 가서 쉴 때 여전히 사무실에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동료나 선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조미호 대표는 지난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쉽게도 부유하게 성장하고 좋은 학벌을 가진 친구들은 부모의 반대에 쉽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 친구들은 경력 5년차가 되면 갈등하다가 중도하차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 우아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뾰족구두를 신거나 화장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항상 바쁘고 분주했어요.”

일이 재미있고 미쳐야 산다
(주)화제인의 일은 100퍼센트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특허나 발명품도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도 일어난다. 그래서 그녀는 순간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항상 긴장한다.
“제품을 만들 때 기계에 하자가 생기면 다시 정비해서 제품을 생산하면 되지만,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은 생방송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절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실수를 만회할 수 없어요. 한번의 실수로 인한 손실이 큽니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항상 긴장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력과 체력이 겸비되고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있는 사람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모른 척 실수를 덮고 지나치고 싶은 게 사람이지만 실수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조 대표는 남달랐다. 그녀는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실수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편이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잃을 까봐 솔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결단력이 있는 선택을 하며 용기 있게 사는 것을 봅니다. 저 또한 가진 게 없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고 해요.”

기획 아이템은 늘 가까이에서 얻는다
(주)화제인에서는 영상제작을 외주로 돌리지 않고 직접 진행하기에 신속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또한 캠페인 피디로도 활동했던 조 대표의 경험을 살려, 2010년 서강대학교 ‘메이킹 히스토리’의 50주년 기념사업과 2014년 대구가톨릭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 등 10억대 이상의 기념사업도 총괄했다.
3억대로 추진했던 세계군인체육총회는 2015년 10월 문경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군 인체육대회의 차기 개최지를 선정하는 총회로, 전 세계 CISM 83개국 대표단이 300명 참석했고, 규모도 기념비적인 행사로 평가받았다.
“지금껏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결같은 애정으로 사람을 대해왔고, 지금까지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기획 아이디어를 위해, 늘 안테나를 세워둔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을 메모하거나 분석해두었다가 좋은 자료는 회사 구성원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 ‘K팝 스타’에서 노래 대결이 벌어진 것을 보았는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은 한 가수 지망생의 경연이 마음에 꽤 남더라고요. 지원자를 ‘순수하다’고 평가했던 한 심사위원은 ‘ 순수성조차 전략’이라는 사실에 소름 끼쳐 하며 깜짝 놀라는 겁니다. 캠페인의 전략도 그와 같아요. 전략에 진정성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 게 됩니다.”

정진할 수 있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조미호 대표는 가끔 혼자 멈춰 서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모습에 고심하곤 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주된 업이기 때문에 직원 간의 성향, 성격과 언행, 클라이언트를 대하 는 눈빛,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화제인으로 왔는지를 관찰한다. 그 이유는 그런 하나하나의 요소가 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저는 혼자서만 일을 잘하면 그만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컸기 때문에 절벽에 떨어져도 기필코 기어 올라오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잘 큰 후배들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노하우와 메뉴얼도 전수해주고, 총체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미호 대표는 창업 이래 7년째 성장가도를 달리는 회사를 볼 때마다 불현듯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기업의 외면적 성장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내실을 다지며 견고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기차가 멈출 수 없듯 화제인의 성장도 그녀의 뜻에 따라 늦출 수만은 없다. 그래서 클라이언트 회의를 하루 두 건 이상 하지 않는 게 그녀만의 원칙이다. 일로 인한 과부하로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화제인 세 글자를 세상에 남기다
조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제인’을 창업했던 진정한 뜻이 세상에 남아있기를 바랐다. (주)화제인의 ‘건강한 기업 문화와 올바른 소통으로 고객의 행복가치를 실현하는 감성창조기업’으로서의 정신을 훼손 하지 않고 후대에게 자산으로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조 대표. 그녀는 이제 자신보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정신력 함양과 마인드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투명하고 맑은 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던 소신대로 회사 경영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논하고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도 소통으로 화합하는 조 대표는 크고 작은 시련을 통해 성숙해진 구성원들과 창립 이래로 가장 단합이 잘 되는 지금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 | 홍수정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