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고 좋아하기 마련이다. 이성을 볼 때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전인철 씨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 이성을 보는 기준이 외모가 아닌 마음이 예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혜로운 아내와 살아가는 그의 행복한 나날을 들여다 보았다.

 
 
외모지상주의 자유청년
부잣집에서 태어나지도, 공부를 썩 잘하지도, 학벌이 좋지도 않았던 나는 별로 대단한 것도 없는데 겉멋만 잔뜩 들어 있는 학생이었다. 대학시절의 나는 삭발한 머리에 농구공 무늬처럼 스크래치를 넣고,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귀걸이를 한 모습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한 장교가 “너는 머리 두상이 동글동글 예쁘니 삭발하면 인물이 나겠다”고 해서 삭발을 했고, 미용실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께서 “요즘 머리에 스크래치 넣는 게 유행이야. 아들도 한번 해보지”라고 하셔서 스크래치를 넣었고, 열이 많은 체질이라 통풍이 잘 되고 편한 체육복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대학 후배들은 그런 나를 조폭처럼 보고 ‘저런 사람이 왜 우리 학과에 있지? 이제 학교생활은 완전 꼬이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다들 내가 자유분방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는 좋아해주고 친하게 대해주었다.

회의감 드는 인생에 찾아온 해외봉사
군대에서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24살 황금 같은 나이, 황금 같은 주말에 하루 종일 일하며 스무 살 꼬맹이들한테 깍듯이 서빙하는 일을 해도 3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시험기간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집에 와서 새벽 3~4시까지 공부했지만, 항상 어중간한 성적이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내 삶의 기준이 잘못됐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 학교 게시판에서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보았다. 대학생들이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 밑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해외에 봉사하러 가면 숙박도 공짜로 하고 영어와 외국문화도 배울 수 있겠다.’
그 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이 주최하고 진행한 세계문화체험박람회에 가서 우모자라는 아프리카 댄스를 보았는데 태어나서 그런 공연은 처음이었다. 역동적이고 격렬한 동작과 복장, 박력 있는 추장! ‘야, 저거 배우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지원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남아공에서 봉사 단원들이 각각 한복과 태권도복을 입고, 피에로 분장을 한 채 아이들에게 한국노래와 태권도를 가르쳐주었다. 한국 문화를 배우며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남아공에서 봉사 단원들이 각각 한복과 태권도복을 입고, 피에로 분장을 한 채 아이들에게 한국노래와 태권도를 가르쳐주었다. 한국 문화를 배우며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얼굴보다는 마음이 예쁜 그녀
남아공으로 해외봉사를 가기 전,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키가 172cm에 미인이었다. 신입생 환영회를 할 때 처음 보고 ‘연예인인가’ 싶은 생각에 뚫어져라 쳐다보았을 정도였다. 당시 같이 길을 걸어가면 남자들이 여자친구에게 한 번씩은 눈길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 회원 수가 만 명인 인터넷 카페가 있었는데 매주 한 번은 여자 친구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런데 입대를 하고 첫 휴가를 나왔는데, 그 여자 친구가 내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던 선배랑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저렇게 쉽게 바뀔 수 있지’ 하는 마음에 그때부터 반년 정도는 속앓이를 했던 것 같다.
남아공에 다녀온 뒤에는 사람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남아공 굿뉴스코 지부 앞에는 잔디 운동장처럼 보이는 잡초 운동장이 있었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1시간 정도 그 운동장 위를 천천히 걸었다. 저녁 7시 정도가 되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다 운동장 끝에 있는 나무에 걸리고 주위로 붉은 빛의 노을이 졌다. 그곳에서 나를 뒤따라온 개 두 마리와 함께 조용히 묵상에 잠기곤 했다.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한국과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평안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종종 가지면서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구상하기도 하기도 했다. 그 시간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기에 적합한 시간이었다.
원래 체육 선생님이었다는 한 단원은 대회 입상에 대한 강박관념과 학부모님들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가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너무도 순수한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치유되어 돌아왔는데 ‘지금도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하며 들려주는 그의 체험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줄담배를 피우던 여자 단원은 미국으로 해외봉사를 간 이후에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으로 고통하는 현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는 이성에 대한 기준과 시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넓은 세상에서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이후로는 짙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도도한 모습으로 다니는 여자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다. 기왕이면 키 크고 인물 좋은 사람이 마음에 드는 건 당연하겠지만, 사람은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아름답게 다듬어졌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깨끗하게 닦인 거울처럼 내 마음을 비춰보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 지금의 아내는 내 마음의 거울이다.

 
 
지혜로운 아내가 사랑스러워~
아내는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경찰시험에 몇 번 낙방한 뒤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알게 되어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우리 두 사람 다 울산에 살면서 함께 굿뉴스코 홍보 활동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리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
이번 달이 결혼 2주년인 우리 부부는 여느 부부처럼 별일도 아닌 것으로 티격태격하는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다툼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 나가느냐다. 아내는 나와 다툰 날에는 꼭 내 손을 잡고 자거나, 먼저 안아준다. 아내와 살면서 느끼는 것은 아내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해주며 지혜롭다는 점이다. 결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지혜롭게 말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예를 들어, 하루는 아내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는데 곁눈질로 보니 누군가 아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아내가 좀 짜증스러웠는지 ‘저도 잘 모르는데 그렇게까지 물어보시면 안 되죠’라고 썼다. 그리고 화면을 잠깐 보다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개에게 여쭤보세요’라고 고쳐서 썼다. 그리고 다시 잠깐 생각하더니 ‘저도 잘 모르는데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라고 고쳐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런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내는 해외봉사 활동을 할 때 물론 즐겁기도 했지만 현지 학생들에게 합기도, 한국어 등을 가르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을 진행하는 나 한 사람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도 받고 소통도 하면서 크고 작은 지혜가 모여야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요즘 지식이 뛰어나거나 스펙이 높은 학생은 많지만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아내는 직접 몸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혜를 배운 것이다.
부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하고, 자존심을 꺾을 줄도 알아야 되고,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굿뉴스코 단원들이 배운 것은 언어, 문화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체험들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넘어가는 법을 안다.
나는 결혼할 때 집도 샀고, 차도 있고, 개인 서재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 추진했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지갑에는 만 원짜리 한 장 없었고, 한 달 정도는 밥에 김치만 먹기도 했다. 아내의 생일 때는 길거리에서 파는 셀카 봉을 선물로 사주었다. 그때에도 아내는 단 한 번도 결혼을 후회한다거나 못 살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난 당신을 믿어. 잘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내는 원래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쾌활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그저 성격이 좋아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실패도 해보고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는 등의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외모만 보고 대학시절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면 아마 내 인생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혜로운 아내와 함께 맞이하는 행복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사진 | 배효지 기자 장소제공 | caféimt 서울역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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