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팀이 만든 휴보 로봇

미국과 일본처럼 로봇강국도 아닌 한국 팀이 2015년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그들은 한국 카이스트 연구팀. 인간을 재난에서 구해줄 로봇 휴보의 탄생부터 성장기, 변신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휴보 로봇을 중심으로 사진촬영을 했다.왼쪽부터 배효인 (카이스트 기계과 박사과정 2년차)조현민 (기계과 박사과정 3년차) 오재성 (기계과 박사과정 1년차) 이들은 모두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연구팀 팀원이다.
휴보 로봇을 중심으로 사진촬영을 했다.왼쪽부터 배효인 (카이스트 기계과 박사과정 2년차)조현민 (기계과 박사과정 3년차) 오재성 (기계과 박사과정 1년차) 이들은 모두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연구팀 팀원이다.
신장 168cm, 무게 80kg, 성인 남성 크기의 로봇이 발을 들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대회의 마지막 관문인 ‘계단 오르기’ 단계에서 로봇은 중심을 잡아가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관객들이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이윽고 로봇의 마지막 발이 계단 끝에 올라섰고 객석에서는 큰 환호소리와 박수소리가 들렸다.
지난 6월,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결승전에서 한국에서 출전한 카이스트 팀의 로봇 ‘DRC 휴보’가 영예의 1등상을 거머쥐었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의 배효인 씨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힘들게 준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승까지는 예상치 못했어요. 작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는 아침 8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종일 일했어요. 덕분에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대회 시작 전, 팀원이 최종적으로 로봇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대회 시작 전, 팀원이 최종적으로 로봇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 최초 인간형 로봇 ‘휴보’의 탄생
로봇 ‘휴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04년도. 휴보는 인간의 신체와 유사하다는 뜻의 ‘휴머노이드 로봇’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그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봇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던 일본의 혼다는 지난 2000년, 15년의 연구개발 끝에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ASIMO’를 선보였다. 당시 카이스트 기계제어연구실을 이끌던 오준호 교수는 이를 보며 한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겠다는 강한 동기를 얻었다. 수십 년간 로봇 연구에 매진하며 수천 억 거금을 들였던 일본에 비하면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에서 그는 ‘공학자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배워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고 한다. 그렇게 2002년 당시 두 발로 걷는(얼굴도 손도 없었다) 로봇인 ‘KHR1’이 한국 최초로 만들어졌고, 2004년도부터는 연구실 명칭을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로 바꾸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그 후 6번에 걸쳐 로봇의 성능을 향상시킨 것이 지금의 휴보라고 한다.
인간의 형태를 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처럼 걸어다니고 손을 이용해 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누군가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 T-800처럼 총에 맞고도 끄떡없는 괴물 로봇이 등장할까 걱정할지 모르지만, 사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로봇이 작은 동작 하나를 하기 위해 연구원들은 사전에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로봇이 서서 걸어 다니기까지는 정말 많은 사람의 손이 들어가는 것이다.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대회 하루 전, 최종 리허설 당시 팀원들이 로봇을 조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대회 하루 전, 최종 리허설 당시 팀원들이 로봇을 조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재난에 인간을 대신해 일할 로봇이 되기 위하여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군사용 로봇이 투입되어 방사성 물질을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한 예가 있었다. 하지만 작업 도중 통신이 끊긴다거나 계단과 같은 장애물에 길이 막히는 일도 있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재난 상황에 인간을 대신할 실용적인 로봇을 만들자는 취지로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가 개최되었다.
2012년 처음 대회 공고가 떴을 때 세계 로봇공학자들은 하나같이 과제의 난이도에 깜짝 놀랐다. 차를 운전해 현장에 도착한 뒤 문을 열고 들어와 밸브를 잠그고 드릴로 구멍을 뚫는 등 사람이라면 몇 분 안에 해낼 일이었지만 당시 로봇 공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도전하며 진행한 연구는 진일보한 성과를 거두며 그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카이스트 팀은 대회 1등을 차지하며 로봇대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일본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휴보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존 모델의 성능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휴보의 설계와 알고리즘,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지만 2013년에 치룬 예선의 결과는 16개 팀 중 11위. 원인은 연구실 밖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저희 팀이 한국에서 최고라고 해서 출전했는데 세계에서 11등밖에 하지 못해 자존심에 상처도 받았어요. 연구실에서는 로봇이 넘어지거나 컴퓨터의 전원이 나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장에선 그러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다시 1년 반 동안 모든 것을 재설계했습니다.”
과감한 변신을 결심한 팀은 대회 결선을 앞두고 10개월 간 하루 15시간 이상을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노력 후 만들어진 ‘DRC 휴보+’는 2015년 결선에서 8개 과제에서 8점 만점, 44분 28초의 기록으로 25개 참가 팀 중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우승을 거머쥔 카이스트팀의 기념촬영.
2015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우승을 거머쥔 카이스트팀의 기념촬영.
휴보와 함께 내공을
“연구원들끼리 서로 친하고 말도 잘 통해요. 대회를 준비하면서 연구방향을 두고 의견이 부딪칠 때가 많았지만 나이,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동력으로 삼았어요. 휴보와 함께 공학자로서의 내공을 쌓는 것 같습니다.”
15년 전 아무 기반도 없던 한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내고, 다시 3년 동안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들이 쌓았던 내공이란 결국 ‘도전하는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변신하는 휴보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휴보의 발전 과정
2002 KHR1(두 다리만 있음) → 2003 KHR2(사지와 얼굴 부착) → 2004 휴보1(케이스 씌우고 다듬음) → 2005 알버트휴보(우주복에 아인슈타인 얼굴 부착) → 2009 휴보2(한국 최초, 세계에서 3번째 뛰는 로봇, 총총 뛴다) → 2013 DRC휴보(대회준비용) → 2014 DRC휴보+(대회에서 우승한 휴보)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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