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삼성의 CEO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삼성을 거론하지 않고서 한국 경제를 말하기란 힘들 것 같다. 계열사인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 2012년 매출 201조 원, 영업이익 29조 원을 기록했다. TV와 메모리반도체 등 세계 1위를 달리는 제품만 10여 종에 이른다. 그러나 <투머로우>의 대학생 독자들이 갓 태어난 20여 년 전만 해도 삼성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세계 가전회사들의 각축장인 미국의 전자매장에서 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GE, 필립스, 소니 등 구미와 일본 제품들이었다. “손님이 와서 간혹 삼성 제품을 찾으면 직원들은 ‘누가 그런 걸 쓰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걸 가져다주곤 했다”는 게 당시 가전매장 직원의 기억이다. 그랬던 삼성이 현재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브랜드가치 9위에 올라 있다.

 
 
삼성의 초고속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수장인 이건희 회장의 ‘배움의 경영’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이 많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 회장은 영화, 역사, 기계공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이를 위해 그가 즐겨 사용한 공부법은 각 분야 최고인 인물들을 만나 교분을 맺으며 ‘이들은 어떻게 1등이 되었나?’ 연구하는 것이었다. 고교 시절 레슬링 선수였던 이 회장이 유명 프로레슬러 ‘역도산’과 18년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로 지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건희식 배움의 경영이 구체화된 것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였다. 반도체 가 장래에 삼성의 핵심 먹거리가 될 것을 내다보고 사재를 털어가며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문제는 기술이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던 미국과 일본이 한국에 기술을 전수해 줄 리 없었다. 결국 이건희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엔지니어들을 만나 설득해가며 기술을 배워야 했다. 그런 갖은 고생 끝에 시작한 반도체 사업은 현재 미국과 일본 업체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채 업계를 선도하는 중이다. 삼성의료원 설립을 추진할 때도 그는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설계를 맡기려는 계획을 물리치고 경험이 풍부한 다른 업체에 설계를 의뢰하고 삼성물산으로 하여금 이를 배우라고 했을 정도다.
이처럼 이건희는 경쟁업체에 대한 벤치마킹을 쉬지 않을 뿐 아니라 임직원들에게도 이를 강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삼성 사옥에서 열리는 사장단 회의다. 이 회의에는 외부전문가 초청강의가 포함되는데, 그 주제는 역사·문화·예술·스포츠 등 각양각색이다. 직원들이 한창 출근할 시간에 CEO들이 더 일찍 모여 경영과 직접 상관도 없는 강연을 듣는 까닭은 무엇일까?
1차적으로는 교양을 쌓고 지적知的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21세 기에 필요한 인재상으로 ‘T자형 인재’를 제시한 바 있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넘어,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지식을 보유해야 한 다는 뜻이다. 과거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같은 스포츠용품 제조사들이었지만, 오늘날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게임기 업체들이라고 한다. 게임기가 많이 팔릴수록 사람들이 운동을 적게 해 스포츠용품이 적게 팔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이처럼 시대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둘째,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경영의 묘妙를 터득할 수 있다. 경영은 기업의 CEO나 대학교수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집안 살림을 규모 있게 꾸리는 주부,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선생님도 넓은 의미에서의 경영자다. 일례로 삼성 사장단에게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십’을 강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지휘자 서희태는 지휘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관객의 기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수익을 창출하며, 연주자의 기량을 파악 하고 훈련시켜 최고의 연주를 완성시킨다’라고. CEO의 업무와 완벽히 일치하는 대목이다. 결국 지휘자의 리더십과 경영원칙을 기업에 적용하면 얼마든지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래서 옛말에 ‘고수끼리는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무엇보다 부하 임직원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싶은 것은 경청의 DNA일 것이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뜻의 경청傾聽은, 그가 처음 출근하던 날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써 준 휘호이기도 하다. 듣고 배우는 일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2002년, 삼성이 늘 오르지 못할 나무로 여기던 소니를 앞섰을 때도 그는 ‘우리는 아직 소니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잘 나갈 때를 오히려 위기로 생각 하며,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 그의 마인드야말로 오늘의 삼성을 만든 원동력이자 가장 큰 자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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