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완전탐구 11회

<태진이의 좌충우돌 자전거 여행>의 저자인 송태진은 굿뉴스코 출신으로 2008년에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인터넷방송국에서 뉴스 팀장으로 재직하며 본지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대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그가 부룬디의 이색문화인 하우스보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는 왜 빨래를 하니?
산뜻한 바람이 부는 햇볕 쨍쨍한 부룬디의 오전. 밀린 빨래를 해치우기 좋은 날씨다. 마당 구석 수도꼭지 옆에 플라스틱 대야를 가져다 놓고 평평한 돌을 빨래판삼아 손세탁을 한다. 휘적휘적 물장난 같은 엉성한 빨래를 끝낸 후, 마지막 중요한 의식을 치른다. 축축한 빨래를 짜지 않고 그대로 줄에 널어놓는 것. 한국에서라면 속칭 ‘짤순이’를 돌려야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두 시간 만에 뽀송하게 만들어 준다. 건조기에 돌린 듯 마법처럼 잘 마른 빨래를 걷을 때면 내심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프리카에서 즐기는 소소한 생활의 기쁨이다.
어느 날씨 좋은 날.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교육원에 놀러온 대학생 자원봉사자 필벳이 빨래 통에서 물장구 치고 있는 내게 물었다.
“쏭,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왜 빨래를 하니?”
나는 왜 빨래를 하는가? 한 번도 의문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심오한 질문이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따위의 철학적인 물음일까.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는 필벳에게 답했다.
“빨래를 왜 하냐고? 그야 물론, 옷이 더러워지니까.”
“아니, 내 말은 넌 외국인이잖아. 그런데 왜 빨래를 직접 하나 해서.”
“내 옷이니까 하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닌가? 너는 빨래를 하지 않아?”
“응. 빨래는 하우스보이가 하는 일이잖아.”
하우스보이 혹은 메이드. 부룬디 사람들은 ‘무투무의시’라고 부르는 그들은 집안일을 돕는 가사도우미라고 볼 수 있다. 남자는 요리를 하거나 경비를 서고, 여자는 아이들을 돌보고 시장을 다닌다. 천장에 붙은 거미줄 떼어내기, 텃밭에 자라는 작물 가꾸기, 막내 똥기저귀 갈아주기 등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무투무의시의 손을 거친다. 물론 밀린 빨래도 그들의 몫이다. 이들은 자신이 일하는 집의 가족들과 함께 먹고 자며 한 식구처럼 지낸다. 혼자 살거나 웬만큼 가난하지 않다면 부룬디의 가정에는 대부분 무투무의시를 두고 있다. 가난한 아프리카에 가사도우미가 보편적이라니, 부유한 집에서만 가사도우미를 쓸 것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현실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무투무의시가 꼭 필요할 정도로 부룬디의 가사일은 노동강도가 센 힘든 일이란 걸 말해주기도 한다. 우선, 대부분의 부룬디 가정에는 수도시설이 없다. 즉, 누군가 매일 물을 떠와야 음식을 만들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할 수 있다는 뜻. 한 시간 이상 걸어 물 한 동이 겨우 떠오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가스도 없다. 불 피우기 어렵고 손도 많이 가는 숯이나 장작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 당연히 전기도 없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편리한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냉장고가 없으니 매 끼니마다 시장에 가서 음식재료를 사와야 하고, 손으로 하는 빨래와 청소는 하루 종일 해도 끝나지 않는다.
수도, 가스, 전기는 없지만 아이들은 엄청 많다. 한 집에 다섯 명, 열 명도 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을 일일이 씻겨주고 옷 입히고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부룬디의 평범한 가정 집을 방문했다.조부모님을 비롯한 부모님과 숱한 자녀들까지…!이 많은 식구들의 편의 생활을 위해선 하우스보이의 도움이 정말 필수적이다.(사진제공=송태진)
부룬디의 평범한 가정 집을 방문했다.조부모님을 비롯한 부모님과 숱한 자녀들까지…!이 많은 식구들의 편의 생활을 위해선 하우스보이의 도움이 정말 필수적이다.(사진제공=송태진)
이 모든 가사 노동을 엄마 혼자서 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슬프게도 부룬디의 엄마들은 거의 항상 언제나 임신 중이다. 아이를 계속해서 낳고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무투무의시는 안주인을 도와 살림을 움직이는 중요한 존재다. 남녀 한 쌍 이상 고용한 가정을 흔히 볼 수 있고, 부유한 집안일수록 그 숫자는 늘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을 ‘머슴’이나 ‘식모’라고 비하하며 불우한 인생의 상징처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부룬디 사람들은 사뭇 다른 관점에서 이 직업을 바라본다.
부룬디에는 오랜 전쟁의 여파로 부모를 여읜 고아와 남편을 잃은 과부가 많다. 또한 가난한 시골에서 맨 몸뚱이만 갖고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도 잔뜩 있다. 거리를 방황하며 부룬디의 극빈층을 이루는 그들을 위해 정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하루라도 일하지 못하면 굶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빈민들은 돈을 벌어보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가난을 입고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극한 형편 속에서 조금만 생각이 어긋나면 이들은 곧장 범죄로 빠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무투무의시는 꽤나 인기 좋은 직업이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2만원에서 5만 원 가량의 급여가 후한 편은 아니지만, 배를 곯는 실직자로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더구나 숙식도 해결된다. 어느 집에서 무투무의시를 구한다는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지원자가 몰린다.
고용하는 주인의 마음도 사뭇 특별하다. 주인들은 하우스보이를 고용할 때 단순히 돈을 주고 가사일 할 일꾼을 구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이를 거둬들여 잠자리와 일거리를 마련해주고 자립할 수 있게 돕는다고 생각한다. 집에 무투무의시가 많으면 그만큼 더 많은 빈민들을 도와주는 좋은 행동이라고 여긴다. 가난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는 사회적인 의식과 부룬디 가정의 심각한 가사노동 강도가 맞물린 무투무의시 문화는 복지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빈민구제활동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친구 필벳은 한번 탈 때 250원 하는 버스비가 아까워서 하루에 몇 시간씩 걸어 다니는 짠돌이 대학생이지만, 역시나 그에게도 하우스보이가 있다. 필벳과 두 명의 친구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는 남자 무투무의시 한 명이 같이 살고 있다. 그는 약간의 보수와 숙식을 제공 받으며 필벳과 두 친구를 위해 청소와 빨래, 요리까지 해준다. 집안일이 특별히 많지 않을게 뻔한 총각 대학생들의 자취방에 하우스보이가 있을 정도라니. 일반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한 일이다.
처음 필벳이 내게 던진 질문, ‘너는 왜 빨래를 직접 하냐’는 물음은 외국인이라면 하우스보이를 둘만한 금전적인 여유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쏭, 네가 원한다면 믿을 만한 좋은 하우스보이를 구해줄게.”
“오, 아니야. 해외봉사단원이라면 빨래를 직접 하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라고.”
필벳의 순수한 호의를 손사래 치며 거절했다. 부룬디 사람들이야 어쨌든 아직 내게는 너무나 벅찬 하우스보이다.

‘세탁기를 쓰는 한국에서는 내가 정말 편하게 산 거였구나…!’손바닥이 팅팅 불어오를 만큼 열심히 빨래감을 주물럭거리는 내 모습(사진제공=송태진)
‘세탁기를 쓰는 한국에서는 내가 정말 편하게 산 거였구나…!’손바닥이 팅팅 불어오를 만큼 열심히 빨래감을 주물럭거리는 내 모습(사진제공=송태진)
하우스 보이 영어 배우던 날
부룬디 IYF 지부가 운영하는 무료 교육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영어 교실이다. 현지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야학처럼 운영되는 영어 교실은 아름아름 입소문을 탔고, 영어를 배울 꿈을 품은 늦깎이 학생들이 날마다 늘어났다. 급기야 기존 교실이 수용하지 못할 만큼 학생들이 많아졌고 우리는 학생들의 수준별로 반을 나눠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새로 만들어진 영어 입문반의 교사가 되었다. 턱없이 부족한 내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지부장님은 일단 시작해 보라고 나를 밀었다. 입문반 학생들은 그야말로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아니 바나나 놓고 J자도 모르는 문맹 수준. 그들에게 영어 알파벳과 글자 읽는 법을 가르쳐야했다.
저녁 7시. 복도를 개조해서 만든 엉성한 교실에는 ‘백인’ 영어 선생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빛 속에서 외국인 교사가 가르치는 영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느껴졌다. 칠판에 대문자 A와 소문자 a를 썼다.
“여러분 이 글자를 아세요? 어떻게 읽죠?”
“아~!”
“‘아’는 프랑스어고요. 영어에서는 ‘에이’에요. 따라해 보세요. 에이~!”
“에이~!”
부룬디는 학교에서 프랑스어로 수업을 한다. 프랑스어가 익숙한 이들에게 같은 알파벳이라도 영어와 불어는 다르게 읽는다는 걸 이해시켜야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수업을 잘 따라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Q’를 가르칠 때였다. 다들 ‘큐’라고 발음 하는데 몇몇 학생들이 다른 소리를 냈다.
 
 
“거기 학생, 이 글자를 어떻게 읽는다고요?”
“츄~!”
“아니에요. 잘 들어보세요. 큐.”
“츄!”
“와하하하하!”
여러 번 반복해도 Q를 ‘츄’라고 읽는 그들 덕에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츄’라고 하는 학생들은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얼굴이 발개졌다. 아니, 흑인이라 얼굴이 발개졌는지 티는 안 났지만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그 학생은 하우스보이에요. 이해해주세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하우스보이들은 프랑스어도 잘 하지 못하고, 토속어인 부룬디어만 할 줄 안다. 그런데 부룬디어 알파벳에는 Q가 없다. 생전 처음 듣는 발음을 하려니 쉽지 않을 수밖에. 한국 학생들이 ‘th’ 발음을 어려워하듯 하우스보이들은 Q 앞에서 혼란스러워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들이 ‘큐’ 발음을 성공 했을 때 교실에는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가득 찼다.
영어 입문반 수업에는 하우스보이 학생들이 꽤 많았다. 생전 처음 공부를 해보는 그들은 볼펜 잡는 것조차 서툴렀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은 뜨거웠다.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서 저녁 일거리를 후딱 끝내고 조심스럽게 주인에게 나아가 “저, 오늘은 영어 공부 다녀와도 될까요?”라며 허락을 받았을 그들. 주인에게 그 말을 하러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부담을 뛰어넘었을까? 하우스보이 주제에 영어를 배워서 뭘 하겠느냐고 타박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 주 두 번씩 있는 영어 수업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영어 알파벳이 하우스보이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새롭고 놀라운 지식이었다. 고작 알파벳 몇 자 배우면서 호들갑 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파벳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Q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들이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희망’이라는 낯선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소중한 부싯돌이었다. 영어 입문반 수업을 시작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나는 영어로 수줍게 대화를 나누는 하우스보이들을 볼 수 있었다. 부룬디의 만능 살림꾼, 하우스보이. 그들에게 희망을 선물해준 영어 입문반 수업은 내게도 커다란 행복이 되었다. 입문반 1기 학생들이 초급반으로 올라가고,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다.
“여러분 따라해 보세요. 큐!”
“츄우~!”
부룬디에는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 무진장 많다.
 

 
 
송태진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이다. 2012년 손정아와 결혼한 후, 현재 아프리카와 청소년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손정아
2007년 부르키나파소로 해외봉사를 다녀오며, 아프리카에서 얻은 행복으로 살고 있다. 해외봉사로 맺은 인연을 따라 필자인 송태진과 결혼했다.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청소년들을 위한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러스트 | 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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