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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병창’ 소리꾼 최준, 음악으로 세상을 그립니다
김성훈 기자 | 승인 2015.10.20 02:15

올해 스물여섯이지만 자폐성 발달장애로 생각과 마음은 일곱 살에 머물러 있는 국악인 최준. 찻길에 불쑥 튀어나와 차에 탄 사람에게 불쾌함을 주는 과속방지턱도, 그에게는 ‘통~ 통~’ 경쾌한 리듬감을 선사하는 고마움의 대상이다. 우리에겐 마냥 소음으로 들리는 지하철 굉음도 그의 마음을 통과하면 경쾌한 지하철 환상곡으로 탈바꿈한다.

   
 
선풍기 소리에 숨은 음계를 찾다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중순, 어느 토크콘서트에서 국악인 최준을 만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기자가 그동안 만났던 여느 인터뷰이들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단순히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어서만은, 그리고 그의 곁에 어머니가 서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유난히 소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플래시와 함께 터지는 찰칵찰칵 소리에 “소리가 너무 예뻐요” 하며 눈을 반짝였다.
무대대기실에 놓인 선풍기를 자연풍-미풍-약풍으로 번갈아 돌리며 “선풍기는 바람세기마다 음이 다 달라요”라고 했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 기자의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걸까? “미풍은 B-플랫 음이 나요” 하고 덧붙인다. 기자는 바로 스마트폰의 피아노앱을 열어 B-플랫 건반을 눌러보았다. 놀랍게도 선풍기 날개는 B-플랫과 거의 같은 높이의 소리를 내며 윙윙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절대음감? 선풍기 소리뿐만이 아니다. 청계천에서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텀블러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는 소리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소리를 잡아내 악기처럼 다룰 줄 안다는 것이 그의 어머니 모현선 씨의 말이다.
이윽고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들이 음악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국악인으로 성장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들은 중간중간 자신의 자작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첫 번째 곡인 <지하철 환상곡>은 그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즉석에서 작곡한 곡으로, 답답한 지하선로를 달리던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밝고 경쾌하게 바뀌는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두 번째 곡인 <평창의 밤하늘>은 제목처럼 고요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담아낸 듯하다.
하지만 기자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 공연은 단연 세 번째 공연이었다. 피아노 병창! 최준이 판소리와 피아노 연주를 결합시켜 창안한 새로운 장르다.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어려운 한자성어들로 이뤄진 판소리 <적벽가> 가사를 막힘없이 줄줄, 그것도 애잔한 감정까지 담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저 가수가 정말 내가 방금 대기실에서 만난 최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의 삶과 음악 이야기가 궁금해진 나머지 어머니 모현선 씨의 이야기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좌)두드려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면 그에게는 작은 머그컵도 타악기가 된다. 드럼은 말할 것도 없다.
(우)지난 8월 토크콘서트를 마치고 학생 관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뜻밖에 찾아온 음악과의 만남
부모님 슬하에 첫 아들로 태어난 준이는 뽀얀 피부와 해맑은 미소로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유난히 말이 늦고, 사람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에는 ‘준이가 좀 늦되는 아이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머니. 그러나 준이는 발달장애 2급의 중증 자폐증이라는 게 의사의 진단이었다. 준이가 30개월 때 일이다. 어머니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의사에게 “선생님, 그럼 저희 준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평생 저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힘이 생겼다. 부모님은 그날부터 장애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의상실을 운영하며 준이의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아버지 또한 프리랜서로 디자인 일을 하며 틈틈이 준이를 돌보았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준이를 특수학교에 다니게 하다 일반학교로 전학시켰다. 준이가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라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언어표현에도 미숙한 것은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준이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준이의 자폐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이를 집 근처 국악학원에 데려가 판소리를 가르쳤다.
“의사선생님이 ‘말을 계속하지 않으면 혀의 기능이 퇴화할 수도 있다’고 하셔서 언어치료도 시킬 겸 시작했어요. 목청껏 소리도 지르고 북도 두드리면서 스트레스를 발산시킬 수도 있고요. 그런데 곧잘 따라할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내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높낮이가 틀리거나 장단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낸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흥보가>와 <춘향가>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판소리 가사에는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한자성어가 많이 나온다. 일상적인 의사소통도 힘들어하는 준이가 그 가사들을 외우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까. 여느 친구들은 100번 정도 연습하면 터득하는 가사 한 마디도 1,000번 넘게 부른 뒤에야 겨우 따라할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기쁘면 하하, 슬프면 잉잉 정도가 감정표현의 전부인 준이에게 판소리에 담긴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고 그대로 표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슬프게 불러야 할 대목을 너무도 씩씩하게(!) 부른 적도 있었단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피아노 교습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치기 힘들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준이가 마음에 드는 음 하나만 계속 눌러대는 바람에 그 건반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준이는 홀로 집에 있는 피아노를 치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번은 준이와 함께 커피숍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준이가 얼굴이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 아까 커피숍, 음악’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방금 커피숍에서 흘러나왔던 <캐논>이란 곡이었어요.”
매주 일요일이면 서울 인사동 거리에 소리판을 펼쳐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판소리 공연을 했다. <흥보가> 완창에 성공하며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생애 첫 대중공연을 한 것도 이 시기였고, 중학교 때는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 일반 학생들과 실력을 겨뤄 당당히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다 주어도 돌아서면 아쉬워하는 어머니 마음

   
피아노로 판을 만들다. 중학교 2학년 공연 이후 6년 만에 꿈의숲 아트센터에서 공연했을 때의 공연포스터. 스승인 피아니스트 신민임, 국악인 민혜성과 협연한, 그로서는 퍽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최준이 음악공부를 시작한 지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음악을 배우면서 준이의 성격은 몰라보게 밝고 명랑해졌다. 집중력도 좋아졌고 닫혀 있던 말문도 차츰 트여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처음 시작한 대중공연은 지난해 국립극장 공연까지 포함해 8회나 치러냈다. KBS <인간극장>과 SBS <스타킹>에도 출연했고,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인지도도 얻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내려놓고 오롯이 아들의 뒷바라지에만 전념했다. 준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함께 교실에서 지냈다. 중고등학교 때는 아들을 교실에 들여보낸 후 운동장이나 학교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다 수업이 끝나면 준이를 데려오곤 했다. 초중고 12년을 아들과 함께 새로 다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음악이 아들의 적성에 딱 맞는 분야임을 안 어머니는 틈틈이 준이를 크고 작은 음악회에 데리고 다녔다. 공연관람이 끝나면 음악가들에게 가서 준이의 간단한 연주를 보여주고 앞으로 어떤 음악공부를 시키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제가 미술 전공이다 보니 음악에는 문외한이었어요. 준이에게 무슨 음악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보니, 그렇게 유명한 음악인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남대문 시장에 가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옷감 등을 떼다 와야 했어요. ‘그렇게 바쁘게 살기가 힘들지 않냐?’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느 어머니라도 그렇게 할 거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준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실용음악학과에 입학한다. 피아노 실력을 가다듬고 작곡까지 배우면서 최준의 음악적 기량이 다시 한 번 성장했다. 피아노 병창을 생각해낸 것도 이 때 일이다. 피아노 병창이 최준의 작품이라면, 최준은 어머니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식에게 어떻게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는 오히려 아들을 향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늦게나마 말문이 트인 준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초등학교 때, 심지어는 4,5살 때 일들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며 깜짝 놀라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기억력이 좋을 줄 알았더라면 그 때 좀 더 좋은 경험을 많이 시켜줄 걸’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해요.”
지난 6월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최준의 탁월한 음감을 상세히 소개했다. 지하철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소리만 듣고도 ‘이 열차는 몇 호선이며, 어느 회사에서 몇 년도에 생산한 차량인지’를 정확히 알아맞힐 정도다.
음감이 유난히 발달했기 때문일까. 여느 사람 같으면 말이나 글로 마음을 표현하고 기록을 남기지만, 그는 음악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기록을 남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심정을 담은 피아노곡 <On the Way>를 유투브에서 들어보면 할아버지를 향한 아쉬움과 슬픔이 잘 묻어난다. <북서울 꿈의 숲>에서는 탁 트인 잔디밭의 싱그러움이 전해진다. 최준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감상하며, 그를 장애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의 잘못된 편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었다.

   
 
최준의 음악인생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 나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에게 어떻게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그러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에 최준은 판소리와 피아노라는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그에게는 새로운 스승이 한 사람 생겼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작곡가 류형선 선생이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 공연에서 그를 만난 어머니는 ‘준이가 좀 더 체계적으로 작곡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이야기했고, 이에 류 선생은 흔쾌히 준이에게 작곡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 법인가. 최준이 또 어떤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줄지 내심 기대된다.

사진 | 배효지 기자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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