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대중 유혹의 기술'

사진 1이 있다. 사진 속 포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전쟁과 무더위에 탈진한 나머지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럼에도 적군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그의 머리 위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여러분은 이 사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아마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포로를 저렇게 대하다니 참 잔인하다’ ‘전쟁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 2가 있다. 사진 속의 두 군인은 피부색도 군복도 서로 다르다. 녹색 군복을 입은 군인의 팔이 뒤로 돌아간 것을 보면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에게 포로로 잡힌 모양이다. 그럼에도 얼룩무늬 군인은 기꺼이 포로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다. 메마르고 험악한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났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 광경을 보니 가슴 뭉클한 뭔가가 느껴진다.

사진1(좌)과 사진2(우)
사진1(좌)과 사진2(우)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사진이 실제로는 하나의 사진임을. 이처럼 똑같은 장면도 어떤 각도로 편집해 보여주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뇌리에 전혀 상반된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사진을, 실제로 아랍 방송사 ‘알 자지라’는 전자와 같이 보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뇌리에 미군이 포로를 학대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반면 미국 방송사인 CNN은 후자와 같이 보도해 미군은 포로에게조차 인도적인 처사를 베푼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정도는 다음 사례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하다. 2004년 4월,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 홍보부장 이브라힘 후퍼에게 사진 한 장이 메일로 전송되었다. 이라크전쟁에 참전 중인 미 해병대원이 현지인 소년 두 명과 함께 엄지를 치켜들고 활짝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문제는 소년이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문구였다. ‘부드로 상병이 우리 아빠를 죽이고, 누나를 임신시켰다.’ 그야말로 전 미군이 발칵 뒤집힐 대사건이었다.

사진 속 인물이 실제로 해병대를 제대한 ‘테드 부드로’ 상병임을 밝힌 해병대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부드로 상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종이에 전혀 다른 문구가 적힌, 이 사진의 새로운 버전들이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시카 심슨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적힌 것도 있었고, ‘부드로가 우리 아빠를 살리고, 누나까지 구해줬다’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힌 것도 있었다. 부드로는 부드로대로 당시 종이에는 ‘해병대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그대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면 일단 믿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듯,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라도 100%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포토샵 등 디지털 이미지 처리기술의 발달로, 뚱뚱한 아가씨의 다리를 매끈하게 다듬거나 광고모델로 나온 남자배우의 근육을 부풀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담은 이 사진을, 아랍의 ‘알 자지라’는 1과 같이 보도하고, 미국의 CNN은 2와 같이 보도하여 전혀 상반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 주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담은 이 사진을, 아랍의 ‘알 자지라’는 1과 같이 보도하고, 미국의 CNN은 2와 같이 보도하여 전혀 상반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 주었다
우리가 우리 눈을 믿지 말아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의 눈 자체가 지극히 불완전한 감각기관이다. 둘째, 여태 설명한 것처럼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육체의 눈 외에 마음의 눈으로도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1951년, 아이비리그 럭비대회 결승에서 격돌한 다트머스대와 프린스턴대는 라이벌답게 거친 경기를 펼쳤다. 2쿼터에서는 프린스턴 선수의 코뼈가, 3쿼터에서는 다트머스 선수의 다리가 부러질 정도였다. 경기가 끝난 뒤 두 학교 학보사에서는 서로 상대팀이 야비한 경기를 펼쳤다는 기사를 실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트머스 학생들은 프린스턴 선수들이 범한 반칙에만, 프린스턴 학생들은 다트머스 학생들이 범한 반칙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뇌가 선택적 지각, 즉 마음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가려서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간 <대중 유혹의 기술>은 광고업자나 PR전문가, 정치인, 마케터 등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 우리 감각과 심리의 허점을 파고드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그 유혹의 기술이 궁금한 사람이나 그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읽어볼 만한, 흥미로운 사례와 자료들이 가득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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