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빠질 수 있는 '불신'

 
 
어느덧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경제성장은 이뤄졌지만 반대로 사람간의 신뢰는 과거보다 훨씬 낮아졌다. 아니 무관심해졌다. 부정적인 생각 하나가 크고 작은 불신으로 이어져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단절된 사연, 여러분의 마음 속 사연은 어떤 모습인지 체크해보자.

우리는 ‘3불不’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불신하고 불만을 품고, 불안하게 살아간다는 의미다. 신체도 근육을 키우면 건강하듯 사람의 마음도 근육을 키우면 강해진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사람은 상처를 입고 나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게 된다. 불신의 사전적 의미는 ‘믿지 못하다’로, 불신이 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으로 나타나 사회적 문제로 커져서 심각한 수준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상처입은 후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에게 화를 낼지 몰라’ ‘언제 나를 욕할지 몰라’ 하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불안함이 더욱 커진다. 상처입은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불신의 대상이 가족이기도 하고 때론 친구, 사제지간, 직장 동료이기도 하다.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믿었던 사람에 대한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머물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추측으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물면서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게 된다. 그런 불신들이 하나하나 현실로 나타나 사회적인 문제로 심각해지곤 한다. 다음 예화는 불신이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된 경우이다.

사례1. 불신은 부정적인 생각의 반복이다
2015년 8월,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드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미국 버지니아주 베드포드 카운티 모네타에 있는 이 지역 방송사인 WDBJ-TV의 기자 2명이 생방송을 진행하다가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이 그대로 보도됐다. 이날 WDBJ-TV 뉴스 팀과 시청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데 더 충격을 안겨다 준 것은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는 해고된 전직 동료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용의자는 베스터 리 플래내건 씨로 7발의 총을 쏜 뒤 달아났고, 5시간 뒤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 결국 자살했다. 사건 발생 2시간 뒤에 자신의 트위터에 범행 동기와 동영상을 올려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받은 것에 대해 피력하는 내용이 삽시간에 퍼졌다.
베스터 리 플래내건 씨는 평소 동료가 흑인인 자신을 ‘인종차별했다’며 감정이 상했다. 그는 2012년에 해고를 당하면서 더욱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가중됐다. 그는 분노 조절장애와 피해망상증이 있었다. 그의 자살 노트에는 스스로를 ‘폭발을 기다리는 화약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무고한 인명 피해를 낳은 ‘부정적 생각’이 점점 커져 되돌릴 수 없는 범행으로까지 이어졌다.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감정이 상하는 현상에 집착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 인식한 채 자신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나친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WDBJ 측은 “모든 직원들의 가슴이 무너졌다” “우리가 사랑했던, 뛰어난 능력의 방송기자를 잃은 끔찍한 사건”이라고 비통함을 전했다.

 
 
사례2. 불신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베스터 리 플래내건이 영향을 받았던 조승희 사건도 불신의 대표적인 예다. 충청남도 아산 시에서 태어난 조승희는 8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2007년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 영문학과 4학년이었던 그는 인종차별을 하는 친구들에게 불만을 품고 범행을 계획한다. 사실 중학교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승희는 전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착했다고 전했다. 조승희가 지극히 평범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사람을 향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강의실 4곳을 다니며 범행을 저질렀고, 사망 32명, 부상자 29명의 인명 피해를 일으켰다. 조승희가 극단적으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 불신의 응어리들이 폭탄처럼 터졌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조승희의 아버지는 어렵사리 헌책방을 꾸렸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조승희가 9살 때 이민을 결정한다. 소심했던 조승희와 누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이민은 조승희의 사건으로 불행하게 종결된다. 조승희의 누나가 조승희 사건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할 정도로 성숙한 행동을 보인 것을 보면, 누나와는 달리 조승희는 가족과도 단절된 상태로 지냈다. 이민 이후 경제적 어려움은 조승희가 가족과 여유로운 대화를 나누기보다 빠듯한 생활 속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정신적인 고립을 가져다 주었다.

평범하게 지낸 것만 같아 보인 조승희에게는 응어리진 사건이 있었다. 어린 조승희가 수줍지만 여자 친구들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승희는 경찰에 붙잡혀 가고 만다. 신체 나이의 성장이 빠른 미국 사회에서 호기심 어린 청년이라면 누구나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다.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성장 시기에 조승희도 그랬다. 하지만 조승희는 이성 친구들에게 접근 금지 처분을 받았다. 범죄자 취급을 받은 조승희는 쉽게 깨뜨려질 유리처럼 약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차별이 마음에 상처로 고스란히 남는다. 사건 당일 조승희는 여자 친구가 아닌 학교의 이성 친구와 대수롭지 않은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총기를 난사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그의 불신이 굳어졌고, 자신의 불신을 사실이라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조승희는 왜 부모님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지 못했을까. 한두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그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했다. 조승희는 대학에서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늘 기숙사에 혼자 고립된 채 지냈다. 스스로 고립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한 달간 수업을 빠질 정도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오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불신 속에 갇혀,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심지어 가족과도 대화를 끊고, 그는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다.

 
 
사례3. 불신은 남을 원망하고, 정신 이상까지 일으킨다
2011년 한 모자에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성적을 위조하고 그 성적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어머니를 살해한 지 군.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믿지 못해 일어난 불신이 불행한 결말을 맺게 한 사연은 이러하다.

지 군의 어머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는 불신으로 가득 찼다. 자신을 버린 남편 없이 보란 듯이 키워보겠다고 선택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향한 과잉몰입. 전교 1등을 하라며 아들에게 골프채로 체벌을 가하고 우수한 성적을 강요했다. 자주 지 군의 다리는 피멍 자국이 있었고 지군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오르지 않는 성적을 위조한 지군. 하지만 어머니는 위조된 성적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부터 지 군은 어머니에게 골프채로 200대를 맞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밥까지 굶었다. 어머니의 체벌은 위험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체벌했지만, 그녀에 대해 극도의 불신에 사로잡힌 지 군의 정신에 이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남편 없이 아들을 홀로 키워보겠다는 불신이 정상적으로 아들에게 격하고 위협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불행을 겪었다.
재판에서 담임선생님은 ‘지군이 학교에서 성실하고 교우관계가 좋은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지군을 향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며 “아들이 힘들었던 시간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표현했다. 불신으로 가득 찬 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절망의 늪에 빠질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 지 군은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고 어머니를 탓하고 살아온 자신을 향해 원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 군은 가족을 신뢰하고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성장할 시기에 불신이 가득 찼고, 그 결과 주변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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