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청소년체육부장관 빈센트 음왈레Vincent Mwale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을 취재하면서 만나는 20여 명의 장관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외국인의 이름은 어찌 그리 길고 입에 잘 붙지도 않는지. 하지만 함께 지내다 보면 어느 새 그들의 마음의 맛과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며 이름이 저절로 기억된다. 38세의 젊은 장관 빈센트 음왈레의 마인드는 어떤 모습일까?

젊은 세대답게 잠비아의 정치인들 중 가장 먼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개설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얼굴을 마주볼 때 이뤄진다고 생각해, 오늘도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기를 즐긴다.
젊은 세대답게 잠비아의 정치인들 중 가장 먼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개설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얼굴을 마주볼 때 이뤄진다고 생각해, 오늘도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기를 즐긴다.
아프리카에서 온 장관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청소년부처의 수장답게 조국과 청소년의 미래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투철하다는 점, 둘째는 한국을 자국 발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로 고통받은 데다 내전(한국전쟁)까지 치렀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와 공통점이 많다. 지하자원이 부족함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을 거듭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반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민들이 가난으로 고통하고 있는 대다수 아프리카 나라들에게 한국만큼 좋은 롤모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관들은 일주기자일간의 포럼 일정 동안 한국의 국회와 교육기관, 산업시설을 둘러보고 민박까지 하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비결을 찾는다. 물론 저마다 내린 결론은 다르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교육수준에서 답을 찾는 장관, 박정희 대통령 등 일찍이 국가발전의 마스터플랜을 확립하고 이를 실행한 리더들의 혜안에서 답을 찾는 장관 등. 아예 한국을 방문하기 전부터 한국의 근대사나 세종대왕의 생애를 다룬 책을 미리 읽고 오는 이도 있다.

국력의 차이는 마인드의 차이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잠비아 청소년체육부의 빈센트 음왈레 장관이 찾은 결론은 약간 달랐다. 그가 기자와 인터뷰를 한 것은 한국에 온 지 닷새째 되던 날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는 그는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찾았을까.
“한국인들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더군요. 물론 문화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빨라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시간에는 이만큼 일을 한다’는 것을 정해놓고 일을 하더군요.”

그럼 잠비아는 어떨까. 음왈레 장관에 따르면 잠비아 사람들은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때로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잠비아 사람들은 그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직장에서 근무 중인 사람을 사전 약속 없이 찾아가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모임시각이 8시라면 8시 30~40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 9시 50분이 되어야 모임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그런 마인드의 차이가 두 나라 국력의 차이로 이어진 것 아닐까요?” 정해진 시간에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일에 집중하는 자세, 그리고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발전하고 부유해졌음에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근면함의 차이가 음왈레 장관이 찾은 한국경제 성장의 비결이었다.

7월 11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음악회에서 장관들을 대표해 축사하는 음왈레 장관. 악천후가 예상되어 갑작스레 일정이 당겨졌음에도 차질없이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 감사를 전한 점에서 그의 사려깊음을 엿볼 수 있다.
7월 11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음악회에서 장관들을 대표해 축사하는 음왈레 장관. 악천후가 예상되어 갑작스레 일정이 당겨졌음에도 차질없이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 감사를 전한 점에서 그의 사려깊음을 엿볼 수 있다.
20대에 국회의원, 30대에 장관이 되기까지
음왈레는 1978년생으로, 올해로 우리 나이 서른여덟의 젊은 장관이다. 잠비아 내각 구성원 중 최연소이며, 포럼에 참가한 다른 나라 장관들에 비해 한두 세대는 젊다. 불혹不惑도 안 된 나이에 한 나라의 청소년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에 오른 사연이 궁금했다.
일찍 부모를 잃은 청년 음왈레는 독립해서 사는 형과 누나들을 대신해 넷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중등학교(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를 합친 개념)를 졸업한 뒤, NGO와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정부기관이나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청소년에게 성교육을 실시하고 에이즈 및 10대들의 임신 예방활동을 벌이는 단체들이었다. 몇 년 뒤에는 독립해 NGO를 세워 활동한 그는 정책이나 관련법규 중에 실제 교육현장과 맞지 않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법규를 개정하고 싶었지만 이는 시민운동가가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그는 국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22살 되던 해, 그러니까 2001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5년 뒤 다시 도전해 당선됐어요. 27세의 젊은 나이에 국회로 진출하게 된 겁니다.”
국회의원이 된 음왈레가 처음 배치된 곳은 국회결산위원회Public Accounts Committee였다. 공공재나 정부예산이 적재적소에 잘 사용되고 있으며, 횡령이나 전용轉用등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지 감독하는 기관이었다. 정치에 문외한인 초선의원이었지만, 그는 ‘나랏돈은 마땅히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소신으로 성실히 일했다.

2011년에는 재선에 성공하면서 결산위원회 위원장이 된 음왈레는 이때부터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예산결산 청문회를 TV로 중계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그는 공무원들이 예산을 집행하면서 저지른 실수와 결산보고서의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누락되거나 전용된 예산이 있으면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절대로 대충 넘어가지 않고 무슨 이유로 빠뜨렸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그의 질문에 공무원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과정은 고스란히 TV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었고, 국민들은 젊은 음왈레 의원을 향해 지지와 신뢰를 보냈다.

지난해 10월, 잠비아의 마이클 사타 대통령이 급작스레 서거하면서 잠비아는 보궐선거를 치렀다. 새로 선출된 룽구 대통령은 지난 2월, 음왈레를 청소년체육부 장관에 임명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영향을 받으면서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잠비아에서는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한다. 그래서 출근할 때 외에는 세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대개는 정시인 8시에 출근해 하루 업무를 시작합니다. 오후 5시가 퇴근시간이지만, 장관이 된 뒤로는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많아져 그 시간에 퇴근을 못합니다. 업무량도 훨씬 늘어났고요. 밤늦게까지 혼자 사무실에 남아 밀린 일들을 처리하곤 합니다. 국회가 열리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쉬지 않고 13시간 넘게 일하거나, 밤을 꼬박 새기도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각 부처 장관들에게 묻는 질의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장관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마친 후 한국 대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한국 대학생들은 늘 빠릿빠릿하고 의욕이 넘쳐 함께 대화만 해도 힘이 솟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장관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마친 후 한국 대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한국 대학생들은 늘 빠릿빠릿하고 의욕이 넘쳐 함께 대화만 해도 힘이 솟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취업이 힘들다면 창업도 답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일하는 음왈레 장관도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많다고 한다. 1500만 국민 중 60% 이상이 하루 1,000원 정도의 돈으로 생활하는 잠비아의 중심산업은 농업과 광업이다. 최근 기후의 변화로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농사에 쓸 물 한 양동이를 구하기 위해 2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녀와야 하는 농부들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목욕은 꿈도 못 꿀 정도라고 한다.
“잠비아는 아프리카 제2의 구리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제련소나 공장이 없다보니 헐값에 구리 광석을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은 거기서 구리를 뽑아내 제품을 만들어 비싼 값으로 잠비아에 판매하지요. 간단한 이쑤시개를 만들 공장도 없어요. 중국인들이 잠비아 나무를 베어가 이쑤시개를 만들어 잠비아로 수출하지요.”
‘배를 주고 배 속을 빌어먹는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 자원은 풍부하지만 기술이 없어 소중한 나라의 부富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몹시 안타깝게 여겼다. 잠비아는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지금도 잠비아 곳곳에는 영국인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철도, 공항, 댐 등의 시설이 남아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세계적인 이슈인 청년들의 실업도 그의 시름을 깊게 하는 문제다. ‘잠비아의 교육과정은 실제 산업현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 많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년들이 취업을 하려는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정부나 부모 세대에 기대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며 일침을 가한다.

“많은 청년들이 사무실에서 편히 앉아서 일하는 직장을 얻으려 합니다. 부모나 친척,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직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이 힘들면 창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돈벌거리를 찾아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아직 생각이 젊은 청년들이라면 더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관 본인이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부딪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계에 입문했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포럼의 공식일정이 끝난 7월 11일 저녁 7시 30분, 주최측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장관과 서울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준비했다. 원래 일요일인 12일로 예정되어 있던 행사를 태풍 때문에 하루 앞당긴 것이었다. 이날 장관들을 대표해 축사를 하러 무대에 오른 음왈레 장관은 ‘행사를 하루 미루기는 쉬워도 당기기는 어려운 법이다’라는 말과 함께 짧은 시간에도 완벽한 무대를 준비해준 주최측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순간 그의 예사롭지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실무를 경험해 보지 않고 지시만 내릴 줄 아는 사람,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지나칠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장관에 오른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한 마음의 바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장관님의 꿈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했던 대답이 생각났다.

“저는 좋은 집이나 차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장관직에서 물러나라면 언제든 물러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사심 없는 리더,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리더, 그래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리더로 남는 게 꿈입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