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낳은 정만으로 진정한 부모가 될 수는 없고, 친자가 아닌 자식을 기른 정만으로도 진정한 부모가 될 수 없다. 가정의 달인 5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아빠’란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는 성공한 건축가로 도쿄에 있는 일류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미도리’라는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 케이타와 함께 살고 있다. 도쿄 중심부의 초고층 고급 아파트에 사는 유복한 가정이지만 외아들 케이타가 태어난 후 6년 동안 가족끼리 제대로 된 여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을 만큼 회사 일에 치여 산다.
료타는 변호사 친구의 언급처럼 ‘파더 콤플레스 father complex: 아버지를 향해 갖는 지나친 애착’을 앓았던 과거가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 아들을 가족 전원을 면접보는 유명 사립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매일 피아노를 배우고 연습시킬 정도로 교육시킨다. 아들을 유명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은 바람이 컸던 걸까.
료타는 어릴적에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불신으로 가출을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의 깊은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로 케이타에게 과거에 자신이 받길 원했던 관심과 사랑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케이타는 아빠 료타의 그러한 원함과 욕심만큼 따라주지 못한다. 케이타의 성격은 엄마를 닮은 듯 낙천적이다. 공부에도 열정이 별로 없는 그저 순한 아이일 뿐이다. 타고난 심성 탓인지 피아노 연습에도 태만하다. 료타는 그런 케이타가 다소 불만스럽다. 아내는 그런 아들을 허용하지만 료타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무능한 아빠로 살고 싶지 않았다.

성공한 아버지의 착각
“피아노는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회복하는 데 사흘이 걸리는 법이야.”
영화 대사 중 그의 인생 마인드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료타는 매사에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산다. 회사에서도 빈틈없이 살지만, 가정에서도 아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한 번도 목욕을 같이 한 적이 없다. 항상 혼자 목욕을 하게 하고 아빠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 후 잠자리에 들게 하는 등, 하루를 배움의 열정과 에티켓을 동시에 갖추는 삶을 살게 한다.
어릴 적 료타 자신이 받지 못한 부성애의 빈자리를 그만의 방식으로 펼쳐가며 케이타를 통해 채우는 것이다. 또 그의 지성과 사회적 성공만큼 아버지 역할 또한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날들로 케이타와 함께 6년을 채워가던 그의 가정에 어느날 문득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니길 바랐지만 유전자검사는 사실로 확인이 되면서 평범했던 료타 부부는 깊은 근심 속에 빠진다.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때문이다. 복잡한 심정의 나날을 보내던 중 사고를 초래한 병원의 중재로 료타는 ‘류세이’라는 이름의 친아들을 6년간 키워왔던 유다이 부부를 만난다. 친아들의 얼굴을 서로 처음 대한 그들은 최종 결정을 하기 전 적응시간을 위해 주말마다 아이들을 서로 바꿔 지내기로 약속한다.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물보다 진할 것 같은(?) 피를 선택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없이 좋은 아빠
하지만 그들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료타의 마음엔 갈등도 커져간다. 6년간 키워왔던 케이타와 친아들 류세이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은 물론, 문제는 료타의 눈에 비친 유다이의 모습 때문이다.
“나는 내일 할 수 있는 일이면 오늘 하지 않아.”
우스꽝스럽지만 아버지 유다이의 마인드이다. 무능한 유다이의 정신 세계를 알고서는 료타가 6년간 키워왔던 케이타를 맡기기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런 유다이에게 료타는 두 아들을 자신이 다 키우겠다고 제안을 했다가 가볍게 뺨을 맞는다.
“져 본 적이 없는 녀석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알 리가 없어.”
유다이는 가난하고 무능한 정신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세 아이들과의 관계를 보면 그는 한없이 좋은 아빠다. 고장난 장난감을 납땜기구로 제대로 고치는가 하면 아이들을 위해 연날리기를 해주곤 한다. 혼자 목욕을 시키는 료타와는 상반되게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잘 만들어가는 자상한 아빠다. 좋은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 유다이를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 주인공 료타에게는 결코 닮고 싶은 대상의 아빠나 가장이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되는 길
영화의 결말에서는 아빠로서 아주 잘 하고 있다고 믿었던 료타의 어리석은 생각이 무너져 내린다. 실제 그의 모습은 아들의 마음 하나 헤아릴 수 없는 나쁜 아빠인 것을 발견하고, 두 아들을 모두 잃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 날 이후 료타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6년간 마음으로 맺어진 참아들 케이타를 찾아가서 사죄를 하며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들과 재회하는 감동적인 모습으로 서서히 영화는 마무리되어 간다.
료타는 그렇게 비로소 참 아빠가 된 것이다. 좋은 아버지의 영역은 명석한 머리로 될 수 있는 얄팍한 세계가 아니다. 좋은 아버지는 가슴과 가슴으로 연결될 때 가능한 영역이다.
자신을 똑똑하게 여기는 미숙함으로 ‘좋은 아빠’의 영역을 서성거리는 동안 그는 두 아들 케이타와 류세이의 마음을 모두 잃었다. 자격증을 따고 일류 회사에 들어가서 인정받듯이 명석한 머리로 살면서 스스로를 ‘좋은 아빠’라고 여기는 동안 두 아들에겐 ‘나쁜 아빠’가 되고 만 것이다.

진짜 아버지의 가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각과 보배로운 귀는 실패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생에서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타인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눈과 귀를 가지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으로 다가온 케이타와 연결되지 못하고 6년을 보냈던 료타처럼 말이다. 자신을 주장할 커다란 입만 발달하기 마련이다. 성공의 가속페달을 끝없이 밟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브레이크 기능이 녹슬 수 밖에 없다.
“자넨 지금까지 가속페달만 너무 밟고 살아왔어.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야.”
료타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 귀중한 실패를 깨닫는 순간 료타의 마음 안에는 ‘진짜 아버지’의 가슴이 만들어졌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가정의 달 5월이다. 실패한 아빠 료타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 발견된다면 가정의 행복 또한 더욱 커지리라. 가족과 함께 조용히 영화를 보면서 우리 마음 안에 형성된 나쁜 아빠 료타를 발견하고 내몰아보자. 우리 안에 진짜 아들, 진짜 엄마, 진짜 아빠의 가슴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들이 된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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