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_부모님께 편지

<태진이의 좌충우돌 자전거 여행>의 저자이기도 한 송태진은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 활동을 마친 후 자신이 겪은 진솔한 경험들을 활자를 통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부룬디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썼던 그의 편지글을 공개하고, 부룬디에서 잊지 못할 사랑을 받은 마마벨로를 소개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들 태진이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보람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편지 드릴 때는 아버지 생신이었는데 어느새 어머니 생신이 가까워졌네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글로나마 아들의 마음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자주하는 요즘입니다. 부룬디에서 겪는 새롭고 얄궂은 경험이 어찌나 많은지, 그 속에서 보내는 모험 같은 하루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저와 함께하는 부룬디 친구들은 어쩜 그리 멋진 녀석들인지 아버지 어머니께 마음껏 자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화도 인터넷도 너무나 비싸기에 그리움은 그저 차곡차곡 접어 묵힐 수밖에 없네요. 안부만 묻고 끊는 짧은 국제 전화라도 부룬디 가족의 하루 식사를 해결할 만큼 비싸거든요. 아들이 자주 연락 안 해서 속상하시겠지만 이해해 주세요. ^^ 여기서는 뭐든지 절약해야 하거든요.
일과를 마치고 조용한 시간이 되면 부모님을 생각하며 펜을 잡습니다. 펜이 종이를 달리기 전, 눈을 감고 작지만 포근한 우리집을 떠올려 봅니다. 안방 뜨뜻한 곳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두 분의 대화가 벽을 타고 제 방까지 오곤 했지요. 집안에 잔잔히 퍼져 있는 목소리에는 늘 웃음이 섞여 있었어요. 지금이라도 그 곁에 게으른 강아지처럼 벌렁 누워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아버지의 미소에 묻히고 싶습니다. 힘내라고, 믿고 있다고 응원하는 당신의 음성으로 제 마음을 씻고 싶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복잡한 잡념이 녹아내리고 새 힘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부모님께서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시는지 잘 모르실 거예요. 함께 있을 때는 당연하게 느꼈던 가족의 존재가 산소처럼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아들은 부룬디에 있는 동안 어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겪는 거의 모든 일들은 제가 예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생소한 것들이에요. 어렵지만 보람찬 일도 있고 쉽지만 짜증나는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 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번 일은 너무 어려워 보여. 난 제대로 하지 못할 거야’ 하고 주저 하게 된다는 거예요. 쉽든 어렵든 뭔가를 시작할 때는 언제나 ‘부담’이라는 문지기가 버티고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그런데 딱딱한 쌀이 솥을 거치면 부드러운 밥이 되듯 부담을 넘고 발을 내딛었을 때 그것은 곧 즐거움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너무나 어렵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일이었는데 마음 먹고 부딪쳐보면 하나씩 해결되고 방법이 생기면서 즐거운 일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경험을 여러 번하고 나니 이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주저하는 마음이 찾아오더라도 ‘지금은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일도 곧 즐거운 일로 바뀔 거야’라고 마음을 바꿉니다. 그러면 역시나 어려움은 저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물해 줍니다. 그것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이곳에 계신 지부장님과 부룬디 친구들이 어려운 순간마다 저를 잡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뚱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제 옆에 와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며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걱정은 사라지고 든든한 희망이 생겨납니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들의 형편이 저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일주일 굶은 사람에게 반찬 투정하는 듯한 저의 헤픈 고민을 웃음 잃지 않고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저는 어려움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현지 친구들의 삶과 제 삶을 비교해보면서 그동안 편안함 속에서 작은 고통도 넘어서지 못하고 응석받이로 살아온 저를 발견했어요. 지금까지 부모님께서 이런 못난 아들을 지켜봐주시고 사랑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부룬디에서 저는 매일 새롭고 커다란 행복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밤을 새서라도 모든 이야기를 다 해드리고 싶어요. 제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잘 먹고 있고 몸도 건강합니다. 출국 전에 아프리카가 더울 텐데 고생하지 않겠냐고 걱정하셨잖아요. 그런데 전혀 덥지 않아요. 따뜻한 봄 날씨에요. 소나기가 내리면 개운해진 맑은 하늘에 쌍무지개가 뜨기도 해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데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돼서 아쉽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아프리카에 한번 와보세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줄일게요. 제가 행복한 것처럼 부모님께서도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마음으로 응원만 보내주세요. 저보다는 말 안 듣는 누나 걱정을 하시는 게 낫겠어요. ^^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2008년 5월 8일.
                                                                                        부룬디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아들 태진 올림.


마마벨로와의 추억
당신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시나요?
연애, 결혼, 취업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흔히 사랑이라는 달달한 감정은 사치로 여겨지곤 한다. 사랑과 욕망을 혼동해 상처를 입고 움츠러드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이란, 그저 입에 올리는 것도 거북스러운 낯선 감정일 뿐이었다. 흔히들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하는 그 견디기 어려운 감정 말이다. 당신이 만약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몇 줄 되지 않는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불편해 책장을 뒤로 후루룩 넘겨버릴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랑을 포기한 사람은 행복할까? 과연 사랑은 우리 삶에 없어도 될 정도로 가치가 낮은 것일까? 사람들은 좋은 직장과 부를 얻기 위해, 최소한 남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 그런 열정을 쏟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종종 사랑은 4대 보험 적용되는 연봉 괜찮은 직장이나 새로 나온 신형 스마트 폰보다 찬밥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사실 사랑은 그 모든 것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부룬디는 나에게 그런 멋진 사랑을 알려주었다.

마음은 서로 통한다
부룬디에서 만난 사람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 ‘마마 벨로’. 남편과 10명의 자식들이 있는 대가족의 마님이다.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마마는 퉁퉁한 몸집-아프리카 미녀의 조건(!)-에 수수한 전통복을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내가 가게에 놀러 가면 마마 벨로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안아주고 볼 뽀뽀를 해주며 기쁘게 반겨주었다.
우리는 북적이는 시장 통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대화다. 마마 벨로는 영어를 못하고 부룬디 말만 할 줄 알고, 나는 부룬디 말을 모르고 영어만 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무지무지 재미있다. 깔깔깔 웃고,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라고, 환호하고 박수치고 껴안으며 손짓 발짓 몸짓 다 동원해 대화를 한다. 잘 모를 때는 대충 넘어가고, 영어가 안 되면 한국어로 떠들고, 앞뒤를 잘라먹거나 뻥튀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대화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분명 마마 벨로와 나는 마음이 오고가는 신나는 수다를 떨었다. 단어와 문장이 또박또박 전달 돼야만 대화일까? 말 못하는 갓난아기와 엄마도 서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아마 언어가 발명되기 전의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노랫말을 모르더라도 외국 팝송이 전하는 느낌을 이해할 수 있듯이 앞뒤 안 맞는 동문서답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마마는 조심스레 쌈지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곤 했다. 살짝 손을 펴보면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 처음에 나는 그 돈을 받을지 말지 고민했다. 한국에서는 바닐라라떼 한 모금 값도 안 되는 푼돈이지만, 부룬디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받으면 그녀의 집에 바글거리는 10명의 아이들은 오늘 저녁 평소보다 음식이 적게 놓인 식탁에 앉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먹이는 대신 나에게 돈을 쥐어주는 마마 벨로. 그녀의 가정 형편을 알기에 선뜻 받을 수 없었다.
얼른 가져가라는 아주머니의 타박에 못 이겨 결국 구깃거리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갑작스레 생긴 용돈을 좋아해야 할지 부끄러워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 나의 고민이 바보 같은 질문임을 알았다. 눈 앞의 마마 벨로는 마치 자기가 돈을 받은 것처럼 아름다운 입 꼬리를 높이 올려 웃으며 그 넓은 품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나를 푸근하게 껴안아 준 아주머니는 “쏭, 네가 좋아하는 빵을 저쪽 골목에서 팔고 있으니까 꼭 사먹고 가렴” 막내아들에게 당부하듯 꼭 빵을 사먹으라며 거듭 강조했다.

마마 벨로에게 받은 잊지 못할 사랑
마마 벨로는 나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했다. 단순히 천 원이라는 값어치를 뛰어넘어 그 돈에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만약 내가 아주머니를 배려한답시고 손사래를 쳤다면 마마는 너무나 슬퍼했을 것이다. 마마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먼저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 했다. 모처럼 놀러온 친구 ‘쏭’이 기뻐한다면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 했다. 자신과 가족은 굶더라도 나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하는 마마.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줄까? 그때 알게 되었다.
‘이게 사랑이구나. 나 지금 사랑 받고 있구나.’
참 좋다. 행복하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만 마마 벨로는 대가 없이 나를 사랑해 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고, 나에게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내주려는 따뜻한 마음. 내가 짓궂게 굴어도 서름하게 여기지 않고 먼저 다가와 포용해주는 넓은 마음. 분에 넘치는 큰 사랑 속에서 헤엄치고 비행하며 예전에는 몰랐던 커다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마마 벨로 뿐 아니라 부룬디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교육원에 올 때마다 우리 친구 ‘쏭’이 잘 지내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안부를 물었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느 날, 코 묻은 돈을 몇 주간 모아서 샀을 뜨뜻한 콜라 한 병을 내게 건네는 꼬맹이.
“쏭, 이거 빨리 마셔 봐!”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가져다 준양 유리병에 담긴 검은 탄산음료를 자랑스럽게 들이미는 녀석은 자신이 이루어낸 업적의 마지막 순간을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키득거리며 나의 다음 반응을 궁금해하는 아이의 눈빛 속에는 순수한 사랑 이외의 어떠한 사심도 없었다. 자신은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한 귀한 콜라를 굳이 나에게 가져온 그 아이. 그 콜라를 아이에게 양보해야 할까? 아니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맛있는 포즈로 콜라를 마시는 것이다. 아니, 사랑을 마시는 것이다.

 
 
행복의 절대 조건-사랑을 하는 것.
해외봉사단원은 능력이 뛰어나거나 사명감이 특출나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랑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아니, 그걸 모르더라도 부룬디에 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삼포세대라도, 감정 없는 로봇이라도 마음만 열어 놓고 있으면 부룬디 사람들은 사랑을 끝없이 밀어 넣어줄 것이다. 그 행복의 맛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1년 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굿뉴스코 단원이 자주 하는 말, ‘주러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아왔다’는 그 손발이 오그라드는 소리는 현지인들의 뜨거운 사랑에 푹 잠겨 행복에 절여진 사람만이 말 할 수 있는 마음의 소리다.

 

 

 

 

 

 

 

 

 

 디자인 | 이가희 기자   일러스트 |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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