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매력, 태국

두꺼운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을 힘겹게 들고 있는 그녀와 마주쳤을 때 한국인 같은 외모에 한 번,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전자 사전으로 공부하면 더 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어렵게 찾으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고 답하는 그녀에게서 곧은 심지가 느껴졌다. 태국 일류대학의 법대를 다니던 그녀가 어떻게 새로운 꿈을 찾아 한국까지 오게 되었을까?

카메룬 대학생들과 함께 아카데미를 하러 가는 날.
카메룬 대학생들과 함께 아카데미를 하러 가는 날.
“제가 살았던 방콕은 북적북적 사람도 많고, 그만큼 경쟁도 많이 하는 곳이에요. 그런 사회 속에서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고, 성공을 위해서 나 하나만을 생각하며 달려왔죠. 태국의 쭐라롱콘대Chulalongkorn University에서 법을 공부했는데, 이 학과를 나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성공만을 위해서 경쟁을 하다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도 없는 현실이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벨은 친구를 따라 우연히 참가한 태국 IYF 월드캠프에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홍보 영상을 보게 되었다. 태국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는 벨에게 1년 동안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아프리카 남아공으로 봉사를 간 박소영 씨의 이야기가 그녀의 가슴을 두드렸다.
“저는 이제까지 제 성공만을 위해서 살아왔는데, 영상 속의 박소영 씨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어 그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거에요. 에이즈로 죽은 두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박소영 씨를 보면서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남을 위해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학생들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살고 싶어 2012년 6월, 굿뉴스코에 지원해 카메룬에 갔습니다.”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간 카메룬이었지만 카메룬에서 생활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카메룬은 불어를 쓰는데 자신의 불어 실력은 형편없었고, 처음 보는 현지인들이나 외국인 봉사자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을 오해하곤 했다고 벨은 말한다.
“서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을 잘 안하다 보니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증폭되어만 갔어요. 카메룬 사람들이 불어로 뭐라고 말하다가 중간에 제 이름이 나온 것 같다 싶으면 혼자서 ‘저 사람들이 내 욕 하는 거 아니야? 날 싫어하나?’ 이렇게 생각하곤 했죠. 그런 생각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그렇게 5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벨은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커다란 두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처음으로 현지인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항상 혼자 있어서 너무 외로워”라며 훌쩍이는 벨을 현지인 친구는 안아주면서 “걱정하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그녀는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벨을 향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은 무관심과 무시가 아니라 인내와 사랑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짜파게티
해외봉사로 카메룬에 다녀온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카메룬식 짜파게티’이다. 하루는 카메룬의 작은 마을에서 머물게 된 벨. 가난한 마을이라서 음식이 부족했고, 없으면 그대로 굶을 수밖에 없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현지인 아주머니가 벨에게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물었고, 너무 배가 고파서 정신이 없었던 벨은 아무 생각 없이 ‘짜파게티’라고 말했다. 며칠 후 그 아주머니는 현지에서 한화로 만 원 정도 하는 짜파게티를 사서 벨에게 건네주었다. 면에다가 토마토로 만든 아프리카식 케첩을 섞어 먹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짜파게티였다. 하지만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아이가 하루를 굶으면서까지 사준 짜파게티였기 때문에 벨은 희묽은 케첩 소스에 묻혀 있는 마지막 면 하나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카메룬에는 밥을 먹지 못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늘 보던 아이가 밥을 못 먹어서 죽는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걸 보면서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서 공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단돈 3달러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카메룬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외교관이 되거나 UN 같은 국제기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고, 무엇보다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의 교육 환경은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열악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학교에 있으면 정말 행복해해요. ‘나 공부하고 싶어’ 이 말을 매일 들었다니까요?”

 
 
태국 대학생 벨? 한국 대학생 벨!
카메룬에서의 해외봉사가 끝난 뒤 벨은 고려대학교에 편입하기로 결심했다. 한국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태국에서도 유명하다. 올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편입한 그녀는 수많은 과제와 수업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영락없는 한국의 대학생이다.
“힘들긴 하죠. 모국어로 배워도 쉽지 않은 공부를 한국어와 영어로 해야 되니까요. 언어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보니까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 돼요.”
너무 힘들어서 학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운 적도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좋다고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태국에는 집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혼자 수업 듣고 집에 가면 알아서 과제를 할
 
 
수도 있으니까 모든 면에서 더 편해요.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한테 계속 물어봐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들이 더 많긴 하죠.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배우는 게 많아서 훨씬 더 좋아요. 마음도 좀 더 강해질 수 있구요. 태국에서 학교 다닐 때는 꿈 없이 그냥 좋은데 취직한 뒤 돈 벌고 싶어서 학교에 다녔지만 이곳에서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참 좋아요.”
뛰어난 학생이던 벨, 법대에 들어간 이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 모른 채 힘겹게만 지냈는데, 해외봉사를 통해 또 다른 꿈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해 외교관이 되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제2의 반기문을 꿈꾼다. 고려대학교 캠퍼스에서 그녀는 가끔 봄하늘을 바라보며 미래에 더불어 살 친구들과 세상을 그린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