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교육지원청 교육장 이헌희

오늘 하루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할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정확히 알아 인생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헌희 교육장과 마주하며 나눈 이야기는 잊지못할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마치 비온 뒤 쌍무지개가 하늘에 걸려있는 것처럼 유쾌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한 가지씩 되새기는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좋든 싫든 간에 불현듯 떠올라서 때로는 안타까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헌희 교육장을 처음 만난 날,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을 전해 들으며 지난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비뚤어진 한 친구가 생각났다. 안타깝게도 그를 이끌어 줄 선생님이 없어서 누구보다 예민하던 친구는 걷잡을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게 됐다.
이헌희 교육장과의 인터뷰 내내 만약 그 친구가 이헌희 교육장과 같은 이를 스승으로 만났더라면 학교 생활이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제자와의 약속
1999년 구미여자고등학교의 지리 교사였던 이헌희 교육장은 한 제자의 충격적인 질문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날의 사건 이후로 그는 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의 지명과 유래>를 집필해서 2004년 8월에 발간했다.
“학생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저에겐 큰 충격이었어요. 이제껏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백두산은 왜 백두산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러시아는 왜 러시아라고 이름이 붙여졌나요?’ 하고 묻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어요? 저도 몰랐는데 무지함을 깨우쳐준 제자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어요. 각 나라의 대사관조차 국명의 유래에 대해 모르거나 그나마 있는 정보들조차 정확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모아 책을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국가의 유래, 도시와 하천의 유래 등을 조사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발간 당시에는 전국 지리교사에게 읽힐 정도로 중요한 책이 되었지만 그는 정작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말하며 집필 경위를 설명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제자의 질문에 이헌희 교육장은 오히려 자신이 교사로서 올바른 자질을 가졌는지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며 그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고 생각했 다. 책이 나온 이후 가장 먼저 제자에게 연락을 할 만큼 제자 사랑이 큰 그였다.
1981년부터 교사 생활만 18년간 해 왔던 그였지만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일보다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이헌희 교육장은 고백했다.

꿈과 목표를 이루는 방향이 중요하다

 
 
그가 교장으로 발령받은 시골 작은 학교에는 전교생이 28명밖에 되지 않았다. 조손가족이라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학생들이 절반이었다. 교육 혜택과는 너무도 먼 학생들이 방과후 부모의 따 뜻한 손길보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농촌의 교육 현실을 통감한 이헌희 교육장은 훈화를 따로 하지 않고 밤 9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며 도서관에서 같이 책을 읽곤 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가 없듯이 자기의 잘못만으 로 꽃잎이 지는 나무도 없습니다. 비 오고 바람 불면 꽃잎은 다 떨어집니다. 문제 학생, 부적응 학생, 학력 부진 학생, 결손 가정 등 살펴보면 학생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많지 않아요. ‘마치 어른들은 모든 것을 다 극복한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조언을 하잖아요?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약한 존재임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능력이 없어 요. 교육은 어느 가정, 어느 학교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인 것입니다.”
이헌희 교육장은 농촌 학생들과 보낸 그 시기에 현실에 안주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에 꿈과 목표를 심었다. 책을 읽다가 유익한 내용이 보이면 20분 발표 분량으로 정리해놓고 음악과 시각적 효과들을 이용해 파워포인트를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시청각 교육을 통해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잘 알지만 왜 토끼가 경주에서 졌을까요? 토끼는 능력이 있지만 목표와 비전이 없어 능력을 발휘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거북이가 이겼어요. 개리 해멀 교수의 <화난 원숭이 실험>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바나나를 따려는 원숭이에게 물대포를 쏘면 그 원숭이는 다시는 바나나를 따려고 하지 않아요. 다른 원숭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해서 바나나를 따게 해보려고 해도 물대포를 맞으면 바나나를 따지 않습니다.오히려 새로 들어온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려고 하면 일제히 말려서 절대 바나나를 못 따도록 합니다. 저는 도전할 꿈조차 꾸지 않는 아이들에게 도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헌희 교육장은 ‘태어날 때 가난은 자기 책임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은 자기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어린 묘목들이 잘 자라도록 가꾸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헌희 교육장, 그는 누구인가?
초등학교 시절 그는 베이붐 시대에 출생한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김찬삼의 <세계무전여행기>를 읽고 난 후 그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무전여행이란 말의 뜻도 모르던 그에게 책에 담긴 세계 여행은 엄청난 희열을 가져다 주었다. 또 지리학을 평생 업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성장과 정치적 갈등이 맞물렸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20대를 지극히 평범(?)하게 보내던 그가 교사로 발령을 받은 후에야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평범한 교사가 되지 말라고 연애시절부터 가난한 저에게 대학원 학비를 마련해 준 아내가 지금까지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신영복 교수님의 교육과 삶을 접하며 교육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교사 시절부터 꾸준하게 고민해온 것이 있다. 누구를 만나도 관리가 아닌 관심으로 대하며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자 했다.
“한번은 왜 시험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상담했어요. ‘해도 해도 안 되는 공부,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선생님들이에요!’ 하고 학생이 펑펑 우는 겁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간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나눈 대화가 교훈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어려운 일일수록 서로 짐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시절, 내면적 동기를 키우자
20대 청년들은 활발하기도 하고 때론 침체를 겪기도 한다. 요즘 기업에서는 질책과 칭찬을 통해 월급도 더 주고 해외 연수까지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고급 승용차에 우수한 브레이크가 있는 것처럼 내면적 동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왜, 어떻게의 고민이 없다면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생은 4개의 전치사에 의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브Of(소속), 포For(무엇을 위하여), 위드With(누구와 함께), 바이By(삶의 방식과 방법에 대해)입니다. 대학시절 동안 이 4가지의 전치사에 걸맞은 그릇을 키워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인이 되어서는 이해관계가 얽히고, 순식간에 휩쓸려 그릇을 만들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지만 때때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작은 부딪힘도 견디지 못해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사소한 것에 매여 시간을 허비해요. 대학시절에 인간관계를 극복하는 그릇을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릇을 크게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대학시절인데, 수없이 많은 관계의 갈등을 겪으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해놓을 수 있다면 누구와도 대화가 되는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주를 떠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는 동안 이헌희 교육장과의 대화가 기자의 가슴에 묵향처럼 은은히 퍼졌다. 교육이 어느누구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에, 나 또한 누구를 만나도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되새겼다.


사진|홍수정 기자   디자인|전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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