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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富者는 아니어도 행복한 부자父子행복한 홈스토리 신철훈
신요한 기자 | 승인 2015.04.16 16:17

작년 한 해 아프리카 기니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는 신철훈 씨. 대한민국 부자(父子)지간 이라면 그의 해외봉사 스토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보자. 자신을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 비운의 청년이 어떤 마인드를 갖게 되었길래, 이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뒤 슬픔에 대한 초 강력 항체를 갖게 된 부자父子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철훈
충남대학교 의류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2014년 한 해동안 아프리카 기니로 다녀온 후 아버지와 가까워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마움의 항체가 없던 청년
2013년 대학교 1학년의 신철훈 씨의 삶은 고달팠다. 당장 내일 학교 갈 차비 2,000원이 없는 현실의 서러움에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꿈꾸는 멋진 대학 생활은 돈 없는 철훈 씨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학교 기숙사에 살았던 철훈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힘든지는 대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교재니 뭐니 돈 쓸 일이 참 많은데 집안 사정을 뻔히 아니까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못했어요. 의류학과를 다녀서 주위 친구들은 하나같이 비싼 메이커의 옷을 입고 다녔지만 저는 늘 같은 청바지에 같은 점퍼를 입고 다녔어요. 창피하고 괜히 내 모습이 초라해서 학교도 가기 싫었어요. 밥 사먹을 돈도 없어 굶고 다니는데 옷 산다는 게 엄청난 사치잖아요.” 자상하고 온유한 성격의 아버지도 사업이 계속 어려워지자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부모님의 다툼은 잦아졌고, 철훈 씨는 행여 두 분이 이혼이라도 하게 될까 봐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다투시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가난한 형편에 대한 설움, 불만으로 철훈 씨의 21살은 얼룩져 있었다. 어딘가 도피할 곳을 절실히 찾던 그에게 어머니는 1년의 해외봉사를 추천했고, 2014년 철훈 씨는 아프리카를 다녀온 선배들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왕이면 어려운 나라로 가서 자신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새 희망을 찾아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결정했다.

   
 
절제심을 키우니 행복을 느낀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나라 기니에 도착한 철훈 씨는 생각보다 열악한 아프리카를 마주했다. 물도 전기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아프리카 생활. 어려운 곳에 왔으니만큼 열심히 봉사하고 많은 것을 얻어가자 결심했다. 하지만 실제 삶은 정반대였다. “중국에서 온 봉사 단원들과는 말이 안 통해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의 부족함을 포용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어요. 일을 할 때도 ‘잘 모른다고 하면 혼이 날 거야.’라는 생각에 묻지 않고 일을 처리하다 엉뚱한 짓을 한 적도 많았어요. 밥 먹을 때면 뒷사람을 생각지 않고 남김없이 먹은 적도 있었고, 정말 저는 이기적이고 속 좁은 아이였어요.”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날수록 철훈 씨는 점점 마음에 부담감이 쌓여갔다. 특히 지부장님에게 자유롭지 못했다. ‘항상 밥만 축내고 실수만 하잖아.’ 그런 생각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지부장님이 먼저 다가와 한마디를 하고 가셨던 것. “넌 왜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니?” 속으론 깊게 생각하시면서도 겉으론 쉽게 말씀하시지 않는 지부장님이기에 그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그는 지부장님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혼란스러웠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로랑은 토고 사람인데 가난해서 기니로 온 친구이다. 유난히 철훈 씨를 좋아해 집이 먼데도 불구하고 항상 철훈 씨를 만나러 와주었다고 한다. “저는 해준 게 없는데, 로랑은 처음부터 저를 잘 챙겨줬어요.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친구의 마음에 저도 어느새 그 친구에게 고마웠어요. 지금도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요.”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라고 생각했던 철훈 씨에게 아프리카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돈이 없어 불행하다 생각했던 그가 더 가난한 아프리카에 와서 조금씩 행복을 맛보았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가난이 그에게 마음과 생활의 절제심을 키워준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그의 집은 비록 가난했지만 곤한 몸을 누일 집도 있었고, 깨끗한 물도 있고 전기도 들어왔다. 또 그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실정은 한국 대학생들이 누리는 삶과 달랐다. “아프리카에는 제대로 된 가족이 많지 않아요. 부모 중 한 쪽이 없는 아이가 부지기수이고, 성적으로 무책임해서 버림받거나 경제적 능력이 안 돼서 따로 사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저희 가정은 참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에선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사실은 아버지는 언제나 제 얘기를 들어주셨고, 저와 함께 지내시려 했고, 못해준 건 있어도 안 해준 건 없었어요. 저를 무척 사랑하셨는데 저는 그 사랑을 잊고 지냈던 겁니다.” 한 번은 한국에서 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철훈 씨의 아버지 였다. 아버지는 걱정에 찬 목소리로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 보셨다. 한국 뉴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소식을 접한 아버지가 아들이 걱정이 돼서 전화하신 것이었다. 한 통의 전화이지만 철훈 씨는 그 속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한다. 물이 귀한 기니에선 물이 공급되는 밤 시간에 쓸 물을 미리 받아놓아야 하는데, 지부장님의 사모님은 잠도 자지 않고 다음날 아침 모두가 쓸 물을 받아놓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로랑을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의 조건 없는 정에 그 자신은 분에 넘친다고 생각했다. 기니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 단원들을 걱정하고 챙기는 지부장님. 드러내지 않고 몸소 움직이는 그분들을 보면서 철훈 씨의 마음에도 희생, 사랑, 감사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이 하나 둘 채워져 갔다.

   
 
아버지, 보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위한 월드캠프를 했을 때는 또 다른 경험을 하였다. 땀 흘려가며 준비한 캠프에 많은 사람이 와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도 신기하게 행복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 같았다. 철훈 씨는 항상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고, 자신을 위해 살지만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 하나를 가지고 사니까 행복을 느꼈다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게 꿈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어느 날은 밤잠까지 설쳤다는 철훈 씨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한다. 귀국한 뒤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대학교 때 힘들었던 일, 그래서 아버지를 원망했던 일, 아프리카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감사했던 일. 생각지 못했던 아들의 속마음에 철훈 씨의 아버지는 놀라기도 하고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또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화목한 두 부자를 보며 절로 미소가 번졌다.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부자지간이 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마음이 흐를 때 이처럼 아름답구나! 2015년 학교에 복학한 철훈 씨는 한층 더 단단해 보였다. 여전히 바지 2벌에 점퍼 하나의 단출한 차림이지만, 철훈 씨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잘 보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정말 자유로워요. 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잖아요.” 아프리카의 어려운 환경에서 몸소 살아 본 사람의 힘인 걸까? 힘든 시간을 보낸 철훈 씨에게 찾아온 봄날 같은 행복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 배효지 기자

신요한 기자  syh95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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