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손기석

어린 시절 피부 콤플렉스가 심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던 소심한 소년은 고등학교 때 한번의 탈선으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맞이했다. 그런 소년이 아프리카 케냐로 봉사를 떠나며 새로운 안목을 갖고 돌아왔다. 요셉처럼 산 행복한 삶의 열쇠를 청춘들에게 소개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한 소년
어린 시절 극심한 여드름 때문에 고개를 한번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했던 손기석 씨. 그는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기계를 조립하기를 좋아했다. 컴퓨터 부품을 사다가 모두 조립해서 친인척의 컴퓨터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용산 전자상가에서 상점 직원과 상품을 흥정하게 됐다. 아버지는 그가 물건의 값을 깎을 때까지 상점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녔다.
“정말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납니다. 상점 주인에게 물건 값을 흥정 하는데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제 심정도 모르시고 저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셨죠. 전 정말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입을 한번 열고 나니 사람들이 제 외모에 관심을 갖기보다 어떻게 하면 물건을 저에게 팔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생각이 됐죠. 어떤 사람들은 제 얼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요. ^^”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니 미세한 여드름 자국들이 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대형 병원에 의료 소품을 영업 중인 영업인 기석 씨는 오히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오토바이 절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심하기만 했던 소년 손기석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학교에서 친구들과 힘겨루기를 했고, 오토바이를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걸리기도 했다. 헬멧 미착용에 절도까지. 운전했던 다른 친구들은 경찰이 무서워서 나서지 못했는데 그는 자신이 의리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친구들을 대신해 경찰서에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백했다. 하지만 경찰에게 엄청난 매를 맞았고 친구 부모님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은 후에 자신이 얼마나 비뚠 길을 오게 됐는지 눈물로 후회했다.
“친구 부모님들이 경찰서에 오셔서 친구들은 문제가 없는데 저를 잘못 만나서 범법을 저질렀다며 실신하기도 하셨어요. 모두 저를 좋아해주셨던 분들인데 상황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변해가는 걸 보면서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는 늘 착한 제 자신을 믿고 살았는데 그동안 제가 형편없는 사람인 줄 몰랐던 거예요. 갑자기 내가 주인이 되어서 인생을 운전하면 이런 어려움을 겪는구나 생각했어요.”
엄격한 아버지의 교육 덕분에 어릴 때 성적은 나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방황의 길로 한번 들어선 것이 그가 인생의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 당시 어머니를 따라 교회 목사님에게 찾아갔는데, 두 가지만 해보라고 하셨어요. 첫째는 성경을 읽고, 둘째는 남을 저보다 낫게 여겨서 우두머리가 되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어요.”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기 시작한 기석 씨는 조금씩 달라졌다고 말한다.
“고전보다 더 고전인 세기의 명작으로 불리는 <성경>은 지금도 제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한 이후에도 특히 많이 읽곤 했는데, 제 마음을 다스려주고 불안한 생각들을 떨쳐주는 데 성경만큼 좋은 책은 없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어요. 한번은 부대내 매점 관리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제가 성경을 읽고 있으니 정신이 불안정한 군인들을 상대로 동료가 되어 주라고 하셨어요. 같은 학교 출신의 동료였는데, 좋아하던 여자 친구 문제로 신경 쇠약에 걸린 거예요. 매점도 관리하면서 동료도 신경을 써야 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병사처럼 남자다운 훈련을 받고 싶었어요. 제가 성경을 보는데 요셉은 억울하게 원하지 않는 위치인 옥중에서 사람들에게 굄을 얻었고, 나중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매점 관리병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요셉이란 인물을 벤치마킹해 보았어요. 매점 내 제품을 처리하고 수익과 지출을 정확하게 계산해 장사하는 법을 배웠고, 가장 유능한 매점 관리병이 되었습니다. 주변 150여개 군 매점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친절, 청결, 판매로 많은 표창을 받았어요.”

아프리카에서 만난 가난한 아이들과.
아프리카에서 만난 가난한 아이들과.
해외봉사자로 아프리카 케냐를 종횡무진하다
기석 씨는 해외봉사에 도전했다. 그것도 아프리카로. 남들이 가기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닥까지 고꾸라져 본 사람만이 더 높은 곳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를 하면서 정말 우연찮게 방송국에 연결됐어요. 교육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부서를 맡았는데, 케냐 유명 대학교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도 했어요. 수익을 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다보니 대학마다 찾아가서 한국에서 유행했던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해서 응용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기석 씨는 ‘키수무’라는 지역으로도 들어가서 방송국 지사를 설립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수무에서 도둑 떼를 만나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카메라와 물건이 사라졌어요. 집안에 떼 강도가 들었던 겁니다. 다시 그들이 돌아올까 봐 극심한 두려움이 찾아왔어요.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저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성경을 보았어요. 요셉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그런 환경을 극복한 이후에는 더욱 큰 인물로 성장했어요. 특히 요셉의 주변에는 요셉을 믿고 그를 존중해주는 파라오가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저에게도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셨거든요. 그분들과 상의하고 조언을 구했을 때, 신기하게도 비로소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 이후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알아보는데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뜻에 맡기자 비로소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결국 카메라 가격만큼 고액의 광고비를 따내어 잃어버린 비용보다 더 되찾을 수 있었어요.”

케냐에서 PD로 활동하면서 “Reach for ”를 제작했다.
케냐에서 PD로 활동하면서 “Reach for ”를 제작했다.
해마다 케냐로 떠나다
세상 가장 반대편의 오지에서 아찔한 경험을 한 그는 오히려 아프리카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차가 길을 가다가 도로에 서면, 그런 차를 세워놓고 무작정 기다리곤 했어요.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걷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하지만 정말 아프리카에서 맞은 비는 운치가 있었어요.”
2010년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학교에 복귀하자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국제 인터십 개별지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알아보다가 지원서를 제출했고, 에세이 공모전에서도 당첨이 되어 총 천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무작정 뛰어들어 영어도 굉장히 잘 배웠습니다. 한국에서 토익 점수가 540점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880점이 됐지요. 학교로 돌아와서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지역의 기업인들과 함께 케냐를 다시 탐방갔어요. 아프리카가 집이 아닌 이상 저처럼 자주 간 대학생은 없을 거예요.”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성경 속 인물 요셉을 벤치마킹하며 살아왔다. 현재는 스미스앤드네퓨의 사원으로 병원을 다니며 영업을 하고 있다. 기석 씨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 보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부딪힌 적이 많다. 그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부담을 뛰어넘게 됐다.

7년 흉년을 지혜롭게 넘긴 요셉이란 인물처럼 그는 인생의 흉년을 성경 속 지혜로 극복해 왔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이론이 아닌 행동파 기석 씨. 그의 2015년 행보가 기대된다.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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