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낭만주의, 개츠비와 사라져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 중에 하나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 영화로도 제작되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1세기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리메이크 되며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의기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은 뉴욕의 증권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다소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으로, 사물에 대한 판단을 가능한 유보하는 게 좋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생이었을 때는 ‘정치인’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이 판단 보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판단을 보류한다는 것은 끝없는 희망을 간직한다는 표시이다.
개츠비는 닉의 이웃집에 사는 부자 청년이다. 닉의 눈에 비친 개츠비는 섬세하고 희망찬 사람이었다. 피츠제럴드의 현란한 문장은 개츠비가 대표하는 미국 낭만주의에 바쳐진 최고의 찬사이다.
만약 성격이라고 하는 것이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제스처라면, 그 제스처가 멋있게 성공적으로 계속되는 것이라면, 개츠비에게는 무언가 고귀한 것이 있었다. 그는 마치 수만 마일 떨어진 곳의 지진을 측정하는 섬세한 기계 같았다……. 그것은 삶의 약속에 대한 고도의 민감함, 미래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었고, 그는 언제나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낭만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런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매끄럽고, 시와 같은 운율이 흘러서 산문인지 시를 산문처럼 늘어놓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또한 그의 산문은 한 문장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곱씹어야 한다. 먼저 위에 인용한 첫 문장을 보자. 그는 성격과 제스처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격은 사실 제스처가 아니다. 성격은 한 번 형성되고 나면 변하지 않는데, 제스처는 일종의 연기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몸짓, 과장되고 자신을 속이는 몸짓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츠제럴드는 어떤 멋진 제스처가 반복된다면 이것이 성격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것이 무언가 고귀한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이 슬그머니 융합되어 있는데, 나는 이 문장이 아주 불편했다. 제스처를 성격이라고 한다면 참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어쩌면 피츠제럴드는 재즈의 시대가 특별한 시대이며, 이 시대에는 능란한 제스처를 성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우는 제스처와 표정을 통해 어떤 성격을 연기한다. 훌륭한 연기자는 특정한 성격을 가진 인물을 그 인물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한다. 재즈의 시대, 향락의 시대는 생각보다 제스처가 더욱 중요한 시대였을까? 개츠비는 이 제스처의 달인이었다. 성공한 대부분의 미국인이 그런 것처럼, 그 역시 능숙한 제스처를 보여준다. 그의 제스처에는 희망과 낭만, 민감하고 세련된 감각이 담겨 있었다. ‘삶의 약속에 대한 고도의 민감함’이라는 표현은 솔직히 너무 거창해서 어질어질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런 문장을 쓴 이가 바로 피츠제럴드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대부분의 미국인이 그의 영어를 배운다. 개츠비가 이 제스처로 무엇을 추구할지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미국의 지도자 케네디가 바로 그 희망, 낭만, 민감함, 세련됨의 제스처를 모두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케네디 대통령의 멋진 제스처는 개츠비가 풍기는 이미지와 아주 유사하다. 케네디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의 맞수였던 소련의 흐루시초프 수상도 제스처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케네디의 제스처는 멋지고 우아했지만, 흐루시초프는 쉽게 흥분하고 격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제스처의 달인들은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1962년 쿠바의 미사일 위기 때 이 두 명의 정치인은 세계를 향해 그들의 제스처를 마음껏 과시했다. 그동안
케네디의 해상 봉쇄 결정은 지혜로운 결정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비밀 기록들이 공개되자 그 결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는지 알려지게 된다. 케네디의 쿠바 해상 봉쇄 명령에 대해 흐루시초프는 소련의 선박과 핵 잠수함을 보내는 것으로 대응했고, 미국이 저지하자 흐루시초프는 핵 어뢰를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계가 핵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소련의 핵 잠수함 함장이 이 명령에 불복종한 덕분이었다.
닉의 집은 시내에서 20마일 쯤 떨어진 바닷가 교외였고, 바로 옆에 개츠비의 맨션이 붙어 있었다. 만을 가로질러 하얀 성과 같은 맨션이 물빛에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것은 톰 뷰캐넌의 집이었다. 톰의 아내인 데이지는 닉의 육촌이었고, 닉은 톰과 같은 대학을 다녔다. 톰은 운동을 잘했다. 그는 뉴헤이븐주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였고, 그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졌다. 그는 21세에 모든 것을 이루어서 그 이후엔 별로 할 일이 없어진 인물이었다. 그의 집안은 엄청난 부자였다. 톰과 데이지는 프랑스에서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1년을 보내고 미국 동부로 왔다. 그들은 폴로를 하는 곳이나 부자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리고 흔히 이런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톰은 인종주의자였다. 그는 백색인종이 지배하는 세상이 현재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닉은 저녁 초대를 받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들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톰의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뉴욕에는 톰의 애인이 있었고,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 데이지도 잘 알고 있었다.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닉과 데이지가 둘만 있게 되었을 때, 데이지는 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톰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어.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더라. 간호사에게 아들인지 딸인지 물어보았어. 간호사가 딸이라고 말했지. 나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어.
데이지가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닉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어떤 남자가 이웃집의 그늘에서 바다를 향해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개츠비였다. 인사를 할까 했지만 그는 왠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기묘한 동작으로 손을 뻗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가 몸을 떨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개의 녹색 불빛만이 멀리 만의건너편에서 반짝였다.
개츠비는 미스테리한 남자였다. 연회장에 개츠비가 나타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연회에서 온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억측을 내놓곤 했다. 그가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파티장에는 닉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서 있는데 개츠비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군에 있을 때 닉의 이웃 연대에서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 미소는 그가 상대방을 잘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미소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해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드문 미소였다. 일생에 4, 5번이나 그런 미소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미소였다. 그 미소 는 영원한 보증을 약속하고 있었다. 당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 모든 것을 당신에게 유리하게 처리하겠다고 하는 미소였다. 그것은 당신이 희망하는 대로 당신을 이해하겠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을 믿겠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대로 당신이 주고 싶은 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증하는 미소였다.
그는 31세 혹은 32세로 보이는 우아하게 행동하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는 말을 할 때 조심해서 단어를 골랐다. 개츠비의 집에서 벌이는 이 파티는 재즈시대의 파티였다.
1920년대, 세계대공황이 오기 전 미국경제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큰 거품이 일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주식가격은 계속 치솟았고, 미국인들은 전 유럽을 휩쓸며 돈잔치를 벌였다. 돈을 물쓰듯하는 개츠비의 파티는 술과 춤의 광란의 파티였다. 남녀는 서로 은밀하게 유혹을 하였고, 부부는 싸움질을 벌였다. 왜 개츠비는 주말마다 이 파티를 열었던가.

 
 
1917년 데이지는 루이스빌에서 살고 있었는데, 집 근처에 군기지가 있었다. 데이지는 군장교들에게 인기가 많아 데이트를 신청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개츠비는 한 때 데이지의 연인이었다. 1년 후, 개츠비는 기지를 떠나 해외로 파견되었고, 그 다음해에 데이지는 톰과 결혼했다. 그 개츠비가 떠난지 5년 후에 다시 뉴욕에 나타난 것이다.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데이지가 혼자 닉의 집으로 오면 데이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간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주도 면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먼저 데이지가 사는 집 근처에 맨션을 샀다. 그리고 매주말 연회를 개최하여 데이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데이지가 오질 않자 데이지를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닉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닉이 데이지의 육촌이란 것을 알아낸 것이다. 닉은 개츠비가 원하는 대로 데이지를 초빙하였다. 이렇게 하여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개츠비의 본명은 제임스 가츠였고, 그의 아버지는 노스 다코타의 가난한 농부였다. 그는 17세가 되었을 때 제이 개츠비로 개명하고 아버지와 다른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수피리어호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조개를 파내거나 연어를 잡아 생계를 이었다. 어느날 개츠비는 댄 코디란 백만장자를 만났다. 댄은 멋진 요트를 갖고 있었다. 댄은 개츠비가 민첩하고 어마어마한 야심을 가진 소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개츠비는 5년 동안 댄의 요트에서 일했다. 개츠비가 지금 원하는 것은 데이지가 톰과 이혼하고 다시 루이스빌로 가서 그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닉이볼 때 이것은 현실성이 없었다.

고전의 세계는 아름답고, 황홀하고, 웅대하다. 세월을 이기고살아남은 고전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키운다. 사람은 인문의힘으로 산다. 필자가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그들은 생각하는 눈을 가졌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서 한바퀴회전하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않는다. 그들은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에대해 고민해본 사람들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중
고전의 세계는 아름답고, 황홀하고, 웅대하다. 세월을 이기고살아남은 고전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키운다. 사람은 인문의힘으로 산다. 필자가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그들은 생각하는 눈을 가졌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서 한바퀴회전하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않는다. 그들은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에대해 고민해본 사람들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중
데이지가 그를 사랑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개츠비가 무일푼의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은 겨우 군복으로 감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데이지의 세계, 그 부의 세계는 개츠비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아련한 꿈이었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꿈꾼 세계, 그가 도달할 수 없던 세계, 아름다운 부자집 여자에 대한 그의 동경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이제 부자가 되었지만, 개츠비가 벼락부자라는 것은 전통적인 부자인 톰과 견주어 볼 때, 취약한 것이었다. 톰은 데이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부자들의 세계는 사랑을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지 않았다. 부가 주는 안락과 무책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부자들은 벼락부자를 경멸하고 있었다. 벼락부자 개츠비가 이 전통적인 부에 도전한 것이다. 그는 그의 낭만주의가 이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희망에 대한 민감성이 데이지를 도로 찾아올 수 있다고 믿게 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낭만주의와는 관계가 없는 부자라는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톰과 결혼할 때도 그녀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톰의 선택이었다.
데이지는 자기의 삶을 자기가 형성해 본 일이 없었다. 어떤 힘이 그녀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개츠비의 죽음과 더불어 끝난다. 결정을 할 수 없었던 데이지는 흥분상태에서 미친 듯이 차를 몰았고, ‘윌슨 정비소’ 주변에서 톰의 차인 줄 알고 차로 달려들던 톰의 여자를 들이받아 죽인다. 윌슨은 톰으로부터 그차의 주인이 개츠비라는 말을 듣고 개츠비의 집으로 숨어 들어와 개츠비에게 총을 쏜다. 미국의 위태로운 낭만주의는 이 한방의 총에 의해 사라진다.
벼락부자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물질주의를 넘어서 존재할 수 없었다. 그가 은밀한 밀회가 아닌 사랑을 요구했을 때 아메리칸 드림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개츠비가 쓰러진 후 톰과 데이지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피츠제럴드는 톰과 데이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부주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고를 쳤고 귀중한 것을 부수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돈으로, 그 거대한 무신경으로, 무엇이건 부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것으로 숨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잘못과 혼란을 깨끗이 치우는 동안 그들은 숨어 있었다.

김의기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통상 전문가인 김의기 고문은 WCO, WTO 등 국제기구에서 24년간 원산지 규정 전문가이자 관세 평가 전문가로 활약하였다. 어릴 적부터 책 사랑에 각별했던 그는 평소 고전을 즐겨 읽으며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를 출판했다. 현재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담당 | 김민영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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