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 버리고, 하늘의 뜻 받아들여

2014년 유난히 사고와 아픔, 눈물이 많은 해였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떠나보내고 2015년 새해를 맞이해 독서 특집 코너에서는 우리나라 고전인 <한중록>을 소개한다. 혜경궁 홍씨가 가진 지혜를 다시금 상고하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전 속 인물을 탐구해 보자.

▲ 한중록(閑中錄 또는 恨中錄)은 혜경궁 홍씨가 궁중생활 60년을 기록한 자전적인 회고록으로서 궁정 수필 및자전적 수필로 분류된다.
▲ 한중록(閑中錄 또는 恨中錄)은 혜경궁 홍씨가 궁중생활 60년을 기록한 자전적인 회고록으로서 궁정 수필 및자전적 수필로 분류된다.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대하고 있노라니 아련함과 답답함이 떠오른다. 남편인 사도세자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아버지 홍봉한의 흥망을 지켜보는 애절함, 아들 정조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애틋한 모정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은 치열한 파벌싸움으로 인해 충신이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기도 하고 절친한 친구가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 왕의 신임을 받고 높은 벼슬에 올랐더라도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 내일의 생명을 부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잘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위험한 때였다.
혜경궁 홍씨도 아버지 홍국영이 벼슬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세자빈의 자리에 오른 뒤에 아버지나 동생이 왕의 신임을 얻어 벼슬길에 올랐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성실하고 충직하게 왕을 섬긴다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조정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편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와 자꾸만 어긋나갔다. 혜경궁 홍씨와 정조는 영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혜경궁 홍씨는 남편과 시부(영조)의 벌어진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을 보며 정말 난감했을 것이다. 남편의 이상한 행실이 아버지의 오해와 무고한 책망으로 비롯된 정신병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혼잣말로 이야기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남편 사도세자가 죽고 난 뒤 혜경궁 홍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어느 면으로 보나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혜경궁 홍씨는 죽음조차도 자기가 선택할 수 없었다. 아들 정조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행여라도 누군가의 음모에 사로잡혀 아들이 영조의 눈 밖에 나지는 않을까, 반대파의 비수가 아들의 심장으로 날아들지는 않을까.’ 혜경궁 홍씨는 늘 정조를 지키고 정조의 안녕을 빌기 위해 모진 삶을 더 살아야 했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나라의 역사나 가정사가 ‘옳음’이라는 것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서로 자기 파벌을 옳게 여기는 대신들. 어두운 어머니의 역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영조의 옳음, 자기는 억울하게 모함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굽히지 않는 사도세자의 옳음! 그 옳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역사에 어두운 페이지가 기록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혜경궁 홍씨에게서는 그 옳음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기가 이해하기 어려운, 때로는 억울함과 안타까운 일에 대하여 하늘에 부르짖고 하늘의 뜻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 정조에게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전하면서도 “망극망극하나 다 하늘이시니…”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그 누구의 잘못으로 사도세자가 죽은 것이 아니니 마음을 평안히 하라고 당부한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하루도 왕비 생활을 하지 못하고 비운의 삶을 살다가 죽었다.(죽음 후에야 손자에 의해 경의왕후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왕비가 되기 위해 수단을 부리지 않았다.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귀양을 갈 때도 조용히 하늘의 뜻을 인정했다. 자기의 옮음을 버리고 궁중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고 자손을 지킨 혜경궁 홍씨의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

정성미
어린이 잡지 <키즈 마인드>의 편집장인 그녀는 평소 한국 고전을 즐겨 읽으며 생활 속 지혜를 얻는다. 어린아이부터 부모 세대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지혜와 책읽기의 즐거움을 전한다.

 

담당 | 김민영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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