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엽_단국대 천안캠퍼스 경영학과 2학년
배시시 웃는 그의 얼굴에서 수줍음이 가득 묻어난다. 올해 스물넷인 김대엽은 한눈에 보기에도 여성 못지않은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실제로 그는 해외봉사를 가기 전에는 사소한 일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자주 속을 앓았다.
“어렸을 때에는 굉장한 개구쟁이였어요. 낯가림이 심해도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짓궂은 장난치기를 즐겼거든요. 제가 구구단을 외울 즈음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는데, 그 때문인지. 성장하며 다소 의기소침해진 거 같아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다른 집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져 주는 편인데!’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속상한 마음에 혼자 있을 때에는 한참을 씩씩대다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이유 없이 주눅이 들곤 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저는 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더욱 대학교 1학년 때 굿뉴스코 홍보 동영상을 보고 끌렸던 거 같아요. 스키점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어요. ‘바로 저거다!’ 싶더라고요. 주저하지 않고 바로 해외봉사활동을 지원했어요.”
마침 그가 홍보영상에서 보았던 스키점프 장면이 러시아를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로 파견되었다. 2012년 2월, 평균기온이 보통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그를 맞이했다.
‘러시아 월드캠프’가 5월에 열릴 예정이어서 그는 도착하자마자 매일 매서운 러시아의 칼바람을 맞으며 홍보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어머니에게 져주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거든요. 이혼하는 일이 많은 러시아 사람들을 만날수록, 저희 아버지가 정이 많으시고 가족을 많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저에게 러시아로 해외봉사를 가라고 하신 분도 바로 아버지셨거든요.”
낯선 러시아 문화 속에서 다양하게 사는 현지인을 만나며 그에게는 어느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며 쉽게 친해지게 됐다.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았기에, 매일 공부를 하고 배운 내용을 활용하며 러시아어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어느덧 귀국을 한 지도 2년이 흘렀다. 김대엽은 현재 “해외봉사가 자신의 마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아르바이트로 ‘마하나임 사이버 신학교’에서 러시아 통역을 보조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코트라’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 들어가 러시아 현지에서 우리나라 교민을 돕는 일을 하길 꿈꾼다.
사진 | 이규열(Light House Pictures 실장)
진행 | 배효지 기자 헤어&메이크업 | 윤미영 의상협찬 | Mind Bri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