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_해외봉사 출발

현재 방송국 뉴스 팀장을 맡고 있는 송태진 씨는 2008년 당시 아프리카 부룬디 해외봉사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아였다. 해외봉사 이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가 가장 소중한 추억을 대학생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편집부 문을 두드렸다. 그의 힐링 스토리를 전한다.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해서 두 시간의 비행 후 부룬디에 도착했다. 기대했던 적도의 강렬한 태양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하늘은 눅눅한 잿빛 비구름으로 꽉 차 보슬비를 흘리고 있었다. 부줌부라국제공항은 비록 작긴 했지만 과학 천문대를 연상시키는, 혹은 김이 붙은 일본 주먹밥을 떠올리는 예술적인 디자인의 보기 드문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의 건축물답게 외벽은 군데군데 하얀 칠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깨지고 금이 간 유리 지붕으로는 빗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 때 건축가를 흐뭇하게 했을 이 늙은 공항은 세월의 흐름 속에도 마지막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노신사처럼 이방에서 온 방문객을 맞이했다.

좌충우돌 공항에서
하나뿐인 게이트를 지나 공항으로 들어갔다. 함께 내린 다른 승객들은 능숙하게 입국 서류를 작성하고 줄을 서는데, 서류를 받아든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땀만 뻘뻘 흘렸다. ‘에라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조용히 줄 뒤에 섰더니 난데없이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처음 듣는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소리치며 우리를 몰아세웠다. ‘왜 그러지? 뭐가 잘못된 걸까? 이러다 어딘가로 끌려가면 어쩌지?’ 군인의 말 몇 마디에 꽁꽁 얼어버린 나를 보며 공항의 직원들은 누나의 장난감을 망가트리며 기뻐하는 사악한 꼬맹이처럼 키득거렸다.
그들의 짓궂은 눈길을 피해 그저 구멍난 공항 천장만 치켜보고 있을 때, 새카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부룬디 모대곤 지부장님이 나타났다.
“얘들아, 무사히 왔구나! 반갑다!”
20대 후반의 젊은 지부장님은 간단한 인사 후 이내 우리의 입국 수속을 시작했다. 거침없이 공항을 활보하며 서류를 넘기고 짐을 부리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흡사 우거진 밀림을 헤치고 전진하는 능숙한 탐험가 리빙스턴처럼 위대하게 보였다.
특히 비자를 발급 받을 때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완고한 직원에게 지부장님은 현지어를 몇 마디 던지고 눈을 한번 찡긋 해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웃음을 빵 터트리며 우리의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주는 것이었다. 공항 직원과 능청스럽게 즉흥 개그 연기를 하는 듯한 지부장님의 유연함이 부러웠다. 아직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반벙어리지만, 일 년 후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나도 능통히 언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웃는 미소 사이로 벌어지는 하얀 앞니를 지닌 오스카란 현지인이 우리를 센터로 운전해주었다. 차창 밖으로 아프리카가 펼쳐졌다. 길의 좌우를 채운 초록색 풀과 나무들. 바닥에 깔린 새빨간 황토 흙이 보였다. 콧속까지 습기로 가득 차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한눈에 보아도 가난에 지독히 찌든 새까만 사람들의 군상이 거대한 배경 화면처럼 달리는 내내 이어졌다. 센터에 도착하자 현지인들의 환영식이 있었다. 활기차고 장난기가 가득한 멜로디에 긴 비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 과학 천문대를 닮은 멋진 디자인의 부줌부라 국제공항
▲ 과학 천문대를 닮은 멋진 디자인의 부줌부라 국제공항
부룬디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
가져온 짐들을 정리하고 나는 지부장님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20인승 정도 돼 보이는 탈탈거리는 찌그러진 고물 버스에 올랐다. 새카만 얼굴에 달린 수십 개의 눈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고, 갑작스러운 주목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수군수군 키득키득. 재미있는 것을 만난 수줍은 장난꾸러기들이 곧잘 내는 소리가 버스 안에 가득 찼다.
몇몇 한량들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으흥?’ 하고 모르겠다는 몸짓을 한번 했는데…. 그 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동안 참아 오던 웃음을 한꺼번에 터트리듯 일제히 깔깔깔깔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퉁퉁한 아줌마, 코 찌질이 어린이, 주름이 자글자글 한 할아버지, 선글라스 낀 멋쟁이 청년, 앞좌석의 버스 운전사와 안내양까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수를 치고 침 튀겨 가며 목젖이 다 보이게 웃는다. 웃음으로 가득 찬 맑은 호수에 풍덩 잠긴 듯 사방에서 밀려오는 박장대소에 온몸이 감겼다.
격식, 체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감정을 따라 마음껏 뿜어내는 밝은 웃음소리. 한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소리였다.
나도 덩달아 그들과 함께 웃었다. 굳이 상황을 따져보면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웃기에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우하하하하~’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들떠서 웃는 게 바보 같기도 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꼈다. 여기는 아무 데서나 누구하고나 눈만 마주치면 신나게 웃을 수 있는 나라구나. 비로소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것이 와 닿았다. 웃음주머니가 터진 우리의 고물 버스에는 한동안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시내에서의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차창 밖 풍경을 보았다.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부줌부라에서는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나무와 진흙으로 얽어 만든 조잡한 집들과 비틀거리며 달리는 불안한 고물 자동차. 젖먹이를 안고 갓난애는 업은 채 볼품없는 풋 과일을 파는 아낙네, 누더기를 걸치고 까불대며 뛰어다니는 한쪽 팔 없는 아이, 아무데나 드러누워 낮잠에 빠진 의욕 잃은 젊은이들. 가난이라는 재료로 건축한 빈곤이 가득 찬 도시에서 그날 저녁, 나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 현실이 절망스럽든 이해가 안 되든 나는 이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다가가자. 눈앞에 있는 현실에 갇히지 말고 이들의 미래에 희망을 채우는 일을 하자. 부룬디에 있는 동안 나를 위해서 살지 말자. 부룬디를 위해서 살자. 그렇게 1년을 보낸다면, 분명 돌아가는 날에 나는 부룬디에서 봉사 하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충돌, 물 좀 주소
무료교실 준비를 위해 거실을 잔뜩 어질러 놓고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끼익 열리더니 허름한 신발이 불쑥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신발에 흙이 묻은 시커먼 남자가 풀린 눈을 꿈뻑꿈뻑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눈치를 보는 게 뭔가 사고를 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불안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에게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
‘왜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집 안에 들어왔지? 그것도 흙먼지 잔뜩 묻은 신발을 신고?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온 도둑인가? 소리쳐야하나?’
긴장한 나와 눈이 마주친 채로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물 좀 주세요.”
물을 달라니. 그게 지금 자연스럽게 할 말인가? 수업 중인 강의실에서 벌떡 일어나 교수님께 엄마가 보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뜬금없는 말이었다. 물을 왜 달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도둑인지 강도인지 정박아인지 모를 이 남자를 일단 안심 시킬 필요가 있었다. 부엌에 가서 컵에 물을 담아와 그에게 건넸다. 물을 받더니 그가 하는 말.
“이 물 말고 찬 물로 주세요. 찬 물이 마시고 싶네.”
‘야, 너 누구야? 뭔데 남의 집에 다짜고짜 들어와서 물 온도 가지고 트집이야? 당장 나가, 이 자식아!’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가 칼을 품은 냉혹한 킬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다시 한 번 한국인의 서비스 정신을 보여줬다.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저기……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죠?”
“아, 여기가 무료 교육 수업 하는 곳 맞죠? 백인이 영어도 가르쳐주고 컴퓨터도 가르쳐 준다고 하던데. 그거 접수하러 왔어요.”
강도가 아니라는 말에 당장 그 인간을 거실 밖 마당으로 내보냈다. 그는 무료교실 접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는 뿌듯해 하며 돌아갔다. 나는 거실로 돌아가 투덜거리며 그의 신발에서 떨어진 굵직한 흙먼지들을 청소했다. 그러는 중에 자원봉사자 샤드락이 들어왔다. 샤드락에게 방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니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쏭, (부룬디 친구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건 부룬디의 문화야. 부룬디에서는 모르는 사람 집이라도 거실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지.”
“나도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건 문화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주인이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집 안으로 불쑥 들어가도 괜찮아?”
“그럼. 부룬디에서는 집에 주인이 없어도 거실에 들어가서 쉴 수 있어.”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만약 그 사람이 도둑질을 하려고 그 집에 들어간 거라면 어떡해? 다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만약 그가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왔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도둑맞을 걸 두려워해서 손님을 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야.”
▲ 현지인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마당에서 식사 준비를 돕는 중.
▲ 현지인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마당에서 식사 준비를 돕는 중.
그렇다. 사람을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왜 그 남자가 거실에 불쑥 들어왔을 때 친절히 맞이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했나? 나는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를 믿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은 일단 담을 쌓고 경계하는 것이 나의 본능이었다. 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만 가능했다. 누군가 허락 없이 그 안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예의가 없다’고 여기거나 ‘친하지도 않으면서 오버한다’라고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나이, 성별, 계급, 말투, 성격, 외모, 재력, 양념치킨을 먹을 때 손가락을 쪽쪽 빨아 먹는지 등 별별 가지 이유로 수 없이 많은 높고 낮은 담과 장벽을 마음에 만든다. 그렇게 사람을 판단하고 저울질 해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어준다. 담 밖의 사람, 특히나 잘 모르는 사람은 믿지 못하고 그가 내 담장 안의 것을 파괴할까봐 두려워한다. 정작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반면 샤드락에게는 아군이나 적군이거나 하는 사람을 나누는 경계가 없다. 나의 집에 들어온 사람은 그가 누구든 친구인 것이다. 해코지 당할 게 두려워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면 그것은 도둑질을 당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라고 말하는 샤드락.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친구의 개념,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크게 흔들렸다. 부룬디 인들은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존중하고 믿어 주었다. 이사람이 가난한지 부유한지 현명한지 미련한지 그런 기준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게 이익이 되는지 내게 어울리는지를 따져서 사람을 대우하는 ‘나’라는 녀석은 어리석고 속 좁은 철부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지키려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일까? 부룬디 사람들의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느끼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물을 달라고 하는 거야? 그것도 굳이 찬물을 달라고 하다니.”
“그는 여기까지 뙤약볕 아래를 걸어왔어. 당연히 목이 마르겠지. 그 사람은 목이 마르고 여기엔 물이 있으니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그는 목이 마르고 나에게는 물이 있는데 왜 나는 그에게 물 한잔 주는 것을 불쾌하게 느꼈을까?
한국인은 좋아도 좋다 싫어도 싫다 말하지 않는다. 눈치보고 좋게 뵈려 하고 피해 주거나 피해입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곳은 공생하는 사회다. 목마르면 물 달라고 할 수 있고 기분 좋게 받아 마실 수 있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컵 주면서 온갖 생색을 다 내는 내가 부끄러웠다.


담당 | 김민영 기자 디자인 | 전진영 기자 일러스트 | 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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