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미국을 생각)’ 하는 쫀득한 마음의 발견 (5)

 
 
끝내 물을 담지 못했던 물병
빈 물병에 물을 담는다. 적당하게? 아니, 끊임없이. 물은 계속 차오른다. 물이 물병 입구에서 위태롭게 찰랑인다. 물을 더 붓는다. 물이 넘친다. 물병은 끝내 물을 담지 못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 안우림이라는 빈 물병은 세상에서 요구하는 물들을 이리저리 쓸어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점, 인간관계, 대외활동 등 주변에서 꼭 해야 한다는 것들을 채워야 쓸모 있는 물병이 될 것만 같았다. 좀 더 높게, 좀 더 좋게, 좀 더 많이. 그렇게 무수한 것들을 나에게 들이 부었지만 난 행복하기는커녕 허무했다. ‘부족한 탓일 거야....’ 행복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었던 나는 더 많은 것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벌컥, 벌커컥, 벌커커커컥…. 결국 물은 넘쳐흘렀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대체 무엇을 담은 건지, 내가 무엇을 위한 물병인지 조차 모르게 됐을 때 나는 확신했다. 행복은 ‘채움’에서 오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화려함 속에 감춰진 아픔을 만나러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악必要惡이 되었던 한국.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더더욱 경쟁은 한국 사회에 필수적이다. 그 사회 안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금 더 위로, 저 사람보다는 더 낫게’ 라는 슬로건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던 나는, 그 슬로건을 찢어버리기로 했다. 위만 보고 있던 나의 눈은 조금씩 밑을 향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에서는 아니야. 해외봉사를 가는 거야. 그것도 아주 불쌍하고 아픔이 가득한 곳으로!’ 나는 아프리카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미국에 다녀온 선배들은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의 아픔이 궁금해서 해외봉사를 가? 그럼 미국으로 가. 미국은 그 속이 앓고 있는 곳이야.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들의 삶은 정말로 아파.”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미국을 가기로 결정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아픔’을 선배들의 말이 아닌 나의 온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다.

 
 

화려한 뉴욕, 낯선 뉴욕
미국하면 떠오르는 것. 세계 최강대국, 할리우드, 자유의 여신상, 애플. 모두 멋지고 번지르르한 것들이다. 나에게 미국은 그리고 내가 가게 된 뉴욕은 그랬다. 우리가 생각하는 뉴욕은 도시 이름이 아니라 주州 이름이다. 그 뉴욕주 안에는 뉴욕 시가 있고, 그 뉴욕 시는 맨해튼, 브룩클린, 퀸즈, 브롱스, 스태튼섬 이렇게 5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맨해튼은 단연 뉴욕의 노른자위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루이비통·구찌·샤넬 등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품 상가들이 늘어선 거리,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등이 모두 돈과 자유와 향락의 기운을 물씬 풍기며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내가 처음 미국 사람들을 만나러 거리로 나간 날, 나는 뉴욕 맨해튼의 할렘가로 가게 되었다. 그 화려한 곳의 유일한 빈민촌, 할렘가로 말이다.

뉴욕 할렘가에서 만난 미국의 아픔
그곳에서 나는 해그리드라는 흑인 여성을 만났다. 행사 홍보를 준비하며 거리에 테이블을 피고 있던 나에게 다가온 20대 흑인 여자.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와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너희 여기서 뭐하는 거야?”  
덥수룩한 파마머리에 덮어쓴 보라색 비니와 답답해 보이는 두터운 외투는, 장롱 안에 수년간 묵혀있던 냄새를 풍기며 그녀의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나에게 전해 주었다.
“우린 한국에서 온 해외봉사단원이야, 나는 미국에서 1년 동안 봉사를 하려고 왔어. 나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하면서 친구가 되고 싶어. 물론 너랑도.” 
“그래? 난 펠리샤야. 그리고 나는….”
펠리샤의 남자친구는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인들 여럿이 모여 무얼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에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이, 사는 곳 등의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해, 학교에 다니지 않고 바로 일선에 뛰어든 것, 남자친구가 있지만 외로이 홀로 가는 삶, 담배와 술에 중독된 자신의 모습까지... 그녀는 20분 동안이나 나를 세워 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선 듯이. 미안하게도 나는 그 대화의 30%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 대화 속 그나마 들리는 단어들로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대충 하고 있는지 추측했을 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충을, 고통을, 삶을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녀의 눈빛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없다. 한 방울의 눈물이 살짝 고여 있

건국대학교 3학년 안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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