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Job&커리어 캠퍼스 취업정보
우리는 beloved가 아닙니다제7회 정부지원학자금 일반부문장려상 수상 수기
빈현욱 | 승인 2014.12.04 18:45

소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에서 주인공 사이드는 노예 사냥꾼에게 자기 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기 아이를 죽였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이 이야기에서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와 생활고 안에서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비단 미국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 받는 자라는 단어인 ‘빌러비드Beloved’는 역설적 의미로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도 힘든 여건 속에서 꿈을 잃고 방황하는 빌러비드들이 존재한다. 국가장학금이라는 혜택은 가능한 제 2의 빌러비드를 막았고, 제 3의 빌러비드를 막길 위하는 바람으로 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빈현욱_리더십, 지식, 추진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성과를 이루어 대한민국 시스템 반도체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공학인. 공학의 길이란 흙 묻은 발로 황금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 큰 성취와 배움을 향해 걷고 있는 그는 현재 전북대학교 전자공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 Beloved_사랑 받는 자라는 의미. 소설 <빌러비드>에서는 사랑 받지 못한 자라는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가정의 모든 것이 빚
나는 이혼 가정의 자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이후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요새는 이혼 가정이 흔하기도 하고 지금의 나는 성인이 된지 제법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런 것이 창피하고 감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것이 비뚤어짐의 변명이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무시를 받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이는 것이 무섭고 두려울수록 거친 말과 행동이 늘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보다 더 큰 문제는 금전적인 것이었다. 법적으로 몇 년간의 위자료와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하셨던 아버지는 연락이 되지 않으셨고, 어머니께서 나와 누나의 뒷바라지를 혼자 하셨다. 당시에 누나는 광주에 있는 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쯤엔 1년에 천만 원 가까이 되는 대학 등록금, 타지에서 자취를 하는 누나의 생활비, 이제 대학을 들어가려는 나의 학비와 생활비를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정의 모든 것은 빚이었으며 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어머니의 손등의 골은 더 깊어져 갔다. 나는 마치 빌러비드였다. 
우여곡절 끝에 집 근처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 후 나는 철이 든 척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어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와 용돈을 벌었다. 하지만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학교 수업에는 잘 가지 않았고, 심지어 시험장에도 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일은 내가 할테니 용돈 걱정하지 말고 학교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셨다. 당시에 그 돈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았고, 어머니는 더욱 혹사하셨다. 가슴속에 반발심만 커져갔다. 친했던 어머니와 나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학기가 지나가고 다음 학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부는 하지 않고 힘들게 벌었던 돈으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다. 그렇게 빚으로 다닌 1년간의 대학생활의 끝에 결국에는 내 손에 학사경고라는 성적표가 남았다. 

희망의 문을 열다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얼마 벌지 않는 돈이지만 조금씩 모아 10개월이나 지난 후에야 한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복학을 생각할 때, 그때 국가 장학금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 등록금과 교육 체계의 문제점이 화두에 오르면서 생긴 이것은 학사경고까지 받았던 내게 학비의 절반을 지원해주었다. 내가 잘하여 받은 국가 장학금이 아니지만, 어머니는 내가 잘해서 받은 장학금인줄 아시고, 행복한 얼굴로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아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스스로 벌었다고 위로하는 것이 아닌 학업에 충실해서 장학금을 받아 어머니의 자랑과 희망이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감을 끌어 모아, 과거의 청산이 아닌 미래의 성형이라는 생각으로, 왼손에는 처음 받아본 장학금을 쥐고, 오른손에는 노력이라는 펜을 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과목에서 A+라고 명시된, 태어나서 처음으로 1등이라는 성적표를 손에 받았다. 그날 저녁 성적표를 들고 어머니에게 “국가장학금과 성적장학금을 둘 다 받아서 다음 학기 등록금은 안내도 돼. 이젠 설거지 안 해도 돼”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도 우시고 나도 울었다. 그 후로 나는 지금까지 4학기째 학비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국가장학금이라는 신발을 신고
성적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공학교육페스티벌에서 캡스톤디자인 경진대회, 반도체설계 공모전, 그 밖에 여러 가지 대회에서 상을 수상했다. 또 전자공학이라는 전공과목 중 2과목을 제외한 모든 전공에서 A+를 받았다. 나는 나와 맞는 전공을 찾았고, 지금은 전북대학교 전자공학부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2년 전 국가 장학금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나 평가를 받긴 어려웠을 것이다.
매번 형편에 맞지 않는 큰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일을 하면서 공부했다는 변명으로 만들어진 일그러진 성과를 보면서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위로를 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아보고 달라진 나의 태도는, 변명을 쌓는 시간에 책을 펴고 연필을 든 시간으로 바뀌었고 이 시간들은 성적표 위 알파벳 곡선을 빳빳한 직선으로 바꾸었다.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는 내 인생의 성형을 시작했고, 국가장학금과 함께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네 인생이 포장이 잘 되지 않은 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길을 신발을 신지 않고 걷기는 힘들고 아플 것이다. 또,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도 무척이나 불편할 것이다. 그런 상태로 누군가와 시합을 한다면 당연히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20대 중반의 청년들은 이 길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한다.
‘나에게 맞는 길인가,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가도 괜찮을까, 지금 이 길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길은 무엇일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건 신발이다. 자기 발에 딱 맞는 튼튼한 신발을 신고 신발 끈을 꽉 조여 맨다면 가시밭길도 걷고,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장학금은 맨발이었던 내 발에 처음 신발을 선물해 주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있던 내게 신발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었다. 그 신을 신고 전자 공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한 길을 걷는데 발의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길 위에서 나는 점점 더 빠르게 걸을 수 있었고, 현재는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 돈으로 신발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 팔이 없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일상생활 중에 대칭적인 동작(식사, 운전, 물건 들기 등)이 많다는 아이디어를 내어 만든 전자 의수 '채우미'. 전국 캡스톤경진대회에서 산업기술원장상을 수상했다.

미래를 성형하다
국가장학금으로 장학금 혜택을 받고, 철든 척을 했던 시절에 모았던 돈은 내 통장에 남겨졌다. 그 돈으로 나는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남은 학기의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받기 위해서 친 배수의 진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대학생활의 낭만을 한번 느껴보자’라는 생각으로 비행기 표 두 장과 현지에서 사용할 기차표 몇 장을 손에 들고 떠났다. 그곳에서 본 아래로 깔리는 조명들, 곳곳에 살아있는 유적들, 비에 젖은 로마 거리와 미술책에서나 보던 그림들, 알프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들. 그때 보았던 수많은, 생생한 낭만들은 아직 나의 품속에 있다. 다시 생각해도 다시 설레고, 벅찬 추억이 생겼다.
그리고 유럽 여행은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그동안 남들과 조금 다른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선진국이라면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문제점에 대해 불평해왔지만, 처음 마주한 선진국인 유럽은 내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높은 세금을 내면서도 공중화장실 이용에 돈이 들며 너무나 불안한 치안과 비싼 교통비, 길거리에 널린 부랑자들, 꿈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없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당연시 해왔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자아 형성은 배낭여행을 하던 중에 생겼고, 생각해보면 국가에서 받은 장학금이 없었다면 겪지 못했을 과정이었다.

지금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때 스스로 오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나를 지켜봐주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연약했지만 단단해졌다. 많은 생각을 할 줄 알며 자신감이라는 신발을 신고 달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달라질 수 있었던 계기가 국가장학금이라는 나라에서 건넨 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회만 있다면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국가는 나에게도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손이다. 힘들어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잡으세요. 그 기회는 나라에서 줄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찾는 ‘제 2의 빈현욱’이 생기기를 염원합니다. 힘내세요. 우리는 빌러비드가 아닙니다.”


디자인 | 김진복 

빈현욱  dkfjsdkfj@hanmail.net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빈현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