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_해외봉사 출발

현재 방송국 뉴스 팀장을 맡고 있는 송태진 씨는 2008년 당시 아프리카 부룬디 해외봉사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아南兒였다. 해외봉사 이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가 가장 소중한 추억을 대학생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편집부 문을 두드렸다. 그의 힐링 스토리를 전한다.


 
 

인생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행복해지려는 사람 말고 행복한 사람 말이다. 굉장히 심하게 행복한 바람에 주변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아직 대학교 학생 식당 위치도 모르던 풋내기 신입생 시절, 나는 캠퍼스에서 전시된 해외봉사단 사진전을 보았다. 이국적인 배경을 무대로 한 대학생들의 활기찬 모습. 그러다 까만 피부와 장난기 가득한 큰 눈을 가진 아프리카 어린이들 사이에서 어느 대학생의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에 발길을 멈췄다. 뛰어난 외모의 젊은이도 아니고, 사진이 걸작이었던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단순한 구도, 뻔한 사진이었지만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나를 붙잡은 것은 그의 맑은 웃음 때문이었다. 소셜네트워크에 가득한, 불편하고도 인위적인 미소와는 달리 살아있는 웃음. 잠시 얼굴 근육을 움직여 그를 흉내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처럼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문득, 나는 그의 웃음이 부러웠다. 웃음 속에 드러나는, 내겐 너무 낯선 감정
‘행복’.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행복을 가진 얼굴이었다. 참기름 병에서 향이 흘러나오듯 사진 속 그의 웃음에서 행복이 흘러나왔다. 부러웠다. 그런 웃음을 나도 한번 지어보고 싶었다. 웃음의 비밀을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행복의 비밀을 찾아 그처럼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


부룬디? 도대체 어디 있는 나라야?
“나는 자랑스러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 것을 선서합니다!”
해외봉사단 수료식에서 열정 충만한 철부지 청춘들이 한 목소리로 선서를 마쳤다. 제7기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선발된 600여 명의 단원들은 수료식에 서기까지 몇 차례의 워크숍과 면접을 거쳤다. 그 기간 동안 지원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파견 국가의 정보. 자신이 1년간 지내야 할 나라를 선택해야 하다 보니 머리만 맞닿으면 나라 이야기가 시작된다.
‘캄보디아에 가면 야구공만한 망고가 거리에 굴러다닌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매일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던데.’ ‘야, 니들은 밥 먹으러 가냐, 나는 고생 한번 해보려고 라이베리아 지원했어.’ ‘그래도 역시 선진국인 미국이 배울 것은 많지 않을까?’
선배 단원들의 경험담과 여기저기서 들리는 입소문에 따라 파견국의 인기가 치솟기도 하고 며칠 사이에 싸늘해지기도 한다. 국가 당 모집 정원이 초과되어 3:1에서 8:1까지 치솟으며 경쟁률이 치열해진다.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지원한 국가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간혹 이 나라가 아니면 안 된다고 외치는 일편단심 춘향이도 있지만 점수가 낮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메뉴보다 더 많은 80여 곳의 국가 중에서 최종 선택한 파견지는 아프리카의
‘부룬디’. 워크숍 기간 동안 게시판에는 국가별 지원 현황표가 붙어있다. 게시판을 주욱 내려 보던 중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룬디라는 나라가 눈에 들어왔다. 모집 정원 4명에 지원자가 마지막 날까지 0명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지도에서 진땀 깨나 흘린 후에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넓은 아프리카 대륙의 큼직한 국가들 사이에 티끌처럼 끼어 있는, 한국보다 더 작은 나라! 안 그래도 가난한 아프리카에서조차 세 번째로 국민 소득이 적은 나라란다. 게다가 내전소식까지 들렸다. 게시판에 적힌 ‘지원자 0명’이라는 글씨에서 누군가가 간절히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누구든지 어서 오세요. 부룬디에도 봉사단원이 필요해요. 우리를 도와주세요. 부룬디로 오면 특별한 사람이 될 거예요.’ 입에 올려놓고 여러 번 굴려보니 차츰 어감에 익숙해진다. 부룬디? 누가 뭘 부른다고? 시방 엄마가 부룬디? 전라도 사투리 마냥 구수한 나라 이름이 재미있다. 시골 아낙처럼 볼품없이 여겨왔던 부룬디가 수수하지만 단아한 자태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느껴지며 나를 설레게 했다. 부룬디에게 가면 그가 나를 반기며 행복을 선물해줄 것 같았다.


▲ (위) 사진전의 어느 대학생처럼 부룬디에서의 내 표정에도 어느덧 행복과 여유로움이 담긴 웃음이 묻어 나온다.(아래) 작은 공터에 펼쳐진 노점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팔고 있다. 자전거 택시 기사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위) 사진전의 어느 대학생처럼 부룬디에서의 내 표정에도 어느덧 행복과 여유로움이 담긴 웃음이 묻어 나온다.(아래) 작은 공터에 펼쳐진 노점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팔고 있다. 자전거 택시 기사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출국 준비물 체크하기
수료식 이후 출국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부룬디 현지 지부장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해외봉사 선배 단원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준비물을 챙겼다. 사적으로, 공적으로 필요한 물품의 무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목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➊ 청바지, 반바지, 운동복 등 활동하기 편안 옷: 더운 나라에서 필요한 반팔 셔츠와 땀이 잘 마르는 스포츠웨어가 무난하다. 긴팔 옷과 봄 잠바 하나 챙겨두었다. 아프리카라고 늘 덥기만 한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겉옷이 필요하고, 여성들의 경우 너무 짧은 옷은 보수적인 현지인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줄 수 있으니 삼가는 게 좋다.
➋ 얇은 침낭, 담요, 스펀지 매트: 침낭은 필수, 나머지는 선택사항.
➌ 정장, 구두, 샌들, 슬리퍼, 운동화, 한복, 태권도 도복, 정글 모자: 종종 NGO 단체 모임이나 공식적인 자라에 초대되는 경우가 빈번해서 정장도 필요하다. 한복, 도복 등이 새 것일 필요는 없다. 야외 활동이 많아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챙이 있는 모자가 필요하고, 모자 없이 햇볕을 오랫동안 쬐면 어지럼증이 발생한다.
➍ 영어책, 한영성경, 전자사전, 디지털 카메라, 일기장, 스킨, 로션: 영문으로 된 자격증, 국제 학생증 (ISIC), 굿뉴스코 훈련 수료증, 굿뉴스코 단원 카드. 영문 자격증은 무료 아카데미 교실 벽에 붙일 수 있다. 국제학생증을 거의 사용할 일이 없지만 국가별로 유용한 곳도 있다. 

한국에서의 삶이 간단히 가방 하나로 정리됐다. 준비물 중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꼽으라면 샌들과 디지털카메라, 일기장을 꼽겠다. 더운 아프리카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려면 자신의 발에 잘 맞는 샌들 하나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잊지 못할 수많은 추억들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필요하고, 더 자세한 것들은 일기장에 기록하자.  
여기까지는 나의 개인적인 짐이고, 우리의 공동 준비물은 이렇다.

➊ 어린이 교육을 위한 색종이, 색연필, 볼펜, 사인펜, 연필, 공책, 풀, 스케치북, 크레파스, 가위, 칼 등의 문구류
➋ 무료 교실 수업을 위한 축구공, 어린이 바이엘 책, 태권도 교본, 컴퓨터 책, 풍선 등
➌ 먹을 것들 된장, 고추장, 라면 두 박스, 카레 가루, 짜장 가루 등
➍ 인터넷에서 산 500원짜리 충전식 싸구려 손전등 10개
➎ 노트북 4대와 빔 프로젝터 1대. 

노트와 크레파스 같은 문구류는 복지시설과 주변 지인들에게 후원을 받았다. 대부분 좋은 일에 함께하기를 즐거워하며 사용하던 물건들을 아낌없이 기부해주셨다. 노트북 4대는 전자회사에서 마침 아프리카에 컴퓨터를 지원해주었다. 빔 프로젝터도 역시 좋은 일에 사용하라며 지인께서 제공해 주셨다. 출국 전까지 아프리카를 위한 후원금을 받아서 준비해보는 것도 좋다. A4 종이 한 장, 커터 칼 한 자루도 현지에서는 엄청 비싸고 소중한 것이다. 작은 돈도 허투루 사용하지 말고 출발 전부터 해외봉사단원의 마음을 품어보자. 나를 위한 물건은 하나씩 내려놓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위한 물건을 올려놓자. 

 
 

좌충우돌 출국과 도착
2008년 2월 18일, 드디어 인천 공항에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동기들이 모였다. 우간다, 케냐, 르완다, 부룬디 등 다양한 목적지로 떠나는 우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프리카를 위해 이 한 몸 불살라보겠노라며 각오를 단단히 한 멋진 청춘들이었다. 비행 일정은 인천에서 출발해 태국 방콕을 거쳐 케냐 나이로비까지 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다. 그리고 나이로비에서 각 국가 별로 이동한다.
막상 공항에서 만난 동기들의 짐은 다들 엄청났다. 수십 명이 가방을 열고 짐을 정리하느라 장터가 될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기부해주신 선물들을 받아와보니 짐이 무려 106kg! 도저히 갈 수 없는 중량이었다. 숨겨놓은 과자, 입지 않는 옷 등 불필요한 것들을 다시 추려서 버려야만 했다. 급기야 다른 나라 동기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더니 고맙게도 물건을 몇 개씩을 가져가주었다. 특히 해외봉사 훈련 기간 중 나와 같은 반이었던 르완다 동기들이 노트북과 손가방들을 들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티셔츠와 내의를 세 겹씩 껴입고 외투의 주머니라는 주머니에는 모두 묵직한 물건을 집어넣었다. 다른 단원들이 한명 두 명 화물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홀로 남아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겠다 싶어 배웅 나온 동기의 가족에게 가져가지 못하고 포기한 짐의 뒤처리를 부탁하고 일단 출국장으로 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운 무거운 짐에 눌렸다. 양 손에는 마트에서 쓰는 커다란 장바구니를 한 개씩 들고, 수박 두 덩이는 들어있을 법한 빵빵한 배낭과 노트북 가방에 식은 땀까지 흘렸다. 천만다행으로 검사를 끝내고 출국장으로 들어선 나는 20분 남지 않는 이륙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기다리던 동기들과 무조건 달려야 했다. 각자 짐을 나눠 들고 가방을 매고 뛰어 가는데, 내 모자가 벗겨지면서 모자 속에 있던 종이꾸러미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흩어졌다. 입으로 욕을 지껄이며 주섬주섬 주워 들고 다시 달리려는 데 이번엔 배 둘레에 고정해 놓았던 짐들이 바지 속으로 흘러내렸다. 덩달아 허리춤이 헐거워지며 바지가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그날 내 곁에 사랑하는 동기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벗겨지는 바지를 잡고 인천 공항에서 울먹이고 있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를 비롯한 모든 단원들은 비오듯 땀을 흘리며 탑승에 성공했다. 잠시 후면 부룬디에 도착하게 된다. 진짜 해외봉사가 곧 시작된다.

일러스트 | 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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