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reflected in culture 죽음 앞에 나를 세워보는 시간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고, 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더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운명에 대해 우리는 평소 얼마나 깊이 생각하며 사는가? 성균관대학교의 교양수업 <죽음과 문화>는 수강생들에게 죽음이란 순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아가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기회를 마련해 준다.

 
 
10월 31일 오후 1시, <죽음과 문화> 수업을 취재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수원에 있는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이날은 마침 인기가수 신해철의 발인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도 죽음은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죽음과 문화>는 성균관대 내에서도 수강신청하기가 쉽지 않기로 유명한 수업이다. 물론 수강을 원하는 학생들이 몰려서다. 수강생들의 수강 동기도 ‘죽음이라는 단어의 무게감과 신비로움 때문에’ ‘예전 수강생들의 강의평가가 좋아서’ ‘평소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등 다양하다.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배우는 수업
<죽음과 문화>의 역사는 지난 2006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균관대는 학교 내 교양기초교육을 총괄하는 학부대학을 출범시킬 정도로 교양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21세기에는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급증하지만 그 효용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는 만큼 스스로 지식을 창출하고 적용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초대 학부대학장 손동현 박사의 생각이었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강의가 아닌, 생각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심어주는 강의를 기획해 보자는 것.
이에 프랑스어문학과 이찬규 교수는 <죽음과 문화>라는 교양수업을 제안했다. 문화 즉 미술, 영화, 문학 등은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미지의 영역인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다. 이 교수 외에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천현경 교수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강희석 교수가 가세하면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속에 나타난 죽음에 대해 균형 있게 살펴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3인의 교수가 가르치는 팀 티칭인 셈.
처음에는 강의하는 교수들도 ‘수강생들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너무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강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문학이나 영화 속에 나타난 죽음을 통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남기는가 하면, 메일을 보내 ‘수업시간에 다룬 문학작품 외에 관련작품을 더 읽고 싶으니 추천해 다뤄달라’고 부탁하는 학생도 있었다. 꼭 <죽음과 문화> 수업을 듣고 싶다는 학생들의 요구에 힘입어 한때 수강인원을 80명까지 늘린 적도 있지만, 현재 인원은 60명. 그동안 명품강의, 추천 명강의 등으로 선정되었으며, 천현경 교수는 지난 2012년 ‘잘 가르치는 교수상Teaching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명강의로 소개될 조건이 충분하다.

▲ (왼쪽부터)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영화 속 두 여주인공인 매들린(메릴 스트립 분, 왼쪽)과 헬렌(골디 혼 분, 오른쪽)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해 마신다. 그리고 멘빌(브루스 윌리스 분, 가운데)에게도 이 약을 마실 것을 권하는데….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_시한부 인생을 사는 정원(한석규)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보면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 (심은하 분)과의 러브스토리와는 다른, 묘한 여운이 느껴진다.
▲ (왼쪽부터)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영화 속 두 여주인공인 매들린(메릴 스트립 분, 왼쪽)과 헬렌(골디 혼 분, 오른쪽)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해 마신다. 그리고 멘빌(브루스 윌리스 분, 가운데)에게도 이 약을 마실 것을 권하는데….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_시한부 인생을 사는 정원(한석규)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보면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 (심은하 분)과의 러브스토리와는 다른, 묘한 여운이 느껴진다.

전반기: 서양고전과 역사로 짚어보는 죽음의 세계
앞서 소개한 것처럼 <죽음과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팀 티칭으로 강의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래 이 수업을 제안했던 이찬규 교수가 개인사정으로 강연을 하지 않게 되면서 지금은 강희석 교수와 천현경 교수의
2인 체제로 바뀌었다.
중간고사 전까지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는 강희석 교수다. 강의주제는 ‘서양문학과 역사 속에 나타난 죽음’이다.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수메르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고대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 등에 나타난 죽음을 살펴보며 고대인들이 죽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성경>과 <유대전쟁사>를 비롯해 로마사, 중세역사, 근현대사 등도 강의대상이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이름 정도만 듣고 지나갔을 책들이지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수강생들의 말이다. 또 단순히 텍스트만 교재 삼아 수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관련된 삽화나 미술작품, 다큐멘터리 등을 함께 제시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같은 작품은 영화로도 감상하면서 원전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비교분석하기도 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죽음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후 세계는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오뒷세우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등 저승을 체험한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옛날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고,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충족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강희석 교수)

후반기: ‘죽음’이란 틀을 놓고 보면 똑같은 영화도 완전히 다르게 보여
중간고사 이후에는 수업의 배턴이 천현경 교수에게로 넘어간다. 천 교수의 수업주제는 ‘현대사회의 삶과 죽음’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음에 반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 자살, 유가와 도가 등 동양사상에 나타난 죽음관, 존엄사 등이 이에 포함된다.
천현경 교수가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자료의 업데이트로, 강의 때 사용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는 가급적 최신자료를 넣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는 동영상 자료의 선정 및 편집이다. <죽음과 문화>는 매주 금요일 오후 3시~5시 45분에 진행된다. 수업 전반부는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천 교수의 강의로, 후반부는 수업주제에 맞는 영화나 다큐를 함께 시청한다. 가령 수업주제가 자살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를 각종 기사, 통계자료를 통해 짚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후에는 자살을 주제로 한 영화나 다큐, 애니메이션을 함께 시청하며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제 글자만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는 더 이상 힘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외부자극을 수용하는 패턴이 글자 중심에서 영상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영상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천현경 교수)

 
 

이미 봤던 영화들도 ‘죽음’이라는 관점을 갖고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수강생 허정은 씨(경영학과 4학년)는 ‘수업 때 본 영화들 중 <8월의 크리스마스>의 경우, 예전에는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슬펐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이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물론 강연 때 사용하는 영상자료들의 원래 상영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이를 수업시간에 맞춰 50분 내외로 편집하려면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 한다. ‘어디서 어디까지 잘라내야 좋을까?’를 고민하며 같은 장면도 열 번 넘게 되돌려볼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다는 게 천 교수의 말이다.
여기에 다른 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과제들이 추가된다. 학기별로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천 교수가 항상 내는 과제는 ‘죽음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다. 청소년, 청년, 중장년층,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이다. 설문내용은 ‘죽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만약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본인은 알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알려줄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등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수강생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밖에 버킷리스트(죽기 전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 작성하기, 유서 쓰기, 자신의 한 줄 묘비명 작성하기 등이 있다.

죽음 앞에 서 보면 삶의 소중함이 보인다
강희석 교수와 천현경 교수는 수업방향이 전혀 다르다. 강희석 교수의 수업이 고대에서 근현대까지를 연대기식으로 넘나드는 ‘깊이’를 지향했다면, 천 교수의 수업은 서적, 논문, 언론기사,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 등을 폭넓게 망라하는 ‘넓이’를 지향한다.
수업 스타일도 전혀 다르다. ‘강 교수님은 서양고전과 문화 전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곤조곤 해설하듯 풀어 전하는 선비 스타일이다. 반면 천 교수님은 밝고 낭랑한 목소리로 강의를 이끌며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성우 또는 동화구연가 스타일이다’라는 게 한 수강생의 귀띔이다. 두 교수의 스타일이 워낙 다르다 보니 중간고사 이후 바뀐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아예 새로운 수업을 듣는 기분마저 든단다.
그러나 두 교수가 <죽음과 문화>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문화라는 친근하고 일상적인 통로를 통해서 학생들이 죽음이라는 주제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 것.
“라틴어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로 번역되기에 어떤 쾌락이나 즐거움을 좇으라는 의미라 잘못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번역은 ‘오늘을 잡아라’입니다.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죽음과 문화> 수업을 통해서 한 번뿐인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되새겼으면 합니다.”(강희석 교수)
천현경 교수 또한 <죽음과 문화>는 준비하느라 신경 쓸 것이 많은 만큼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며 겪는 변화의 폭도 커 보람된 수업이라고 말한다.

 
 

“한 학기를 마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얻어 유익했다’고 말합니다. 한번은 어느 학생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결국은 죽는 인생인데 이렇게 아득바득 살아서 뭐하겠어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3주 동안 결석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는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역시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돌아왔어요. 고마웠고 참으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죠.”(천현경 교수)
<죽음과 문화> 수업 취재를 마치고 캠퍼스를 나서면서 한 청년이 떠올랐다. 그는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반역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사형대에 올랐다. 죽기 전 그에게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그 5분을 썼다. 그리고 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멀리서 누군가가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왔다. 청년에게 사면령이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죽음 직전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청년은 그때 그 마지막 5분을 떠올리며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청년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등 불후의 명작을 여럿 남긴 대문호였다. 청춘은 혈기가 왕성한 만큼 마음이 자칫 방탕한 쪽으로 흘러가기도 쉬운 때다. 한번쯤 죽음 앞에 서 본다면 이는 보다 값진 인생을 사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글 | 김성훈 기자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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