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경주의 <독讀한 습관> 강연

김경주 시인은 교수직을 그만뒀다. 책을 읽는 방식, 습관, 소통하는 방법에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국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시를 쓰고, 연극을 통해 소리를 내는 현장으로 돌아갔다. 제도권 밖에서 시 본유의 문학적 향유를 느끼고 소리 내서 읽으며 책의 호흡을 불러일으키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책을 소리를 내어 읽어보라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시를 가장 많이 씁니다. 시집이 가장 많이 출판되는 곳도 한국입니다. 하지만 시를 가장 안 읽는 국민이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시집이 제일 싼 나라 역시 한국이죠. 외국에서 보면 이런 광경이 참으로 기하학적으로 비칠 겁니다. 시는 모국어의 속살이 가장 예민하게 담겨있는 장르지만 꼭 시에 한정짓지 않고 책을 읽으셔도 됩니다.
포털로 익숙해져 있는 뉴스 화제, 사람들이 그 화제에만 자꾸 익숙해지면서 화제 안에 있는 문제의식을 끌어낼 만한 운동능력을 잃어버렸어요. 여러분들이 스마트 폰 사용으로 감각이 더 발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정서는 거의 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감정을 아끼라고 조언해요.

나무의 DNA가 살아있는 종이 책의 가치
나무 한그루를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방식은 책읽기가 포함되어 있어요. 나무의 DNA가 살아있는 거죠. 책을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나무의 DNA와 교감을 나누 것이죠. 그 과정이 중요한 인문적인 본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나무가 있어야 사람도 사는 데 이것은 공존의 개념이죠. 저는 공해가 되는 책을 내지 말자 그런 생각해요. 가능하면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 제 책을 세 장만 봐도 잠이 들 수 있도록, 무의식과 잠의 세계로 데려갈 수 있는 책을 쓰려고 해요. 제 책을 약국에서 수면제 대신 매대에 놓고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나무 유전자가 녹아있는 책을 통해 활자를 익히고 마치 점자처럼 책을 만지는 과정에서 모국어와 친해지는 거죠. 요즘 모국어가 너무 많이 상실되고 있어요. 여러분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책을 한 권 써보라고 권합니다.
종이책이 거의 사라지고 디지털 감수성의 세계에서 활자를 통해 지식과 교양을 습득하면 우리의 DNA도 변한다고 해요. 제 아내는 특수교육을 담당하는데 자폐아동이나 지진아동과 같이 어린 친구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디지털 감수성으로 인해 신종장애가 생기고 있다고 하는데, 5살 된 아이가 말은 전혀 못하는데 기계를 엄청 잘 다룬다고 해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지만 ‘엄마 아빠’를 못하는 거예요. 똫
스마트 폰만 펼치면 나라 간의 전쟁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상실의 시대라고 할 만큼 게임하듯이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감각들이 횡행하고 있어요. 다양한 상실들이 주변에 만연해 있죠.
스마트 폰을 달리 말하면 우리의 치매를 가속화시키는 것이죠. 우리가 기억할 게 점점 없어지잖아요. 우리가 현기증을 앓거나 멀미를 앓으면서 건너가야 할 수많은 순간들을 기계가 전부 대신해주고 있는 거죠.

 
 

책 한 권이 인생의 길이 되다
제가 어릴 때 책을 좋아했지만 왕성한 미식가처럼 독서에 대한 욕구가 있었거나 독서광이라고 불릴 만한 습관을 가진 적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 늘 복도로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 책 읽기에 매혹됐어요. 저자가 만든 호흡을 받아들인 겁니다. 마치 노래방에 가서 가요를 따라 부를 때 눈으로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르기만 해도 느낌이 살죠. 그처럼 소리 내어 다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부여해놓은 호흡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단순히 눈으로 보는 독서는 작가가 주고자 하는 온전한 체험과 질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전공이 철학이라 빈둥빈둥 놀며 학교를 다녔지만 좋아하는 철학자의 책을 백일몽을 꿈꾸듯이 소리 내서 읽곤 했어요. 시나 희곡이 아니더라도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은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담긴 상상력을 포기하지 마세요.

군 시절에 저는 친구들에게 군 생활을 따분하게 보내지 않을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친구들이 장승남 시인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란 시집을 추천해주었습니다. 추리소설이나 재미있는 소설은 고참에게 빼앗기는데 이 시집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고참도 ‘너나 봐라’ 하고 던지더라고요. 제대할 때까지 시집을 보았는데, 지금까지 토시 하나하나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에 낭독 운동을 시작하면서 낭송과 낭독을 구별하자는 경계에서 출발했어요. 노래 배우듯이 시를 소리 내서 많이 읽고 음미해보세요. 요즘에는 입금, 수증기 이런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물방울이란 느낌이 시 같기도 하고 우리의 삶의 흔적 같기도 하죠.

어떤 새도 인간의 상상력보다 높이 날 수 없다
시인이 시를 고를 때 건축학적인 상상력으로 설계하는 느낌으로 접근하죠. 시를 한편 쓰는 것을 방을 꾸미는 것으로, 시집을 묶는 것은 집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내 집에 사람을 초대했을 때 다락방도 있고 욕실도 있어야 하고 거실, 서재도 있어야 하듯이 많은 방들이 있어서 시인이 안내하는 산책코스처럼 되어 있어요. 처음 시집을 열었는데, 나를 당겼다는 느낌이 들면 괜찮은 거예요. 이렇듯 독서를 통해서 매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책 한 페이지를 읽는다는 것은 한 페이지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죠. 어떤 새도 인간의 상상력보다 높이 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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