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하면 왠지 흰 가운을 입고 많은 학업과 실습에 지쳐 예민하면서도 차가울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의대생들이 모여 만든 자살예방 동아리 메디키퍼 회원들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살 예방을 위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대응하는 이들이 있어 캠퍼스의 미래는 밝다.

▲ (왼쪽부터) 서상훈(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장건영(건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최문영(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최지은(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박용만 대표(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류수정(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 (왼쪽부터) 서상훈(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장건영(건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최문영(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최지은(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박용만 대표(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류수정(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메디키퍼Medikeeper는 메디컬Medical과 게이트키퍼Gatekeeper(자살 위험 대상자를 발견해 전문기관의 상담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이들의 자살 시도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의 합성어로, 경희대학교 의료전문대학원 3학년 최대규 씨가 자살예방 활동을 펼치고자 창립한 단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그들은 몸이 아프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들어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기 때문에,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의사가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채고 그 부분을 풀어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11년 11월,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을 회원으로 모집하며 메디키퍼 활동이 시작됐다.

서로를 향해 관심을 가져요!
메디키퍼 회원 대부분은 자살을 예방하고 싶거나, 자신 주변에 자살로 돌아가신 분이 있거나, 자신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동참한 경우가 많다. 
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최문영 씨는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학생 신분인 자신이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몰랐다. 그러던 중 때마침 선배로부터 메디키퍼 미디어국을 소개받았다.
“메디키퍼 미디어국에서는 메디키퍼 홍보 영상과 교육 자료 영상을 만들어요. 자살예방 UCC 공모전에 참여해 수상도 했어요. 제가 영상을 만들 줄 알기 때문에 이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경제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대부분 바쁘고 각박하게 살아요. 학생은 수능에, 어른은 직장에 인생이 걸려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정신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서상훈 씨 또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흘러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메디키퍼는 자살이라는 사회문제에 대응하고 이를 예방하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메디키퍼의 설립 자체가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을 반영해 줍니다. 요즘은 성적이나 돈이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화와 공감의 중요성
메디키퍼 회원은 1기 200명으로 시작해 2기는 260명으로 상당히 많은 인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먼저 자살고위험군을 전문 상담사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전문가에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이 약해보이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전문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같이 가겠다’고 하며 전문가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주죠.”
또한, 일반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 찾아가 게이트키퍼 교육을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징후들을 나타내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말해줘야 되는지 등을 교육한다.
“자살 징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 ‘혹시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어요?’라고 물어보고 대화해서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말릴 수 있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나누어 주거나, SNS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등 여러 가지 징후가 있어요.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메디키퍼의 목표죠. 실제 주변에 자살한 분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서 말리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알면 예방할 수 있어요.”
이렇게 메디키퍼 회원들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또 위로하고 격려해주면 마음에 담아둔 것이 풀릴 수 있는데, 혼자만 속으로 앓고 마음의 병을 점점 키우기 때문에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자살이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이 생기면 진솔하게 표현하고, 또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붙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진심을 다해 환자와 마음을 나누는 의사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 의사는 단순히 환자의 증상만 듣고 진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왜 아픈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메디키퍼 회원들은 단순히 질병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대화와 공감을 통해 마음까지 치료하는 진정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서상훈 씨도 우울증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경험을 통해 환자와의 대화가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울증 환자가 눈물을 흘리며 제게 의사 선생님이나 교수님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어요. 그 후에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내려갔다고 하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주변에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마음을 털어놓으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우울증이 치료된다고 해요. 의사가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어요.” 
행복은 마음을 나누며 형성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에 초점을 맞추어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고, 환자와 마음을 나누는 의사! 이들은 분명 행복한 의사가 될 행복한 의대생들이다.
행복한 방법, 마음 털어놓기
메디키퍼에는 자살과 행복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내가 먼저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든 ‘행복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학업 경쟁이 심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의대생들도 자살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먼저 메디키퍼 회원들끼리 고민 상담을 해주고, 도움 되는 학습법과 스트레스 해소법 등도 요청하여 공유하고 있다. 메디키퍼 활동을 통해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많이 생각했다는 대표 박용만 씨는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도 고등학생 때는 성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제 마음을 가족에게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저의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힘든 시점을 만나는데, ‘나만 힘들 거야’ ‘저 사람은 공감 못할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거죠.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찾고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이제 쉽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장소협조 | 오설록티하우스 홍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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