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지혜를 곱씹어보자!

2~3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한 <삼국지>는, 한漢나라 말기의 혼란한 시대를 거치면서 탄생한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가 천하통일을 노리며 힘과 지혜를 겨루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혼란의 연속이던 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사마염이 건국한 진晉나라였다. 그 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마염의 할아버지 사마의였다. 따라서 사마의가 사실상 <삼국지>의 최후승자라고 하겠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난세를 그가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중국 고전의 최고봉 삼국지三國志,
그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는 서기 179년 경조윤(京兆尹,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사마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형제 모두 재주가 뛰어났지만, 특히 사마의는 어려서부터 경전과 병서에 통달했고, 생각의 깊이도 남달랐다. 그런 사마의를 눈여겨 본 것이 조조였다. 훌륭한 인재는 기필코 수하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조조는 사마의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지만,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거절했다. 의심이 많아 인재를 후대하지만 신뢰하지는 않는 조조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조가 주변 군벌들을 무찌르고 대륙의 최강자로 떠오르면서 더는 그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조조의 부하가 된 사마의는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일 처리에 빈틈이 없었고, 군사를 부리는 데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조조는 그런 사마의를 경계해 실권과 거리가 먼, 관리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맡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의는 묵묵히 일에 충실하며 순욱·순유·가후 등 기라성 같은 조조의 책사들을 롤모델 삼아 학문에 정진할 뿐이었다.

불세출의 지략가 제갈량마저 꺾은 인내
그 후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조조 때문에 사마의는 계속 평범한 직책만을 전전했다. 그러던 사마의가 권력의 중심부에 등장한 것은 조조의 장남인 조비의 스승이 되면서부터였다. 사마의는 여러 번 기지를 발휘해 조비가 조조의 시험을 통과하고 후계자로 책봉되는 데 기여했다. 조조가 죽고 위왕이 된 조비는 한의 헌제로부터 제위까지 넘겨받았지만, 6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뒤이어 황제가 된 조예는 사마의를 대장군에 임명했고, 사마의는 변방인 옹주와 양주에서 병마를 훈련시키는 데 몰두했다. 언젠가 촉의 제갈량이 이곳을 지나 위로 침공할 것을 예상해서였다. 이에 제갈량은 위에 첩자들을 보내 ‘사마의가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은 곧장 조예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조예는 그를 파면시켰다.
사마의가 제거되기만을 기다리던 제갈량은 즉각 대군을 일으켜 위나라로 쳐들어왔고, 사마의가 없는 위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그제야 제갈량의 계략을 알아챈 조예는  사마의를 불러들였다. 제갈량과 몇 번 싸워 패한 사마의는 자신이 제갈량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인정하고 수비에만 치중할 뿐 맞서 싸우지 않았다. 이기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었다.
병력과 물자가 부족해 어떻게든 빨리 싸움을 끝내야 하는 제갈량은 초조해졌다. 급기야 여자 옷과 머리두건을 편지와 함께 보내 사마의를 자극했다. ‘너는 대장군임에도 싸우기를 두려워하고, 진지에만 틀어박혀 칼과 화살을 피하니 싸움을 두려워하는 아낙네와 다를 바 없다. 여자의 옷과 두건을 보내니 두 번 절하고 공손히 받거나, 혹 대장부의 기개가 있다면 돌려보내고 싸움터로 나오라.’
때 아닌 모욕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사마의는 당장이라도 군사를 일으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제갈량이 이토록 승부를 내고 싶어하는 건, 장기전이 촉에게 불리하다는 증거 아닌가?’ 사마의는 계속 지구전을 폈고, 결국 제갈량이 지병인 폐렴의 악화로 숨을 거두면서 승리는 사마의의 것이 되었다. 인내하고 자중하는 것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를 누른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일생일대의 마지막 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시련 속에서 마침내 온 역전의 기회
몇 년 후 황제 조예가 요절하면서 사마의의 인생에는 또 한 번 폭풍이 불어닥쳤다. 죽기 전 조예는 사마의와 황족인 조상을 불러 여덟 살에 불과한 태자를 잘 보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조상은 당부를 잊고 아첨하는 무리를 가까이하며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조정에 추종자도 많은 사마의는 그에게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평생 사심없이 나라만을 위해 일했건만….’ 자신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눈치챈 사마의는 상심했고 중풍에 걸려 몸져눕게 되었다. 그럼에도 조상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복부하를 사마의의 집에 보내 그의 병세를 염탐케 했다. 심복이 보니 사마의는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탕약도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많은 것이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조상은 사마의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조상은 황제와 문무백관을 데리고 도성 밖 조예의 묘로 참배를 갔다. 그때 누구도 생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병석에 누워 오늘내일하던 사마의가 별안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옛 부하들과 사병들을 이끌고 황궁, 성문, 무기고 등 요충지를 단숨에 장악해 버렸다. 그동안 앓아누웠던 것은 사마의의 완벽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사마의는 황제의 어머니 곽태후로부터 조상을 벌하라는 조서를 받아 그를 처형했고, 명실상부한 위나라 일인자에 올랐다. 사마의의 차남 사마소가 촉을, 손자 사마염이 오를 멸하니 천하통일의 대업은 사마 가문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대의 기재奇才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던 사마의의 지혜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의 작은 단점은 크게 여기면서도 정작 장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반대로 자신의 단점은 작게, 장점은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여긴다. 사마의는 달랐다. 상대의 뛰어남과 자신의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하면서,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분명히 가려 행동했다. 때로는 적에게 마음의 틈을 주기 위해 10년이나 거짓병자 행세를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철저한 자기통제의 마인드가 사마의를 난세의 최후승자로 우뚝 세운 것이다.

일러스트 | 이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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