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계간지로 출발해서 격월호, 그리고 월간지로 변화하면서 이번 10월호까지 총 80개의 표지가 나왔다. 모델은 모두 해외봉사를 다녀온 대학생들의 밝고 힘찬 얼굴들로 채워졌다. 봉사를 갓 마치고 오면서 설레고 희망에 부풀었던 꿈들이 현재 어떻게 성장했는지 다음 질문 세 개로 들어보자. 1. 지금 무엇을 하고 살고 있나요? 대학시절 가졌던 꿈은 어떻게 진행중입니까?2. 해외봉사 경험에서 현재 꿈을 이루는 일에 어떤 힘을 얻고 있나요?3. 독자들에게 꿈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행복!2011년
유럽으로 해외봉사를 온 지 6개월이 흘렀을 때 드디어 때가 왔다. 바로 무전여행! 여행을 앞 두고 우리는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다. ‘어떡하지? 이곳은 내게 익숙한 한국도 아닌 독일인데. 냉정하고 차갑다는 유럽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정말 한 달 동안 무전여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길을 따라 가는데, 신기하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도와주었다. 우리의 봉사활동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한 끼도 굶지 않았으며 잠자리가 없어서 길거리에서 자는 적 없
대학생 때, IQ가 156점 이상이 나온 나는 내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보다 나 자신을 제일 믿었다. 그랬던 내가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겸손’을 배워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전 세계 1%에 해당하는 수재였기에 나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있었다중국에 가기 전 나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었다. 이름하여 ‘자만병’ 말기였다. 정신없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해 토론과 발표시간을 갖는데, 내가 주변 학생들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나는 지금 우간다에 파견나온 선교사다. 온 지 얼마 안되어서 아직 이 곳에서의 삶이 낯설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중심인 강남에 살던 나에게 익숙한 초등학교의 풍경은 한반에 2,30명 되는 학생들, 자료화면을 볼 수 있는 최신식 TV, 분필가루는 찾아볼 수 없는 화이트보드 등이 있는 교실이었다. 하지만 우간다의 초등학교는 교실을 가득 채운 밤톨머리 학생들, 책걸상도 제대로 못 갖춘 채 바닥에 앉은 학생들,하도 많이 써서 분필 글씨가 보이지 않는 칠판만이 있을 따름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
꿀같은 여름방학에 한국 대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떡볶이와 호떡을 팔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아프리카에 가서 한국 음식을 팔고 있는 걸까요?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1년을 보낸 학생들은 자기가 다녀온 나라를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복잡하고 답답한, 돌파구가 없는 일상을 지내며 제2의 고향이 된 자신의 파견국을 그리워합니다.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며 해외봉사활동 후유증을 겪던 학생들이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특별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2년 전 나이지리아에 봉사단으로 다녀온 후, 별식당 사장님이 되어 아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으로 가득하다. 각자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 바쁜 각박한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드림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양동섭 씨가 진로와 취업으로 고민하고 있을 대학생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취업 준비생 중 과반수가 대기업 취업을 꿈꾼다고 답했다. 높은 연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도 취업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취직을 할 나이가 되어 주변 분들의 조언을 듣고 대구쪽
부모님의 불화와 아버지와의 관계 악화,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 등 내 인생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무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해외봉사단으로 날아간 인도에서, 어려운 문제는 나눌수록 가벼워지고 부딪힐수록 성장한다는 걸 배웠다. 밝게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 속에 품어왔던 소망이 있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불화가 있었다.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돌아와 집에 머물 때면 어머니를 괴롭히고, 때리는 일
아프리카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꿈을 꾸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들에게 굿뉴스코 봉사단원들이 찾아갔다. 가위바위보부터 종이접기, 태권도 등을 배우면서 미래를 향해 소망을 품는 아이들. 그 모습을 한 여행자가 담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중 하나인 바오밥나무.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뽐내던 바오밥나무는 저주를 받아 거꾸로 처박혔지만온몸을 찢어 비를 흡수해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그것처럼 저주를 받은 것 같았던 말라위.굿뉴스코를 통해 다시 생명을 얻고 있다.★
스페인과 가장 가까운 중남미 나라라는 지리적 이유 때문에 카리브해의 해적들은 푸에르토리코에 입항하는 보물선들을 약탈하곤 했다. ‘로베르토 코프레시’라는 유명한 해적은 푸에르토리코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그때 얻은 보물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 전설적 인물로 남아 있다. 로베르토 코프레시의 전설은 독립운동 및 스페인에 대한 대항 정신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보물이 묻힌 동굴, 해변 등 여러 장소는 코프레시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대항해시대 때 많은 배들이 오가던 카리브해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곳, 푸에르토리코에 숨겨진 보물 같은 자연
아버지, 아프리카에 온 지 여러 달이 지났어요. 이곳에 많은 사람들은 물이 없어 누런 우물을 마시고 비가 오면 빗물을 받기 위해 큰 대야를 밖에 내놓아요.그 비마저 오지 않아 더워서 잠이 오지 않을 땐 모기장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밤하늘 아래 잠을 자려고 누우면 별들이 어찌나 많은지 꼭 별들이 모여서 흐르는 강 같아요.말라리아에도 몇 번 걸려봤어요. 열이 나고 설사하고 토하고 어찌나 아프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말라리아,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에요. 그런데도 아프리카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죽어가요. 한국 사람
게임중독자였던 대학생 유현우 씨는 스와질란드에 해외봉사를 와서 현지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인기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자존감이 낮고 매사에 부정적이던 대학생 금사라 씨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행복을 주는 ‘사라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와질란드의 청소년들은 두 사람을 보며 선생님이 되겠다는 행복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정형편은 어려워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두세 시간 걸리는 거리도 즐거운 마음에 달려와 아카데미에 참석합니다. 이들을 돕는 데는 거창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커피 한 잔, 한 끼 외식비를
모두가 입사하길 원하는 대기업에 1년 간 휴직계를 내고 부르키나파소라는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진 이은실 씨. 아프리카에서 마주한 세상은 그녀를 더 강인한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순두부 마인드를 가진 그녀가 해외봉사를 통해 어떻게 벽돌 같은 마인드를 갖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중학교 시절,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 일만으로도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주변 친구들까지 나를 무시하고 ‘왕따’를 시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이 컸다. 이후로 나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웃으며 지냈지만, 내면의
이상훈 씨가 일 년 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왔다고 해서 눈에 띄게 말수가 늘어나고, 갑자기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위하시는지. 상훈 씨는 이제 아버지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나에겐 세 명의 어머니가 계시다. 낳아주신 어머니, 길러주신 어머니, 마지막으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어머니. 어렸을 적,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게임에 빠져 학교를 빠지는 날도 빈번했고, 내 마음대로 살았다.그러던 어느 날,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자라 매사에 부정적이던 여학생이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품었습니다. 스와질란드의 꿈나무 네띠소 역시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겠다네요. 금사라 씨와 스와질란드 친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많이 응원해 주세요. 비하하는 말을 들어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저는 태어날 때부터 참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과외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니며 좋은 가방, 귀여운 학용품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축구선수 드록바의 조국으로 알려진 코트디부아르.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의 삶에 대한 열정도 강렬하다. 내전의 아픔을 겪었지만 순수한 국민성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으로 빛나는 나라로 함께 떠나보자. 아프리카의 로망 코트디부아르 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로는 Cote d’Ivoire, 영어로는 Ivory Coast로 상아 해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고 수도는 두 곳으로, 경제수도인 아비장Abijan과 정치수도인 야무수쿠로Yamoussoukro가 있다. 189
브룬디달빛 아래에서 부르는 콧노래에 가까워지는 사람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하루에 1시간, 길면 4시간. 건기인 6~8월 사이에는 하루에 30분만 전기를 쓸 수 있을 때도 있다. 아무리 좋은 전자제품을 가지고 있어도 전기가 부족하니 무용지물일 뿐이다. 부룬디에 온 지 넉 달이 지난 요즘은 전기가 끊어졌을 때가 오히려 익숙하다. 환하게 보름달이 떠오른 날, 달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콧노래를 부르는 이들.그 달빛 아래에서 설거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전기도, 휘발유도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만은 넉넉해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부룬디 사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간 단원들이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에 자신을 돌아보며 주위 사람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행복한 젊은이가 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걸어가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해외봉사 포스터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해맑게 웃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는 내 마음에 새로운 도전정신을 불어넣었다.봉사활동을 가기 전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매진한다. 중요한
나는 지난해 아프리카 잠비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지금은 복학해 학교생활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잠비아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볼 때면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길을 가다 아프리카 사람이 보이면 잠비아에서 사귄 현지 친구들 생각이 절로 난다. 상대의 마음 살피는 법을 가르쳐준 ‘심바 자매’잠비아에 간 나는 현지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 교실을 시작했다. 학생은 8명 정도였는데, 다들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도 잘 몰라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했다. 그 중 여학생 둘은 쌍둥이였는데, 나는 그들을 ‘심바 자매’라고 불렀다.수업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 학교보다 PC방에서 보내던 유현우 씨. 그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결정한 건 스와질란드에서 1년간의 해외봉사였습니다. 꿈도 소망도 없이 방황하고 있는 스와질란드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 아카데미를 시작하자 신기하게 게임기로나 쓰였던 컴퓨터가 꿈과 희망을 선물해주는 훌륭한 도구로 변했습니다. 현우와 스와질란드 학생들의 행복한 꿈을 위해 함께해주세요. 내 인생의 전환점, 해외봉사!한국의 내 방이 아닌 아프리카 시골에서 맞이하는 아침, 눈 앞에 펼쳐지는 초록빛 스와질란드의 아름다운 풍경, 가난하지만 웃는 얼굴로
포르투갈달콤 바삭한 에그타르트 같은 포르투갈에서의 하루하루코리아캠프를 하기 위해 독일, 스페인에 이어 포르투갈로 향했다. ‘거리홍보 몸치’지만 이 시간만큼은 댄싱퀸이자 가수가 된 느낌!!! 건전댄스팀 라이쳐스스타즈의 댄스와 아프리카 아카펠라, 그리고 아리랑을 불렀는데 사람들이 어디에서 온 팀이냐고 묻기도 하며 관심을 많이 보였다. 자원봉사자로 신청한 포르투갈 학생 샤이니스와 까탈레나는 한국 전통놀이와 음식, 공연 등을 준비했다. 캠프가 마치고 정이 많은 포르투갈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섭섭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맘이 진짜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