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봐도 수학은 어렵다고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이 부담이 사람의 사고를 멈추게 합니다. 수학이란 말만 들어도 사고를 멈추고 더 이상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 이른바 ‘수포자’가 되는 겁니다. 수학책에 손을 대지도 않습니다.신기한 것은 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학생들도 똑같다는 겁니다. 저는 해외봉사단으로 탄자니아에 가서 시골마을에서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탄자니아 시골 학교는 정말 환경이 열악합니다. 학교에 등록된 학
영어에 ‘You are what you eat’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의미다. 당연한 이야기다. 음식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연료이자 인체 각 기관을 구성하는 재료 아닌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음식으로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당연히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최근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생식이나 자연식을 실천하는 현대인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방증이다.필자는 이 말을 살짝 바꿔 ‘You are what you hear내가 듣는 소리가 나를 만든다’라
‘원, 투, 쓰리, 포. 다시 원, 투, 쓰리, 포….’ 동작 하나하나가 박자와 잘 맞는지 수없이 체크하며 거울 속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손끝과 발끝의 각도를 맞추고, 호흡조차 짜여진 계산속에 들이쉬고 내쉰다. 무대에 선다는 설레임과 긴장감, 그 부담을 이겨내고 공연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과 무대를 보며 기뻐하는 관중들을 보며 느껴지는 행복감…. 무대는 수많은 감정을 내포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와 함께 때론 기뻐하고, 때론 슬퍼하며 위안을 받거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관중 앞에서 작품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서 겪은 첫 학기 때의 일이다. 첫 수업 때는 수업내용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두 달 정도 그날그날 수업을 녹음해 복습하고, 꼼꼼히 예습도 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다. 덕분에 점점 수업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공부에 자신감을 붙여 나갔다.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대학에서의 첫 번째 과제의 주제가 발표되었다. 행정법 수업 과제로,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지금까지 쏟은 노력의 결실을 드디어 볼 수 있겠다’는 기대로 매일 도서관에서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하며 온 정성을 쏟아 과
차하 김명진사람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슈퍼맨’이었다. 아버지는 못 하는 게 없었고, 누구보다 가정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면 반드시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의 모습은 변치 않았고, 아버지를 친구처럼 생각한 나는 누구에게나 ‘우리 아버지는 최고’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그런데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마음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고 귀찮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춘기였던 탓인지 아버지 말씀이 잔소리로 들렸고, 가족보다
내가 ‘서당도’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미술시간 때였다.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빵’ 웃음보가 터졌다. 글을 제대로 외지 못해 훈장님께 매를 맞고 울먹이는 학동. 그런 친구를 보며 ‘쌤통이다’ 하는 표정으로 익살스런 미소를 짓는 다른 학동들이 잘 대비되어서였다. 반면 훈장님은 찌푸린 표정에 안색이 어두운 것이 아무래도 제자가 공부를 해오지 않은 게 못내 언짢으신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매를 써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여럿 계셨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싸리
제자 | 안경훈 은사 | 서인보 선생님(고3 담임)그림을 혼자서 그리기 시작한 지 어느새 8년이 지났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업을 뒤로하고 무작정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들이 나에게 그림을 그리더라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림만 잘 그리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았고 선생님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선생님들은 때때로 나를 교무실로 불러서 진로에 대해 물으시며 조언을 해주시려 하셨다. 그러면 나는 나름대로 배워 쌓은 지식을 동
제자 | 김동혁 은사 | 남명현 선생님(중1 담임)나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말썽쟁이였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건 기본이고 선생님들께 언성을 높여 거칠게 반항하고 화가 날 때는 책상을 뒤엎거나 물건을 던지며 마구 행동했다. 선생님들이 혼을 내셨지만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무시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를 포기하셨고 나는 선생님을 ‘훈계와 체벌을 하는 어른’으로 여기며 멀리했다.그런데 남명현 선생님은 좀 특별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한번은 화를
5월 15일. 친구들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사들고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한다. 나에게는 고마운 선생님이 없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요즘 들어 문득문득 나를 꾸짖으며 쓴소리를 해주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선생님이 붙잡아 주셔서 졸업도 하고 대학에도 올 수 있었던 거구나!’ 친구들처럼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은데 막상 선생님을 찾아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취업도 못하고 해놓은 것도 없는데…. 나를 기억하시기나 할까?’는 모든 제자들께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권합니다. 그 시절 여러분의 미래에 대해 가장
글 | 김지수 은사 | 황정금 선생님(고3 담임)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황정금 선생님은 컴퓨터 그래픽 과목을 가르치셨는데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젊은 분이었다.진학할 대학을 정하기 위해 상담이 한창일 때였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전날 우리 아버지를 만나 상담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맞느냐고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셨다. 상담을 하던 중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관계가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새아버지라고 말씀드렸고 가족에게 있었던 일과 힘들었던 점 등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내
“은국아, 아빠는 그때 다 용서했단다”차하 강은국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저희 집은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가질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누나와 함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계속 보다보니 지루했는데, 문득 엉뚱하게도 담배 생각이 났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건 뭐든지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저는 담배를 한번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담배를 피는 사람이 없었기에 담배가 없어 빨대라도 물며 담배 피는 흉내를 내
그날의 노랫소리차상 백이슬그해 가을, 나는 미국 뉴욕에 위치한 음악원 연습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음악을 전공한 나에게 연습실은 집같이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연습실 공기가 겨울바람보다 차가웠다. 한참 연습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왼손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서 연습을 중단했다. 혼자 있던 연습실에서 누군가 내 왼손을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얼른 다시 악기를 잡았고, 연습을 시도하다가 결국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악기를 무릎에 내려놓고 앉아 왼손을 품 안에 넣고 한참동안 악기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투머로우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마음쓰기가 열렸습니다. 더 크고, 멋지고, 화려한 것을 좇는 삶이 일상이 된 시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가치나 중요성은 외면받기 쉬운데요. 마음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보고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응모자들의 한결같은 소감이었습니다. 응모하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장원 이은혜, 차상 백이슬, 차하 강은국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올해 마음쓰기 콘테스트에도 100명 넘는 독자들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매일매일 한 가지씩, 한 달이면 31가지 맛을 볼 수 있
겨울철 일산화탄소 중독사고‘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 혼수상태에 빠짐’, ‘연탄가스로 노부부 사망’ 필자가 어렸을 때 겨울철마다 접하던 뉴스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많았다. 이웃집 아저씨가 연탄아궁이에서 방으로 역류한 연탄가스를 마시고 쓰러져 병원에 업혀가는 장면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하룻밤 새에 연탄가스로 가족과 이웃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아침에 만나 하는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어요?”였을 정도. 겨울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구들장을 점검하고 연통을 수리하느라 분주했다.요즘은 연탄 쓰는 집이 현저히 줄고
카타콤은 2세기,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묘지로 쓰던 지하동굴이다.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카타콤이 이 시대 서울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내가 지낸 자취방이다.나는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친구 3명과 함께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 내 방의 모습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필라멘트가 다 타버려 어두침침한 형광등, 벽걸이에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옷가지들, 구석구석 피어있는 곰팡이와 거미줄, 언제 세탁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땀내 나는 이불…. 나와 친구들은 이런 방이 좋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해도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하려면 왠지 어색하고 쉽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세요’ 했더니 대학생 두 분과 군복무 중인 아들을 둔 아버님 한 분이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무뚝뚝하고 감성도 부족한 분인데,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무엇 때문에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냐’고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몇 가지 이유는 있다.아버지는
문경에 사는 네 아이의 아버지 서상천 씨가 지난 추석 연휴에 두 아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놀이공원에 데려갈까, 아니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어 즐겁게 해줄까?’ 아들을 사랑하기에 고난과 역경부터 맛보게 해주고 싶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4박 5일간 자전거를 타고 633km를 달리는 국토종주를 선택했습니다. 서상천 씨가 도전을 시작하게 된 사연과 두 아들과의 여행이야기를 담았습니다.꿈을 안고 떠나는 자전거 국토 종주 4박 5일나는 아들 둘 딸 둘이 있는 가정의 가장이다. 어렸을 때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볼 때면, 나는 자신 있게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사실 나는 영화를 사랑하긴 하지만 영화 제작에 있어 발군의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러한 내가 이렇게 큰 꿈을 꾸고 다른 사람에게 내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로 ‘4차원 세계를 보는 시각’으로 말이다.4차원 세계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알려져 있다. 간단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시공
앨버트로스는 자신의 몸의 세 배나 되는 거대한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활공하며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에서 보낸다. 그 어떤 새보다 높고 먼 곳까지 여행하는 앨버트로스에게 험난한 산, 폭풍 치는 바다,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은 아무런 장애물이 될 수 없다.인류는 오래 전부터 하늘을 동경하며 새처럼 자유롭게 날기를 꿈꾸어 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미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날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런데 1903년에 와서야 라이트 형제에 의해 꿈이 이루어졌다. 라이트 형제
명태가 황태가 되었다. 명태를 그냥 말린다고다 황태가 되는 게 아니다. 추운 겨울 산기슭에나무 건조대를 만들어 잡은 명태를 널어놓는다. 중요한 건 꼭 눈이 와야 한다.눈이 오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누렇게 숙성된 황태가 만들어진다.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지나온 것처럼추운 날 마시는 황탯국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속을 풀어준다.인생의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이 당장은 싫고 힘들어 보이지만그것들을 통해 깊어진 마음은 밍밍한 맛이 아닌 깊고시원한 황탯국 맛처럼 인생을 진하게 만들어준다. 글과 그림 | 최웅렬그를 만나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