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자녀를 낳아 키우는 다문화 가정이 광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집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많을까 싶었다. 동시에 다섯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삶에 피곤이 서려 있겠다 싶은 안쓰러움도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 주인공 손미숙 씨를 본 순간, 활기가 가득한 생글한 눈빛이 모든 선입견을 해제시켰다. 낯설고 긴장되는 첫 대면을 유쾌하게 이끌어주는 여유로움도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상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던데 그런 점에서 꽤 좋은 사람을 만난 듯했다. 그녀에게 결혼해서 가정을 행복하게 일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다. 농부는 열매나 채소를 거둬들일 것을 기대하며 논에나 밭에 씨앗을 심는다.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읍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쌀농사는 아니어도 밭에 감자나 고구마 등을 심어 먹었다.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끔 산에 가서 밭으로 만들 땅을 파서 갈아엎고, 돌들을 치우고, 잡목들을 제거했다. 그렇게 만든, 산 이곳저곳의 작은 밭들에 감자를 심고, 감자를 캔 뒤에는 고구마를 심었다.밭을 일구고, 종자를 심고, 작물이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은
가끔씩 고향에 다녀올 때가 있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의 두메산골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보니 모두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논밭이 거의 천수답天水畓이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모내기를 해놓아도 비가 오지 않으면 농부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고, 남의 논 물꼬를 터서 그 물을 몰래 자기 논으로 끌어들이느라 이웃과 더러 다투기도 했다. 날씨가 아주 가물 때는 동네 우물의 물을 퍼내어 농로農路로 보내기도 했는데, 힘들게 퍼낸 샘물이 말라버린 물길을 따
“결혼? 꼭 해야 하나? 그냥 연애만 하면 되지. 난 혼자여도 좋은데?”“그리고 결혼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할 거야?”“또 결혼하면 취미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즘 내 주변에만 봐도 이렇게 말하는 20, 30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비교적 최근에 결혼한 나한테 다짜고짜 묻는다.“결혼하면 정말 좋아? 어떤 점이 좋아?”어떤 점이 좋은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다가 내 입에서 나오는 대답,“글쎄? 어떤 점이 좋냐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말은 못하겠어.”그
“모든 돌덩어리 안에는 조각상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조각가의 임무이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치오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과 같은 성화聖畫를 그린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다비드’, ‘피에타’를 만든 천재적인 조각가이기도 하다. 자신을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여겨 달라고 할 정도로 조각에 혼신의 열정을 다한 그의 작품에는 대리석에 갇혀 있는 인물을 끄집어낸 것처럼 살아 숨쉬는 생동감이
아직까지 더위가 한창인 날씨 속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그로부터 넉 달 후 병석에 오래 계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뇌사 상태가 되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병원의 보호자 대기실에 머무르며 하루 두 번 있는 중환자실 면회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밤에 엄마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면서 “엄마, 내가 크면 엄마 좋은 데 많이 데려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줘.”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거나, “엄마, 나중에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며 세상모르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이 있어서
세월이 빨라서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그날 밤 우리 일행은 울산에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주에 나는 울산의 한 교회에서 열린 성경 세미나 강사로 며칠 동안 성경 이야기를 하고, 그날 밤에 세미나가 끝나 서둘러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차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의 시간이 밤 10시 30분경이었다. 서울까지는 빨라야 4시간 후에 도착할 수 있기에,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리 선교회 소속 교회들에 부탁하면 잠잘 방은 마련해줄 테니, 먼저 대구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
글쓰기를 할 때 특정 구성 방식만 고집해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구성이나 문장이 능숙하지 않다면 다음 몇 가지만 신경 쓰면 망신당할 우려를 덜 수 있다. ‘문장과 문단, 꼭지마다 하나의 생각만 담아라.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눠 쓴다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눈길을 끌어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인상적이어서 여운이 남는 글로 마무리하라. 어떤 주장을 내세우고, 이유를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라.’ 이것이 글쓰기 초보자에게 유용한 글 구성 방식이다.‘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트럭처Str
먼동이 터오면 짙게 드리웠던 어두움이 서서히 물러가고 아침이 찾아온다. 푹 자고 맞는 아침은 우리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깊은 산 외진 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만나 밤새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의 긴 시간을 보냈다면, 그 아침은 한없이 새롭고 반갑고 소중할 것이다.해가 뜨면 아무리 짙은 어두움도 물러간다. 그런 이치에서라면, 생명이 있는 곳에서 죽음이 물러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들을 삶 속에서 접한다. 살다 보면 병이 찾아와서 건강한 몸을 헤치기도 하고, 죽음이 찾아와 삶을 마무리하기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회사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의례적인 소통이나 단문 형태의 대답 또는 식사를 혼자 따로 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되면서 사람들 관계가 이전보다 다소 어색해진 것이다. 엔데믹을 맞이하면서 필자는 동료와 따뜻한 정情이 흐르는 관계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계 개선의 프로젝트로 ‘온溫택트’ 문화의 정착에 힘을 쓰고 있다. 그 프로젝트의 핵심이 ‘인소찬’의 생활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필자가 운영 중인 회사에서는 매년 4~5월이 되면 ‘미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감사’란 ‘미안합니다, 감사
2021년 12월호부터《투머로우》가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어 ‘듣는 잡지’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보급되고 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시각장애인이자 투머로우 애독자인 박용택씨의 열정 덕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영역을 훨씬 더 잘 느끼고 이해하는 그는, 탁월한 촉각으로 사람의 몸 상태와 성격까지 다 파악해낸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마인드를 소개한다.나는 열 살이 아직 안 되었을 때 실명失明하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 빛이 비취면 눈이 부셔서 견딜 수가 없었고, 아주 약한 빛줄기도 받아들이지 못해
따뜻한 봄이 시작되면 해마다 어김없이 찾는 곳이 경기도 장흥면에 있는 양주화훼단지다. 아직 꽃샘 추위가 있지만, 이곳에 가면 초록식물과 봄꽃들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다육식물, 관엽식물, 형형색색 봄꽃을 피운 화분들이 가슴을 설렘으로 바꾸어준다. 겨우내 누군가 애써 가꾸어 두었다가 내놓은 선물처럼 아기 손톱만치 작은 안개꽃, 꽃이 꽉찬 수국, 겹겹이 올라오는 장미 등을 보면 마음이 열린다.차를 조금 더 타고 가면 파주 마장호수가 나오는데 호수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쭉쭉 뻗은 소나무 숲과 단풍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눈길을 멀리 옮
서머싯 몸의 소설《달과 6펜스》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화가 폴 고갱. 흔히 ‘고갱’이라고 하면 고흐와 함께 거론되거나, 착한 고흐 vs. 나쁜 고갱으로 양분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고갱을 검색해보면 연관 검색어로 ‘타히티 섬’이 나온다. 다른 화가들이 당시 예술의 중심축인 파리로 모여들 때, 그는 왜 남태평양 타히티 섬으로 향했을까?폴 고갱Paul Gauguin이 태어난 1848년 당시 유럽은 한창 혁명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 집안 출신의 자유주의 언론인이었는데 신문에 기고한 기사로 인해 프랑스에서 추방령을 받는다. 그래서 고
일흔여섯의 노인은 오늘도 골방에 들어앉아 고서를 열심히 베껴 쓰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노인이 15세의 나이에 스승께 받은 가르침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키기 위함이다.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스승의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없다는 그의 이름은 치원巵園 황상, 그리고 그의 스승은 바로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쓴 글《삶을 바꾼 만남》은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 사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리情理를 이야기한다. ‘더벅머리 소년이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 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가는 과정’
코로나가 풀리면서 오랜만에 마음 먹고 떠난 해외 여행. 한국에서 출발해 미국까지 15시간 비행기를 타고 간 뒤, 다시 10시간을 더 내려가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쉽사리 갈 수 없는 먼 곳인데다가, 새롭고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접하리라는 생각에 크게 설렜다.아르헨티나는 ‘은’을 의미하는 아르겐툼 Argentum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 강 상류에 은으로 된 산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다는데, 그만큼 오래전부터 기대를 준 땅이 아니었을까.분홍빛 저택으로 알려진 대통령궁은 시내 한가운
아름다운 항구도시 여수의 오동도에 가면, 등대 입구 돌비석에 ‘암야도광暗夜導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어두운 밤에 빛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칠흑과 같은 밤바다를 헤매며 혼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멀리서 비치는 등대 불빛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고 뱃머리를 항구로 돌리게 한다.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의 항구로 인도하는 등대는 무엇일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겸비한 마음과 절제라고 본다. 홧김에 BMW 승용차를 강물에 밀어 넣은 청년2019년 8월 인도의 한 부잣집 아들이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준 BMW 새 승용차가
아프리카를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오면서 현관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스트레스 받지 마.” 하며 아내를 꼭 껴안아주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등교하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그래, 너도 잘 있어. 일주일 뒤에 보자.” 말수가 적은 녀석이라 짧게 멀뚱멀뚱하게 대화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 속에 차오른다. 아마 8시 30분쯤 되면 막내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다.(8시 38분에 왔다.) 이제는 커서 더 이상 몸이 가볍지 않는데도, 어젯밤에 나에게 매달려 “아빠,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프로그램인 챗GPT 열풍이 뜨겁다. 도대체 챗GPT는 무엇인가? 쉽게 정의하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기계와 소통하는 프로그램 시스템이다. 2022년 말, 세상에 공개된 챗GPT가 무슨 기능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펴보자.Q : 네이버 뉴스 중 경제면 소식을 파이썬*으로 크롤링**해서 받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파이썬Python : 인터넷 프로그래밍 언어.**크롤링crawling : 웹 페이지를 그대로 가져와서 거기서 데이터를 추출해 내는 행위다. 크롤
“창문을 열어.” 창문을 열었다. “의자를 가지고 와.”의자를 창문 아래 가져다 놓았다. “의자 위로 올라가.”의자 위에 한 발을 올리고, 나머지 발도 올려놓았다.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고 뛰어내려.”젊은 부인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서 누군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깊은 밤, 말하는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마음에서 들리는 음성을 따라 부인은 행동했다. 그 음성은 부인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다. 부인이 사는 집은 아파트 38층이었다. ‘뛰어내리면 죽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속에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따뜻하게 들렸다.“뛰어
드물지만, 남에게 피해를 전혀 끼치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법이 정한 것들을 평소 행하며 살기에 굳이 그 삶에 법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필요한 법에 대한 여러 형태의 정의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성경은 ‘자신이 대접 받고 싶은 대로 타인에게 대접하는 것’이 법이라고 한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타인을 존중하고, 내 물건이 소중하면 타인의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고, 내가 당해서 고통스런 일을 타인에게 행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