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 가기 전, 나는 그곳에 ‘마추픽추’와 같은 산악지대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페루는 익숙한 도심 풍경이었다. 그러다 두 달 뒤에는 말과 당나귀를 키우고, 따듯한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시골 동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엔 거대한 모래 사막지대가 펼쳐졌고, 어느 날엔 길게 뻗은 해안가를 마주했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갈 때면, 기온 차이 때문에 옷을 바꿔 입어야 할 때도 많았다. 페루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 나라였다.그건 페루의 환경만이 아니었다. 그곳
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는 남학생, 너도나도 손을 힘차게 들고 있는 아이들, 이런 모습을 뚫어지게 보는 또 다른 아이들…. 3월호 표지 사진은 이런저런 호기심을 자아낸다. ‘저 남학생이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이들은 무슨 발표를 했을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지난해 우간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하경훈 씨다. 그가 어떤 인연으로 사진 속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인지 따라가 보자. 봉사 기간이 끝나가는 무렵, 나와 단원들은 우간다의 ‘라카이’라는 지방으로 마지막 체험 여행을
“우와! 우리 반 부반장 역시 잘한다. 최고야.”“얘들아, 고마워!”안녕하세요? 이젠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중학교 2학년 최서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말할 때 목소리에 자신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2021년 6월호를 읽은 후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반전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 과정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저는 한때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목소리가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 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보다 조금 이른 졸업식을 했다. 그날 울고 웃으며 보냈던 중·고등학교 6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음악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평소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음악을 하면 좀 차분해지지 않을까’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난 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음악에 흥미가 있었기에 수업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전공으로 트럼펫을 배웠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칠판에 글씨를 멋지게 쓰시고,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시고, 세심하게 진학상담을 해주시고…. 이 모든 장면이 김수정 씨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선생님이 멋져 보여서, 존경스럽고 좋아서 유독 잘 따랐던 그는 어느덧 자라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얼마 전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아간다는 그를 잠시 만났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아선지 그의 미소가 아이처럼 해맑았다.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 같아요.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하하). 교단에 선 지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아직 뭐든지 해볼 나이인데 상당히 먼 노년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일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듯이, 환경문제도 같은 견지에서 봐야 한다. 30대 초반의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좋아하는 일도 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도 문제없이 잘 풀어가고 있다. 언젠가 은퇴 후에 살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가 은퇴할 때가 되는 2050년대에는 지금보다 지구의 해수면이 올라가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긴다고 한다. 지구의 위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꿈꾸는 노후는 불
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행을 끌어안고 살았던 김효은 씨. 해외로 봉사를 갔을 때 처음으로 그런 자신을 바로 보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나에게는 아주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으면서 ‘나는 불행한 사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을 불행한 사람으로 살았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이직이 잦으셨던 아버지,
책과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코로나19와 읽기 생활 변화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영상 플랫폼 이용 시간뿐 아니라 읽기 관련 시간도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책을 읽거나, 온라인 독서 모임 등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한 것이다. 독서지도사 및 독서논술교사인 심문자 씨 또한 코로나 이후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독서 모임을 찾을까?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독서 토론 활동이 코로나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고요.그렇습니다. 실제로 지난해가 제일 바쁜 해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았지만 여전히 군중이 모이는 활동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지난 연말, 미국의 5개 도시에서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클래식 음악공연이 성황을 이루었다. 미국에서 2년 만에 재개된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였다. 시민들은 칸타타 공연을 한마음으로 반기며 달려와 감격해했고 감사를 연발했다. 시민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다면2021년 12월 23일, 수많은 차량들이 미국 남부 멕시코 만에 인접한 도시 휴스턴을 향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코퍼스크리스티를 지나 휴스턴으
제 21회 IYF 영어말하기대회에서 ‘Looking for a Better World’라는 제목으로 스피치한 박동인(조선대학교 2학년) 씨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상을 수상했다. 본지에서는 그의 원고를 영문과 국문으로 게재한다.그날, 저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습니다. 그녀는 제 삶의 동반자이자, 소울메이트였습니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국적인 모습에 저는 시선을 뗄 수 없었지요. 그녀와 함께하면 편안했습니다. 그녀와 처음 만난 날 저는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걸 직감했고, 곧바로 부모님께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셨다. 우리 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버지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한동안 술로 세월을 보내셨고, 나는 7살 4살 두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 후 아버지를 따라 큰아버지가 살고 계신 대구로 이사를 왔다.8년간 투병한 어머니의 병원비로 재산을 다 써서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먹을 것이 없었고, 배고픔으로 힘겨울 때가 많았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새엄마와 지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시면 무턱대고 때리는 새엄마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점
나는 전주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다른 도시에 있는 기숙사 형 학교로 가면서 타지 생활이 시작됐고, 이는 대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주는 그리운 부모님이 계시는 푸근한 곳, 삶에 충전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쉼터였다. 그런데 스물한 살에 내게 또 하나의 고향이 생겼다. 한국에서 약 8,500km 떨어진 나라 독일이다. 어쩌다 독일이 나의 제 2의 고향이 되었을까?3년 전만 해도 독일은 나에게 ‘유럽에 있는 어느 나라, 음악이 유명한 나라, 나와 별 상관이 없는 나라’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가
짐바브웨는 그곳 현지어로 ‘돌집’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짐바브웨에는 다양한 돌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 많다. 표지 배경인 ‘락뷰 Rock View’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파란 하늘 아래 큰 돌, 작은 돌, 모난 돌, 긴 돌…. 다양한 모양의 돌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짐바브웨 해외 봉사단원인 전영조, 한규민, 이은오 씨는 그곳의 돌들이 꼭 자신들의 모습 같다고 했다. “한 사람씩 보면 뾰족한 돌처럼 모나기도 하고 부서진 돌들처럼 약하기도 하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할 때 생각지 못
제 21회 IYF 영어말하기대회에서 ‘A Life Lesson Worth Thirty Dollars’라는 제목으로 스피치한 이상훈(충남대학교 2학년) 씨가 최고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본지에서는 그의 원고를 영문과 국문으로 소개한다.A Life Lesson Worth Thirty DollarsIt was the first official day of summer break and I was finally free to go home. Bye-bye teachers, bye-bye assignments, bye-bye due da
살다 보면 마음에 힘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종종 를 펼치고, 몇 줄의 문장이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곤 한다. 얼마 전에도 2021년 9월호를 읽으며 또 한 번 변화를 경험했다.지난 해 봄, 나는 인천국제공항에 입사했다. 내 전공은 중국어인데, 치열한 취업 경쟁을 과연 뚫을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하지만 졸업한 뒤 바로 취업에 성공해 무척 기뻤다.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외국인을 위한 택시 안내 데스크에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손님들에게 교통을 안내해 드리는 일이었다.입사 초기에 나는 늘 에너지가 넘쳤
“제 이름이 적힌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30여 명의 선배님들이 일하고 계시는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인사했어요. ‘안녕하십니까! 박진태입니다!’ 그날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꿈같이 느껴졌어요.”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박진태 수사관은 첫 출근 날을 잊을 수 없다며 그날의 사무실 풍경, 분위기 등을 생생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2021년이 시작되던 1월 11일의 일이었다. 올해를 돌아보면 힘든 기억보다 즐거운 기억이 대부분이라는 박진태 씨. 그에게 즐겁게 사는 비결을 묻자 ‘실패가 준 선물 덕분이다’고 하며 웃었다. 그와 마주앉아, 그가
“안녕하세요? 옆집 아주머니가 사장님을 강력히 추천하네요(호호). 저희 집도 잘 부탁드립니다.”“맘 카페에서 보고 연락드려요. 사장님이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 하신다고요.”전기 엔지니어 조근식 씨는 종종 낯선 번호로 이런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5년 전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홍보 한번 제대로 한 적 없지만 ‘마무리 잘하는 사장님’으로 입소문이 나 코로나 시기에도 수많은 러브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에게 어떤 남다른 사업 비결이 있는 걸까? 인터뷰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무척 바쁘신가요?한 달 전부
지난 6월,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 NGO 봉사 단체의 막내 사원이 되었다. 이전 직장 동료들이 나에게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유독 돈 모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하며 힘들어도 돈을 버는 게 좋았고, 그 돈으로 안정적이고 멋지게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직장생활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인생의 길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돈을 조금 벌더라도 행복하게 일할 곳을 찾았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 이직을 결정했다. 2021년은 새 직
발행부수가 11만 부를 넘으면서 잡지에 대한 리뷰 글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따뜻해졌다’는 분도 있었고, ‘기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함께 나누고 싶어 ‘투머로우 1분 홍보영상 공모전’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응모해주셨고, 보내주신 영상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하신 분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응모해주신 모든 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자 중 두 팀을 만나 영상에 못다한 사연과 소감을 들어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다큐를 제작하셨지요. 주인공 김상호 할아버지와는 어떤 사이인가요? 이번 영상을 촬영하면서 처음 뵈었습니다. 제가 투머로우 홍보 영상 공모전 참가를 결심한 후, 콘텐츠 스토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지인 분이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독자 에세이로 실린 할아버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투머로우를 읽으며 심장이 뛴다고 하시더라. 그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었어.” 하며 연락처도 알아봐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덕분에 김상호 할아버지 동생 분과 연락이 닿았고, 가족 분들이 촬영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