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색 구름이 빠르게 동쪽으로 흘러간다. 조금 더 높이 있는 흰 구름은 누가 붙잡고 있는지 제자리에 서 있고, 그 위에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도시의 건물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니 운치가 있다. 살갗을 태울 것 같은 태양도 그리 뜨거워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을 하여 창문의 버티컬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니 바로 눈앞에 들어온 풍경이다. 아직 더위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긴 여름이 끝나간다.큰아이가 방학 때 집에 와서 석 달 동안 동생들과 같이 보냈다. 세 녀석들이 한 세트가 되어 움직이는 걸
성경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아주 오래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야곱이고 어머니는 라헬이었다. 야곱은 맏아들인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으며, 그로 인하여 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가나안 땅에 있던 집을 떠나 밧단 아람(메소포타미아 북부, 현재의 터키 중남부 지역)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로 간다.야곱이 사랑한 라헬야곱의 외삼촌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첫째 딸의 이름은 레아, 둘째 딸의 이름은 라헬이었다. 언니인 레아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동생 라헬은 곱고 아름다워서 남
오랫동안 필자는 교직에 몸담아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사로서의 열정과 능력의 한계를 강하게 느꼈다. ‘아! 교육이라는 것이 절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데 ‘나로서는 안된다.’는 그 한계의 깨달음이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필자가 경험한 교단일기를 재구성해서, 최근 이슈가 된 학생 인권과 교권 대립에 대한 문제를 ‘교육가족’의 관점에서 살펴본다.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약 10여 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서 ‘교육가족’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
김정선 작가는 자신이 펴낸《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서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면 공연한 걸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교정‧교열 전문가인 김 작가는 김훈의 소설에서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같은 접속부사가 얼마나 쓰였는지, 혹은 보조사 ‘은, 는’과 주격 조사 ‘이, 가’ 중 ‘이, 가’가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세어본다. 그에 따르면 접속부사 ‘그러나’가《남한산성》에는 딱 한 번, 《흑산》에는 열다섯 번 나온다.김정선 작가는 접속부사는 말이라기보다는 말과 말을 이어 붙이거나 말의 방향을 트는 데 쓰는 도구
작년 봄,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습관처럼 노트를 폈고, 그 위에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갔다. 나는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왜 자꾸 마음이 잡히지 않고 배회하는지를. 1년 가까이 끝나지 않던 자문자답을 이어오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바쁜 회사생활을 하며 이런 치열한 고민을 지속해오면서 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7년째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 시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안녕하세요. 키 작은 산악인 김미곤입니다.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 중에 키 큰 분들이 많아서 무대에 선 제가 더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사람도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완등完登하고 왔습니다. 처음 히말라야를 다니기 시작한 1998년부터 2018년 7월까지 20년 동안 저는 8,000m가 넘는 14좌를 등정했습니다. 이 기록이 세계에서는 40번째,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라고 합니다. 등정 기록을 하는 분들이 말해줘서 알았습니다. 저는 단지 산을 오르는 등반가여서 기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산에만 다닙니다.(
어떤 물체가 실제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을 가리켜 신기루라고 한다. 신기루 중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다. 바닥 면과 대기의 온도 차이가 큰 곳에서 주로 신기루가 나타나는데, 사막은 표면의 공기는 뜨겁지만 위쪽 공기는 차가워 빛이 굴절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막을 통과해야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사막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막을 숱하게 오간 인도자를 따라야 했다. 사막을 걷기 시작해 며칠 뒤에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이면
무덥긴 하지만 8월은 여행하기 좋은 달이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어디든 가볍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하는 과정은 조금 귀찮지만, 막상 기차 위에 오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 여행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에 발걸음이 신이 난다. 여행지에서 갈팡질팡해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 헤매도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길 참 잘했다.’는 만족감이 드는 게 여행이다.나에게 ‘여행’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생 라자르 역’이다. 증기를 내뿜고
글 찬드니 할라이Chandni Halai(케냐 유학생)안녕하세요. 우리 소개부터 할게요.가장 나이가 어린 사그니카 브라흐마Sagnika Brahma(15)는 인도에서 왔습니다. 중학생인데 한국 문화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부모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참석했어요. 나미비아의 리아 테레사 호프만Lea Theresa Hoffmann(20)은 간호학과 2학년 대학생이고요. 케냐의 멜로디 나무용가Melody Namuyonga(26)는 대학 졸업 후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친구예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타냐 다니엘스Tania Daniel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젯밤에 기차로 서울역에서 구례역으로 내려왔고, 구례에서는 버스 첫차를 타고 노고단 입구에 도착했다. 요령 없이 짐을 싸서 배낭은 곧 실밥이 투두두둑 하면서 터질 것 같이 빵빵하고, 기차 선반에 올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무릅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차 시험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혼자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했다.1인용 텐트를 샀는데, 알고 보니 혼자 펼 수도 없었고, 이것 때문에 배낭이 더 무거웠다. 노고단을 오르기 시작할 때, 정작은 서울에
오래 전에, 아람(현 시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로 쳐들어갔다. 나아만은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술에 아주 능한 장군이어서 이스라엘이 아람의 군대를 당해내지 못했다. 나아만은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까지 진격해 갔다.하루는 나아만이 한 아가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부하들에게 잡아오라고 했다. 군사들에게 붙들린 아가씨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놓으세요. 왜 이래요? 나 집에 갈래요!”“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나아만 장군이 잡혀온 아가씨에게 말했다.“내 아내가 집에서 외롭게 지낼
유시민 작가는 2017년 6월 9일 tvN에서 방송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프로그램에서 옥중에서 쓴 《항소이유서》에 얽힌 뒷이야기를 밝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14시간에 걸쳐 썼으며 퇴고*(推敲 : 글을 다시 다듬고 여러 번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하지 않았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글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미리 생각하고 수정 없이 완성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26살이었다.《항소이유서》는 명문장으로, 유시민 작가가 대중적 명성을 얻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 걸”오래전에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포크 송 가사의 한 대목이다. 가사만 보아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밝고 흥겨운 노래다. 사랑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감정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주제로 수많은 노래를 만들고 수많은 글을 썼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사랑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 친구…. 그래서 사랑에 대한 정의도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성경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꼼꼼하고 집요한 성품을 타고난 나는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생활 초반에도 내게 주어진 과제들을 빈틈없이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렇게 하나를 파고드는 ‘나무 지향적’ 성향은 신입 시절엔 제법 강점이 되었다. 업무에 서툴러도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회사에서 믿고 맡겨주는 일들이 더 늘어갔다.어느덧 평사원 시절을 거쳐 두 번 이직한 나는 현재 직급이 대리로, 8년차 직장인이다. 묵직해지는 연차만큼 업무 범위와 책임 영역은 점점 커져간다. 회사에서는 한두 가지 일을 꼼꼼하게 해내는 것뿐 아니라, 연간계획과 중장기 전략까지
‘여름’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푸른 바다, 뜨거운 햇살, 녹음綠陰, 소나기, 휴가, 여행 등 여러 단어가 떠오른다. 이번 호에서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스페인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의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 속에 담긴 무언가를 읽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직업병 때문에 나는 편안한 마음보다는 고민과 질문을 가지고 작품을 대할 때가 많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그림이 왜 유명할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을까?’, ‘어디서 어떤 영향을 받아 표현한 것일까?
100세 시대, 코로나19 팬데믹 등 현 시대의 가파른 흐름 속에 제약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주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제약회사에서 올해로 9년째 근무하고 있는 전요섭 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특별한 꿈’이 있다는데,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들어본다.투머로우 독자들에게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바이오 제약기업인 한국MSD(Merck Sharp & Dohme Corp, 본사:미국)에서 2015년도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윤리경영팀에
‘타이타닉’과 ‘아바타 1, 2’로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화려한 이력에 가려져 그가 열렬한 ‘바다 덕후’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물’, ‘바다’, ‘심해’가 그가 만든 영화의 주요 배경이자 상징적 의미로 등장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채리라. ‘바다’는 구체적으로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카메론 감독의 작품과 개인사를 살펴보며 바다를 향한 그의 남다른 사랑과 메시지를 확인해 보자.‘바다’ 배경 CG로 13년 만에 찾아와, 영화 ‘아바타 2: 물의 길’작년에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마음의 갈등을 겪을 때가 있다. 대화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면 좋지만, 때로는 갈등이 점점 더 심해져서 마음이 닫히고, 속상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 고부간에, 동료 간에나 직장 상사와의 갈등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사람이 사는 동안에 병균과 접촉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마시는 물을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만지는 물건을 통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세균이나 병균들과 접촉한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생태 및 진화 생물학부 노아 피어러Noah Fiere
제대 후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면서 부산 서면 거리를 걷고 있었다. 5층짜리 건물의 3층 창문에 붙여 놓은 ‘일본어, 완벽 3개월 속성’이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독학 일본어 완성’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이 또한 과장광고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미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학원 문을 열고 있었다.“정말 3개월 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 있습니까?”“뭐… 정말 그런 분들도 있고, 몇 년째 공부하고 있는 분들도 계세요.”“어떻게 3개월 만에 가능한 거예요?”“저는 그냥 경리 직원이라 잘 몰
기다리던 방학, 그러나…방학이 기다리고 있는 7월은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온갖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거의 100여 일 동안 규칙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빡빡한 스케줄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방학은 그런 일탈이 허락되는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더운 날씨와 함께 학기 초의 쌩쌩했던 에너지가 고갈되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학생들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천국처럼 다가올 것이다. 자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자고,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리라는 꿈을 꾸며 방학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