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으로 키도 작고 왜소한 나는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지만 또래 친구들과 비교를 당하면 모든 것 원망스러웠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항상 웃음으로 넘길 뿐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감추고 피지로 봉사하러 떠났다.길을 걷다보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하는 그곳 피지 사람들. 항상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들에겐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어느 날 무전 여행을 하며 도착한 라세라 마을. 그곳에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걷지 못하는 여학생 리시아를 만났다.‘내 이야기가 그 친구 마음에 작은 소망을 줄 수
오랜 가뭄으로 말라위 인구의 25퍼센트가 굶주림에 시달리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학교에 갈 힘이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부모님 없이 혼자 사는 아이작“저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학교에 다니다 그뒤로는 다니지 못했어요. 배가 너무 고파 멀리 있는 학교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학교에 가더라도 힘이 없어 수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은 돈을 벌어오시겠다며 집을 나가셨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온 해외봉사자들이 왕, 사대부, 공주 등 다른 전통복장을 하고 서울 종로의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피부색도, 생김새도, 덩치도 다 각각인 이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리처드, 타일러, 조나단, 앤더나, 아이린이 바로 올해 신년호의 표지 주인공들이다. 한국 땅에서 새로운 문화, 관습, 관점 등을 배우고 있는 그들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북촌에서 만났다. 한복을 한껏 차려입고 북촌 돌담에 기대어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영락
필리핀에 온 지 3개월 정도 됐을 무렵, ‘필리핀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게으르다’고생각하며 편협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 ‘차가운 한국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필리핀 사람들과 엮일 일이 없으니 좋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앙헬레스 도시로 이동해 만난 ‘필리핀 맘’. 무뚝뚝하고 표현도 잘 안하는 나를 항상 아들이라 불러주며 안아주었다. 늘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들을 따뜻하게 대해준 필리핀 맘은 돈이 생겼다며 맛있는 것을 사주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만나며 친구가 되는 것만큼 설레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굿뉴스코 봉사단원들이 새해 소식으로 지구촌 사람들과 친구가 된 그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해외봉사하고 있는 나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320km 떨어진 ‘소로티Soroti’라는 작은 도시로 현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재미있는 풍경을 많이 보았다. 한국과 달리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없는 이곳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있는 정글이 곧 휴게소이다. 잠시 정차하는
사람 몸에는 많은 병균이 있습니다. 하지만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몸이 약한 사람은 금방 감기에 걸리고 다른 병도 걸리기 쉽습니다. 몸에 병이 있듯이 마음에도 병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죽어도 해야 하고, 하기 싫으면 절대 하기 싫은 사람들은 마음이 점점 약해져가요. 그리고 마음의 병에 걸립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약을 처방받지만, 마음의 병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칼럼니스트 박누림 씨가 대학시절 겪었던 ‘중독’을 치료했던 법을 토대로 소개해드립니다.우리 가족은 제
나는 출산을 하고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80kg이 넘는 몸무게로 지냈다. 결혼할 때는 키 168cm에 63kg였는데 임신을 하면서 점점 살이 찌더니 결국 여자로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몸무게가 되어버렸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발톱 깎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런 신체적인 불편함은 하루하루 자존심 상하는 날들로 지내는 것에 비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애 낳고도 바로 부기가 빠지고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는데 나는 오히려 살이 쪄서 83kg을 넘어가고 있었다. 돌잔치를 앞두고 오실 손님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서, 작심하
내 책상은 언제나 복도에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나는 학교에서 내놓은 문제아였다. 나를 감당할 수 없었던 선생님들은 내가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책상은 언제나 복도에 있었다. 평범한 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 걸어서 등교하든지 버스를 타고 가지만 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유독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지?’ 하고 가까이 가보았더니 아버지가 그곳에 서 계셨다. 차마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모른 척 지나쳤다. 그 날 집에 들어가는데
동남아는 최근 전세계 기업들 사이에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많고 인건비도 저렴하며, 농수산 자원이 풍부해 물가도 비교적 싸다. 인구도 6억이 넘어 상품시장으로서 가치 또한 높다. 그 동남아의 캄보디아에서 사업가가 될 꿈을 키워가는 젊은이가 있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삶을 사는 임요한 씨다. 무더위도, 코 찌르는 향신료도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캄보디아에서 지낸 지 벌써 만 4년이 다 되어간다. 2013년 2월,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스물네 살에 신입생이 된 나는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나에게 정말 맞는 길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양한 활동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주최한 대학생 지식멘토링 뿐만 아니라, 해외봉사, 기자단, 인턴십, 학술대회 등 많은 활동에 참여했다. 1년이 지난 뒤 한 해를 뒤돌아보았다. 수많은 활동 속에서 좋았던 순간들, 기억들은 많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했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멘토로 참여하는 것
젊은 날,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와도 같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0년부터 차세대 리더육성 멘토링을 운영해 왔는데, 7년 동안 1,847명의 멘토와 15,267명의 멘티가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그동안 취업 걱정만 하느라 제대로 된 자기계발을 하지 못했다면 새해에는 차세대 리더육성 멘토링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지도 받으며 리더의 역량을 길러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찬 스케줄로 힘들게 공부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난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느라 나는 하숙을 하고 있는데 하숙집살이가 꽤나 재미있다. 하숙집에는 나를 포함해 16명의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다. 학생, 회사원, 군인, 엔지니어 등 직업도 다양하다.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가족 같다. 같이 밥 먹고, 같은 방에서 자고, 청소도 집수리도 모든 것을 같이 하면서, 혼자 살 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즐거움을 누린다. 하숙집 주인아저씨는 특별한 분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신데, 자상하시고 나를 아들처럼 대해준다. 때로는 야단도 치시는데, 밥을 잘 먹지 않거나 방 청소를 잘하지 않
프랑스 근로자들이 업무시간 외 시간에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되었다.디지털 기기의 보급에 따라 일과 사생활에 구분이 없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근로자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에서는 퇴근 후나 주말에도 스마트폰으로 메일 회신 및 메시지 확인 등의 업무가 일반화 되고 있다. 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심지어 휴가 중에도 고객과 연락을 하거나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한 통신회사에서 2년 새 35명의 직원이 자살
연말연시다. 직장인이라면 송년회에 이은 신년하례식으로 회식이 잡히는 시기다. 직장에서 회식을 하면 흔히 ‘뭘 먹을까?’가 관심사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필자는 살짝 안타까움을 느낀다. 회식은 단순히 먹기 위한 모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저마다 능력이나 성격,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런 사람들을 통솔하며 일하다보면 리더는 본의 아니게 아랫사람에게 채근하거나 언성을 높일 때도 많다. 당연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와 감정의 앙금이 쌓일 수밖에 없다. 회식은 그런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묵은 감정을
태국 남부지역이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태국 기상청은 안다만 해에 위치한 저기압이 남쪽에서 지나오면서 미얀마에 진입하고 있으며, 타이만을 비롯한 태국 남부지역이 동남아시아의 우기 영향권에 접어든 지난달 말부터 열흘 이상 지속해서 폭우가 쏟아졌다고 밝혔다.이번 폭우로 팟타룽, 수랏타니, 나라티왓, 얄라 등 남부지역 12개 주가 홍수 피해를 겪었으며, 12일 현재까지 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는 25명, 실종자는 2명이며, 5천여개 마을의 가옥 37만여 채가 물에 잠기면서 11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현재도 많은 비가 쏟아지
2003년 10월 23일,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아직 열네 살 철없는 소년이었던 나는 그저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있었고, 넓고 푸른 초원에서 야생 동물들과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을 하리라는 행복한 상상에 잠겨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 밤, 시차로 인해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을 때 밖에서 들려오는 폭죽 소리가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집 주위에서 총격전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뜻밖의 뜨거운 환영식과 함께 시작한 아프리카에
어렸을 적부터 남자의 강함과 카리스마를 동경하며 이종격투기 선수인 효도르를 나의 본보기로 삼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공부에 흥미를 붙이기보단 ‘어떻게 하면 나를 더 강해 보이게 할까?’라는 고민 끝에 이종격투기를 배웠다. 속된 말로, ‘노는 무리’와 어울렸고, 싸움 잘하고 잘 노는 남자가 성공한 다고 믿으며, 연필 대신 담배와 술잔을 들었다. 내가 제일 강하다 믿고,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파 대학병원에서 입원검사를 했는데,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병에 걸렸
지난해 한국체육대학교 체조부에서 ‘마음의 근육을 키워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인간관계도 돌아볼 수 있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여러분이 어느새 새해 계획이 온데간데 없고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면 잠깐 멈춰 이 칼럼을 읽어보십시오. 성공하는 데 필요한 마인드를 상세히 알려드립니다.마음에 근육이 붙어 강해지면운동선수는 탈골할 때가 많을 겁니다. 저도 운동을 좋아하는데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골반이 틀어졌습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골반이 틀어진 채
가시 면류관 아래 검게 그을린 얼굴, 실제 크기의 조각상을 짊어지고 맨발로 행진하는 사람들, 이를 지켜보는 1천만 인파… 매년 1월 9일 필리핀 마닐라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예수의 성상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블랙 나자렌(Black Nazarene)’ 축제를 소개한다.‘블랙 나자렌’은 1606년 멕시코의 조각가가 만든 예수(성경에서 나사렛 예수라고도 불림)상을 필리핀으로 운반하던 도중 배에 화재가 나 얼굴이 검게 변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이 조각상은 마닐라에 들어온 후로도 수차례의 지진과 화재를 겪었
결혼한 지 8년 만에 얻은 외동아들을 곱게 키울 법도 하건만, 저희 아버지는 남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절 괴롭혔던 친구들이 멕시코와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걷어차 쓰러뜨리며 ‘아시아인은 이 나라에서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아들아, 걱정 마라. 너는 선한 손길 안에 있단다”라고 말씀하실 뿐이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