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한 마을에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이 어울려 살아왔다. 같은 환경 속에 지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익숙해지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마음을 가지며 공동체 생활을 해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견과 가치관은 비슷해져 갔으며, 서로 다른 의견에 논쟁이 있을 때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하얀 도화지에 많은 색을 담자미국의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해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이 시청했었던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목사님, 저는 너무 불행해요.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해요. 하지만 저는 지난 10년 동안 친구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혼자서 ‘엄마’라고 수없이 불러보았어요. 그런데 대답해 줄 엄마가 없어요. 아홉 살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말이에요. 나보다 공부를 못하고 나쁜 친구도 다 엄마가 있는데 나는 없어요. 친구 엄마는 속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고 백화점에 데려가 쇼핑도 하고 식당에도 같이 가요. 그런데 나는 왜 엄마가 없어야 하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 때가 너무 많아요. 혼자 방문을 잠그고 울어요
어렸을 때, 동네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었지만, 해수욕은 할 때엔 좋아도 하고 나면 모래를 털어내고, 어딘 가에 가서 몸을 씻고 집까지 오는 것이 귀찮았다. 대신, 우리는 좁은 흙길을 걸어 올라가 개천에서 물놀이를 자주 했다. 거기에는 작은 둑이 있고 수심이 늘 일정해서 어른들이 안심하고 우리를 보낼 수 있었다. 가끔씩 건너편 양계장에서 흘러온 오물들이 떠다녔지만, 개천에 몸을 넣었다 나오면 샤워한 것으로 쳐서 다시 씻을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는 간편한 개천 물놀이를 더 좋아했다. 수영복이 따로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냥 반바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로 ‘평등’이 자주 거론된다. 평등은 상당히 멋지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자연의 모든 현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키가 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작은 나무도 있으며, 다년생 풀이 있는가 하면 한해살이 식물도 있다. 똑같이 시작하더라도 특성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도 기회의 평등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결과는 본인의 노력 등 여러 가지 요소나 상황에 의해 늘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노력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말은 여행을 떠난 후 들뜬 기분이 조금 줄어들고 힘이 들거나 맘대로 안 될 때, 우리 머리에서 맴돈다. “우리 집이 최고야.”는 여행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짐을 거실에 던지면서 가족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다. 이렇게 우리는 늘 투덜거리면서도 또다시 떠나고 싶어 한다. 시간이나 돈이 없으면 가고 싶은 나라나 도시에 관한 책이라도 사서 본다. 알찬 여행이 되려면, 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사전에 더 많은 걸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데, 어떤 때는 이런 말이 피곤하게 들린다. 그냥 쉬고 싶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1882~1947)는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사람이다. 키가 157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단구短軀였지만, 그는 아주 지혜로웠고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시장이 되기 전에는 법원 판사로 있었다.경제 대공황大恐慌으로 미국인들이 춥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1930년 어느 겨울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던 한 할머니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즉결재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라과디아는 뉴욕시의 임시 치안 판사를 맡고 있었다.할머니는 실직한 사위가 가출해버린 뒤 병들어 누운 딸을 대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수원교도소의 교무과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목사님, 수원교도소에 한번 와주세요.”그때 내가 극동방송에서 방송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이분이 그 방송을 듣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가, 교도소에 들어온 잡지에서 다시 내 글을 보았다. 교도소에서는 반입되는 모든 우편물을 검사하는데, 한번은 ‘기쁜소식’이라는 잡지가 들어와 이분이 내용을 살피다가 거기에 내 글이 실린 것을 본 것이다. 이분이 잡지사에 내 연락처를 물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후, 생전 처음 교도소에 찾아가서 교무과장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
변곡점을 활용하자살아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는 변곡점은 자주 오지 않는다.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 변곡점이 오기 전과 후는 당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더 큰 위치에 올라갔을 때,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 얼마나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사람, 역량을 키우는 사람이 미래를 기회로 만들고 더 높이 성장한다.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과거의 사고와 지식으로만 살아가려고 한다면 사회에서는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3개월 정도 자
밖에서의 삶은 늘 부담스럽고 힘들다. 2001년에 기적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경찰서를 다니고 재판에 참석하고 또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들은 항상 나를 초조하게 했다. 사건이 종결되어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 더 많아서,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 문제를 내가 잘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가슴에 통증을 느끼거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이런 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기 변호사들도 느끼는 증상이었다. 그래서 우리 변호사들의 소
내가 대전에서 지낼 때, 교도소에 있는 한 재소자로부터 편지가 왔다.“목사님, 저는 살인죄에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16년을 보냈습니다. 이제 한 달 후면 출소하는데 목사님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오래 복역한 사람들은 출소해도 대부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얼마 안 지나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옵니다. 저도 출소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목사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이 편지를 받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원하는가? 내가 무엇을 도울
“아버지, 저희 잘 다녀오겠습니다.”“오냐, 우리 걱정 말고 몸조심해서 잘 갔다 오너라.”“아버님, 반찬은 냉장고 안에 다 뒀으니까 잘 챙겨 드세요.”“그래, 다녀오너라.”2007년 9월 초, 우리 부부가 의료봉사팀을 따라 약 일주일간 아프리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공원에 간다고 하셨다. 아직 낮에는 햇볕이 따갑고 더위가 가시지 않아, 나와 아내는 차로 공원까지 모셔다드리고 출발하겠다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바람도 쐴 겸 운동을 하시겠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최근 우리 주변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혼합되어 있다. 핸드폰으로 전화나 문자 송수신 그리고 사진 촬영 등의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종 앱을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분석해 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 사람도 있다. 농작물을 재배할 때도 70년대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농업을 공업과 서비스업, 거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전자상거래를 이용해서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사람도 있다. 은행 업무를 디지털화하여 핀테크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ATM과 대면 방식의 창구 이용
내가 어렸을 때 소원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다. 7월 초에 보리를 추수하고 11월에 벼를 추수했는데, 가을에 거둬들인 벼로 보리를 추수하는 7월까지 먹고살아야 했다. 하지만 5월이 되기 전에 쌀이 동나버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7월까지 나물이나 풀뿌리를 먹고 때로는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했다. 나는 7월에 태어났는데, 갓 거둬들인 보리를 먹을 때였다. 어쩌다 보리밥 위에 흰 쌀이 조금 덮여 나오는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지금 우리는 당시 대통령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산다. 삶이 정말 풍요로워
미국의 유명 내과의사인 디펙 초프라 박사는 시사주간지 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이자 *심신의학과 **대체의학의 권위자이다. 심신의학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그가 저술한 주요 저서들 중에서 , , 등은 전 세계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렸다.*심신의학心身醫學 : 육체의 질병을 단순히 육체적 원인에서만 찾지 않고 몸과 마음 양면을 검토하는 학문이다. 질병의 연구와 진단, 치료에 있어서
중학교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2개짜리 방을 3개로 만들어 나에게 자투리 방 하나를 쓰게 해 주셨다. 그전까지 나는 다락을 썼고, 마당 세면장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 앞에 앉은뱅이책상 하나를 놓고 있었다. 그곳엔 거의 쓸 일 없는 살림살이가 가득했고, 나무와 먼지가 섞여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새로 옮겨간 자투리 방도 볼품없고 방음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지만, 드디어 다락에서 해방이 되어 좋았다. 작은 방 한 면에 세워둔 큰 책꽂이에는 도서 외판원을 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팔던 전집이 꽂혀 있었는데 주로 위인전이었다.나와 책의 인연
결과는 과정의 모음이다성공, 목표달성, 성과…, 우리는 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과정이 없는 성공이나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의 내 모습은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 오늘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해져 만들어진다. 목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지만, 그 도달을 위한 중간 과정들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1,000m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한 발 한 발의 도약들이 100m가 되고 1,000m, 10,000m가 될 수 있다. 급하게 수익을 내기 위해 주식이나 비트코인, 부동산에 빠지
십수 년 전,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한 중년 부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교 말씀을 달게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 부인이 어느 날 나에게 면담을 청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목사님, 저는 2년 전에 이혼했습니다.”음악을 전공한 그 부인은 차분하고 성격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왜 이혼했는지 궁금했다.“왜 이혼을 했습니까?”“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요.”내가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합니까?”“목사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그 사람과 살아 봐요. 진절머리가 나요.”“내가 왜 그분하고 살아요? 내 아내하
3월이다. 봄이 왔다. 나는 매년 이맘때면 어린 시절 머리에 ‘빵꾸’ 난 일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긴 겨울 동안 동네 친구들과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미나리꽝이나 강을 찾아다니며 썰매를 타다가 얼음 두께가 얇아져 더는 탈 수 없을 때가 되면, 이젠 산에 올라가서 잣 치기를 하거나 새총 싸움을 하거나 칡을 캐면서 놀았다.이날도 친구들과 함께 동네 옆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오후 내내 실컷 놀다보니 해질녘이 되었다. 그때 동네 형이 말했다. “여기서 마을까지 누가 빨리 내려가나 시합하자.” 우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라면, 사회는 일하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습득하고, 회사는 일을 하며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학생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지식을 습득한다면, 직장인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어 제공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또한 학교는 혼자 모든 것을 터득해야 한다. 같이 공부를 하더라도 각각이 전체를 알아야 하는데, 회사는 나눠서 하되 합쳐서 결과를 낸다. 이외에도 학교는 돈을 내고 강의를 수강하고 공간을 사용하는 반면,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이다. 그렇다면 학생에서 직장인
겨울철 빙판길을 걷다 보니, 권순진 선생의 ‘낙법落法’이란 시가 생각난다.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 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훈련거듭해서 내쳐지다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아 안락하기까지 하다–이하 생략– 시인은 유도의 넘어지는 기술을 묘사하며, 몸이 바닥과 만나는 면적이 넓을수록 안전하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얼음판을 만났을 때 무조건 넘어지지 않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