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촬영을 하던 날, 마침 한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실로 간 김소은 원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았다. 항상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곳, 산부인과에서 우리는 인생의 첫출발을 시작한다. 그는 병원에서 종일 여성 환자들을 진찰하지만, 가운을 벗고 나면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로도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그를 만나 생명의 숭고함과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들어본다. 신생아 탄생이 원장님께는 매일 있는 일이겠네요. 임산부들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십니까? 임신해서 출산까지
겨울철 빙판길을 걷다 보니, 권순진 선생의 ‘낙법落法’이란 시가 생각난다.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 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훈련거듭해서 내쳐지다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아 안락하기까지 하다–이하 생략– 시인은 유도의 넘어지는 기술을 묘사하며, 몸이 바닥과 만나는 면적이 넓을수록 안전하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얼음판을 만났을 때 무조건 넘어지지 않으
뉴욕의 맨해튼에는 고층건물이 많다. 그렇게 높다란 빌딩 숲 가운데엔 나지막한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걷고, 달리고, 때로는 잔디밭에서 앉아 쉬거나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한 해에 4,200만 명이 방문한다는 이 공원의 이름은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이다.1850년대 초반, 뉴욕 주의 행정부는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할 공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도심에서 좀 떨어진 땅을 부지로 선정했고, 이곳에 미국 최초로 조경 공원을 만든다는 법까지 제정했다. 이어서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는
모든 길을 가볼 수는 없기에 우리는 어떤 길을 고른다. 선택한 길에 만족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 길을 계속 가려면 경험과 감정을 걸러낸 ‘마인드’라는 지도가 있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는 그를 만나 이 시대에 필요한 마인드와 역량이 무엇인지 들어본다. Q 얼마 전에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청소년 지도자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청소년을 어떻게 지도하십니까?세계 최고의 청소년 단체에 제가 소속해 있다 보니 이런 상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사단법인 국제청소년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열심히 일해 많이 벌었어요. 어릴 때 못해본 것들이 많아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실컷 샀고요. 행복한 줄 알았어요. 내 옷장은 좋은 옷들로 가득했지만 언제부턴가 내 마음은 텅 빈 폐허였어요. 무기력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죠. 예전에 배고팠던 시절을 생각하며 밥을 먹고, 빌려 입던 때를 기억하며 옷도 고르지만 별 감흥이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감사하지도 않고요.”아주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부유했지만 감사보다 불평불만의 소리가 컸다. 자신을 스스로 다독여 보려고 없이
이태 전, 서아프리카에서 마인드교육 단기 연수를 받으러 온 수십 명의 교수진이 코로나에 발이 묶여 5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학생들을 변화시킬 공부를 하러 왔다가, 정작 배우고 있던 교수들이 일제히 바뀌면서 이 교육의 즉각적인 실효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이번에 공식 방한한 조로 비 발로 장관도 마인드교육이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다. 회색 정장 차림의 조로 비 발로 장관이 단상 앞에 섰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로 연설이 시작되자, 수많은 청중이 그를 향해 귀를 세웠다. 울림
공자의 조카 공멸과 제자 복자천은 모두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조카에게 물었다.“그 일을 하면서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냐?”“얻은 것은 전혀 없고, 세 가지를 잃었습니다. 첫째, 일이 너무 많아서 학문에 힘쓸 수 없습니다. 둘째, 월급이 너무 적어서 친척들을 잘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업무에 쫓기다 보니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습니다.”얼마 뒤 공자는 제자 복자천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은 것이 세 가지나 됩니다. 첫째, 글로 알던 것을 실행해 보면서 배운
지난 7월, 글로벌 온라인 행사에서 제복 차림의 그가 연설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짤막한 스피치에도 단호한 목소리와 형형한 눈빛이 살아 있어 군인정신을 떠올려 주었다. 군인정신이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과 용기,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애국정신을 말하는데,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구 1억 명이 넘는 필리핀의 치안을 책임지는 그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매일의 일정이 촘촘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지 특파원이 직접 찾아뵙고 인터뷰를 했다. 한국에서는 경찰이 인기
시장에 가서 과일 한 상자를 샀다. 위에는 아주 튼실하고 잘 생긴 것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작고 맛도 덜해 보이는 것들이 골판지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었다.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먹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데, 아래칸의 왜소한 녀석들을 보니 순간 내가 잘못 골랐나 싶었다. 과일 상자를 선선한 베란다에 놓고 돌아나오면서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생각해 보았다. 물건의 가치를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들, 예컨대 크기나 빛깔, 모양새, 냄새 같은 것으로 가늠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기저에는 다시, 열등한 것이 하필 왜
‘코이’라는 신기한 물고기는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크기가 달라진다. 어항에서는 손가락 길이로 자라고, 연못에서는 손바닥 크기 정도로, 강에서는 양팔 길이까지 자란다. 어항 속 코이가 연못에 처음 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넓은 곳을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들을 보고 두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다 강으로 가면 코이는 더 놀랐을 것이다. 어항 속에서는 누릴 수 없는, 넓고 깊은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세계도 코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항처럼 좁은 마음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못이 전부인 양 신나게 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 ‘나미비아’는 그곳 현지어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사막은 마치 광대한 모래 바다와 같다.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여덟 배 넓으나 인구는 대구시 규모인 250만 명이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인적까지 드문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은 다른 길을 모색했다. 자연환경에 의존해 살아가던 전통 방식에서, 누구도 섣불리 가기 어려운 방향으로 생각을 돌린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고등교육 개발과 우주산업 부처를 신설하는 것이었다. 초대 장관으로 임명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에 뜨거운 열풍으로 온몸의 수분이 말라가면 신기루 현상이 나타난다. 간절히 원하는 오아시스, 물이 있고 나무 그늘이 있는 그곳이 실재처럼 보이는 것이다.사막 여행자들은 신기루가 보이면 “저건 오아시스가 아니야. 가면 안 돼!”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런데 갈증이 너무 심하고 피로가 쌓이면, 신기루인지 알면서도 ‘오아시스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으로 생각을 바꾼다.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원한 물이 절실하고 땡볕을 가릴 그늘이 필요하니까, ‘저건 오아시스일 가능성
기본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뭔가 특출해야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본 메뉴보다 유니크한 것을 더 선호한다. 음식도, 디자인도, 수업도, 커피도 특별해야 더 열광한다. 하지만 고수의 세계는 결국 기본이다. 기본이 단단해야 변주도 멋진 법이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 가보면 지상에 있던 목조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를 지탱해준 초석만 남아 있다. 초석은 옛 건물의 구조를 추정·복원하는 데 기본이 되는 중요자료다. 인간 사회에도 초석 같은, 기본을 갖춘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다들 사라져도 그 시대를 아우르며 사상이나 신념
학교에서 치르는 모든 시험은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답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는 출제 대상에서 제외되며, 수험생은 답이 있는 문제들을 최대한 빨리 풀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수시로 ‘노답’ 문제에 직면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인생의 문제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알아차린다.이때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 어렵거나 힘든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인 뒤 그것을 풀 수 있는 힘이나 지혜를 찾는다. 그 사람은 무엇을 받아들이려는 수용력受容力이 뛰어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생을 ‘의자뺏기 게임’으로 표현했다. 사람보다 의자 갯수가 적어서 서로 앉으려고 밀치고 다투는 게임이다. 그런 인생살이에서 손해 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살다 보면 줄곧 손해나는 날도 있지만, 예기치 않게 이득을 보는 날도 있다. 득실得失이 존재하려면 먼저 ‘나’와 ‘너’라는 둘 이상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둘 사이에 유형.무형의 거래가 오가야 하고, 그 거래가 동등.평등.균등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야 득과 실이 생긴다.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는 득과 실을 재빨리 셈하려는 습성
“우리의 우정 영원토록 변치 말자!”중학생 때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마지막에 썼던 문구다. 변치 않을 우정을 다짐했지만 세월 속에 그 약속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것을 딱히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그때 소중했던 우정은 지금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버렸고, 우정이 있던 자리엔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위해 우리는 또 열심히 달려간다.요즘 지속가능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경제, 환경, 건강 등 여러 분야에서 좋은 상태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행복하게 산다고 주변에서 추천해준 여러 가족들을 찾아 취재에 나섰다. 자기 분야에서 소신껏 일하며 주말 부부로 신혼처럼 사는 커플을 인터뷰하고, 맛집으로 소문난 국숫집 사장님의 효자 아들도 만났다. 이어서 십년 넘게 한집살이를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는 둘만의 대화 비결을 들었다. 부러울 만치 사이가 다정한 이들의 이야기에 ‘완전한 가족’의 원형原型이 존재할 것 같았다.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땅은 편평하고 차분해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보면 험준한 산이 있고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 사이로 시간이
혼자 사는 분이 요즘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생각보다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그렇게 혼자 아프다 죽으면 누가 알겠어요? 연락 좀 하시지….”“사람이 염치가 있지, 어떻게 얘기를 또 해요?”도대체 염치가 뭐길래, 그분은 어려운 상황에도 민폐가 될까 봐 주변에 알리지 않고 있는 걸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되는 염치廉恥는 사전적으로 ‘체면을 차리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뻔뻔하게 행동하는 인간을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 생명이 위급할 때에도 염치
어르신들은 손주뻘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으신다. 나도 그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다. 이젠 두 딸을 두고 있는데, 격려어린 그 덕담을 선뜻 대물림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을 따라 걸어보았기 때문일까? 누구든 학창 시절에 ‘열심히’를 다짐해도, 공부머리가 없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고 가정 형편상 그만둘 때도 있다. 어쩌다 ‘열공’의 문턱을 넘었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우리는 성적이 성공을 보장해주고, 성공의 옆자리에 행복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배워
밖으로부터 지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는다.절친한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며 한 독자가 고민을 보내왔다.“대학에 입학해 사귄 동갑내기 친구와 마음이 잘 통했다. 3년 동안 붙어 다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인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내 성격 탓이 컸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 ‘내일 굶어도 오늘은’ 하면서 한턱을 내고 친구의 환심을 사려 했다. 그러다 뭔가 기분 나쁜 날은 온갖 짜증을 부렸다. 가끔 친구가 나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면 욱 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