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뉴욕 하면 떠오르는 4가지는 키워드는 산책, 애완동물, 커피, 문화이다. 문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셀 수 없이 촬영한다. , , 과 같이 고전 명화부터 영화 제목에 주인공처럼 뉴욕이 장식되기도 한다.날마다 꿈을 펼치기 위해 활보하는 뉴욕의 거리에는 언제나 촬영이 진행
사실 콜럼버스 이전에 미국을 발견한 이가 있었다. 이탈리아 사업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유럽에는 이미 콜럼버스의 항해보다 그의 항해가 알려져 있었다. 1507년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세계지도에 이탈리아 사업가의 공을 기념해 이름을 새겨넣은 넣은 것이 콜럼버스가 아닌 아메리카였다. 아메리카 발견 이후 유럽의 청교도들과 귀족, 노동자와 많은 사람이 아메리카로
현재 방송국 뉴스 팀장을 맡고 있는 송태진 씨는 2008년 당시 아프리카 부룬디 해외봉사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아南兒였다. 해외봉사 이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가 가장 소중한 추억을 대학생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편집부 문을 두드렸다. 그의 힐링 스토리를 전한다. 인생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행복해지려는
김영은은 13년 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에 이민했다. 5년 전부터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와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턱관절이 심하게 비뚤었던 그는 올해 2월 턱 관절 수술을 위해 우연히 한국을 방문. 통원치료를 위해 남아 굿뉴스코 활동을 하며 올 한 해를 보냈다. 그는 요즘 “건강이 안 좋았던 것은 불행이지만, 한국에서 많은 걸 배울
건축가들이 설계도를 그린 후 집을 짓듯 사람들도 마음에 저마다의 그림을 그린다. 발달장애와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던 대학생 이윤섭은 이제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운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노라고. 저 넓은 창공에 무지개빛 청춘을 그리는 그를 소개한다. 소년은 어릴 적 조산아로 태어나서 발달장애를 겪었다. 부모님의
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는 병원에 가고, 동생은 일가 친척집에 맡겨져 있었지. 그래서 혼자 열쇠를 목에 걸고 학교를 다녀와 문을 열고 들어섰을 아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나면, 너 혼자서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 와서 가방을 놓고 공부하다가 앞집 우성이 아줌마한테 저녁을 얻어먹었지. 넌 그렇게 학교를 다녔는데 기억나니? 그 외에도 엄마의
2008년은 중국의 환경이 상당히 열악했다. 특히 기차를 타보면 사람이 가득 찬 구간에서는 물을 뜨러 나가는 게 여간 쉽지 않다. 기차 안에 같이 타고 있던 중국인들이 무슨 약속이나 한 듯 컵라면을 착착착 전달하면 수도꼭지 근처에 있는 사람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물을 담아서 컵라면을 준 사람에게 다시 돌아오는 일사불란한 공동체 의식이 신기할 정도
개그 중 이 요즘 핫 하다. 연애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낸 썸과 쌈(사랑이냐 싸움이냐)의 스토리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조용한 물리학도로 숫기 없던 한 청년이 중국을 사랑해 ‘썸’을 타게 된 사연이 있다. 급기야 전공까지 중국어학과로 바꿔서 몰입했다. 현재 대학교 4학년인 이영표 씨는 중국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 외국어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다.
중국의 기업인들 중국과 왜‘썸~’탔을까?“중국하면 사람이다!” 강서림(취준생)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는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사기꾼과 나쁜 짓만 하는 사람들’이란 유언비어가 많다. 하지만 내가 만난 중국 사람들은 대륙의 기질을 가진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어디서나 쉽게 친해질 수 있고, 때론 한국인보다 순수하게 느껴지는 건
개발도상국이면서 사춘기의 홍역을 앓고 있는 중국. 그런 중국이 기지개를 펴고 세계 정상을 향해 10년째 마라톤 중이다. 2~3시간 거리를 옆 동네라고 표현하는 중국인. 때로는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리지만 자존심과 과시욕 속에 사회적 책임이 뛰어난 기업을 선호하는 두 얼굴의 중국인. 하지만 그런 중국인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해 핑크빛 중국 사업에 낭패를 보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둘 점검하게 되는 시기이다. 전진희 양은 지지난달 소원했던 ‘교환학생’이 되었다. 현재 한국 교민들을 위해 틈틈이 통역활동을 하는 등,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침을 거른 사람들은, 식사하며 설명을 들으세요~!”대만 생활은 학기 첫 수업부터 내 고정관념을 무너트렸다. 곰실곰실, ‘향차이(
내가 인도로 간 세 가지 이유내가 해외봉사 파견국으로 인도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건축업을 하셔서 나는 중국에서 5년 정도 생활했고, 중학교도 중국에서 마쳤다. 내가 중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것은 ‘인구가 많은 나라는 대개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해서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심과 마을, 산, 강, 들판 어딜 가도 사람이 없는 곳이 없으며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문화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인도. 1년 동안 다양하고 재미있는 갖가지 봉사활동을 하며 봉사단원들이 얻었던 수많은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오랜 가식을 벗었던 인도 시간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동경했지만 정작 자신은 가식뿐이라 괴로워했던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봉사했던 영국은 1년의 반은 비가 왔을 정도로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나머지 화창한 날들은 한국보다 더 날씨가 좋았다. 봉사하는 동안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보람되고 뜻 깊게 마쳤기 때문에 ‘우중충한 영국’이 아닌 ‘화창한 영국’으로 기억된다. 한국어 클래스와 양로원에서의 추억내 기억에 가장 즐거웠던 봉사는 고등학교
#1. 공연 무대 설치 (2013.2~2013.5)무릎 깊이만큼 눈이 내렸던 2월. 한국에서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다. 당장 5월에 굿뉴스코 영국지부에서 공연될 굿뉴스코 공연 무대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 시차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지만 온종일 페인트칠을 하고 스티로폼 조형물을 다듬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들이 모인 곳, 서부 유럽! 하지만 그곳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부터 인생의 노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는 노인들까지…. 진심을 담아 봉사하는 동안 인생의 꿈도 찾은 세 청년의 이야기! 내 귀를 솔깃하게 한 굿뉴스코 해외봉사2010년 대학에
무더운 여름이 저물어가던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Light House Pictures 스튜디오. 찰칵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 지 몇십여 분이 흘렀을까.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모델 일에 잔뜩 긴장해 있었던 수현 씨의 자세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해외 봉사를 하며 보냈던 1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어요!”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세트장
해외봉사는 봉사국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기도 한다. 조영준 씨는 인도 해외봉사를 떠나서 그 인생에 꼭 필요한 전환점을 만났다. 2011년 2월 초, 조영준 씨는 인도 캘커타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밖으로 향하는 문을 지나고 있었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무거운 짐 가방을 메고 출국장에 다다랐을 때 그는 느꼈다.‘덥다!’그리고
2012년부터 굿뉴스코 미국 해외봉사단원들은 ‘아이티에 희망을Deliver Hope to Haiti‘이라는 모토로 지진으로 무너진 아이티로 영어캠프 봉사를 떠난다. 아이티 학생들에게 영어캠프는 새로운 언어에의 도전을 넘어 삶에 희망을 주는 캠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는 6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미국 전 지역에서 모인 304명의 봉사자들과 아이티
스물아홉, 1년을 해외에서 보내다 오기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20대의 마지막 해를 뜻깊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한 임영광 씨. ‘인도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마인드 힐링 스토리를 듣고 우리도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보자. 더럽고 냄새나고 고생만 하다 온 나라에 다시 가고 싶다니?임영광 씨가 처음 굿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