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함과 의욕, 삶의 교훈까지 주는 삼국지 속 전쟁 이야기‘삼국지’에는 전쟁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하고많은 전쟁들은 단순히 병력의 많고 적음에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보잘것없는 전력戰力이지만, 이를 규합하고 힘과 마음을 모아 강적들을 쳐부순 싸움들을 ‘삼국지’에서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갈량의 데뷔전이자 유비군 3천이 조조군 10만을 물리친 ‘박망파 전투’, 조조가 특유의 속전속결 전법과 치밀한 용병술로 원소의 10만 대군을 무찌른 ‘관도대전’, 삼국시대 가장 유명한 싸움인 ‘적벽대전’ 등이 그것입니다
변곡점을 활용하자살아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는 변곡점은 자주 오지 않는다.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 변곡점이 오기 전과 후는 당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더 큰 위치에 올라갔을 때,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 얼마나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사람, 역량을 키우는 사람이 미래를 기회로 만들고 더 높이 성장한다.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과거의 사고와 지식으로만 살아가려고 한다면 사회에서는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3개월 정도 자
밖에서의 삶은 늘 부담스럽고 힘들다. 2001년에 기적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경찰서를 다니고 재판에 참석하고 또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들은 항상 나를 초조하게 했다. 사건이 종결되어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 더 많아서,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 문제를 내가 잘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가슴에 통증을 느끼거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이런 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기 변호사들도 느끼는 증상이었다. 그래서 우리 변호사들의 소
내가 대전에서 지낼 때, 교도소에 있는 한 재소자로부터 편지가 왔다.“목사님, 저는 살인죄에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16년을 보냈습니다. 이제 한 달 후면 출소하는데 목사님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오래 복역한 사람들은 출소해도 대부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얼마 안 지나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옵니다. 저도 출소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목사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이 편지를 받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원하는가? 내가 무엇을 도울
얼마 전 ‘소철’을 그렸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이 시어머님 집에서 함께 살던 때가 떠올라서였다. 어머님은 평소에도 화초를 좋아하셔서 볕 잘 드는 베란다엔 무슨 꽃인지도 모를 꽃들이 늘 피어있곤 하였다. 그중 제일 오래되고, 큰 화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소철이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은퇴하시며 회사에서 가지고 오신 화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 겨울, 나는 소철을 거실로 들여놓았는데 웬걸, 잎이 시들시들 누레지더니 심지어 다 말라버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나에게 어머님은
예전에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자기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들이 각자 어디서 생활하든지 서로 그리워하고 연락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다. 휴대전화기가 없던 시절, 귀가하는 길에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동전을 갖고 다녔다. 자식은 부모님의 삶의 목적이고, 부모님의 평안은 자식에게 편안한 사회생활을 영위케 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경아는 마음이 참 따뜻한 여학생이다. 선교사이신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아프리카 베냉에서 자랐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까지 대가족을 이루며 다 같이 살았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6살 때까지, 나는 아버지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누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라고 물어보면, “미국에 계세요.”라고 답했다.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는데, 온 가족이 모여 “언제까지 효상이한테 아버지가 미국에 가 있다고 할거냐?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이야기해줘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나를 보러 오지 않는 아버지가
“아버지, 저희 잘 다녀오겠습니다.”“오냐, 우리 걱정 말고 몸조심해서 잘 갔다 오너라.”“아버님, 반찬은 냉장고 안에 다 뒀으니까 잘 챙겨 드세요.”“그래, 다녀오너라.”2007년 9월 초, 우리 부부가 의료봉사팀을 따라 약 일주일간 아프리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공원에 간다고 하셨다. 아직 낮에는 햇볕이 따갑고 더위가 가시지 않아, 나와 아내는 차로 공원까지 모셔다드리고 출발하겠다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바람도 쐴 겸 운동을 하시겠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최근 우리 주변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혼합되어 있다. 핸드폰으로 전화나 문자 송수신 그리고 사진 촬영 등의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종 앱을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분석해 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 사람도 있다. 농작물을 재배할 때도 70년대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농업을 공업과 서비스업, 거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전자상거래를 이용해서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사람도 있다. 은행 업무를 디지털화하여 핀테크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ATM과 대면 방식의 창구 이용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한 이 시대에 프로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운동 실력 이상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다. 팬 서비스는 자신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해주는 이들에게 화답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데, 주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거나 경기 후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선수와 시선을 맞추고 사인을 받은 ‘그 일’이 평생의 추억이 되고, 꿈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나는 시간을 내 운동장에 찾아가서 축구 경기를 본 적은 없다. TV로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정도인 평범한 팬이다.
(예루살렘=장주현 글로벌리포터)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3일(화) 밤, 예루살렘 통곡의 벽 광장에서 열린 이스라엘 군 전사자와 순국 희생자를 위한 행사에서 개회 연설을 했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기적 같은 하나의 이름’, 에후드(Ehud)라는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전사자에 대해 언급했는데, 1955년 가자지구 ‘블랙 애로우 작전’에서 전사한 에후드 샤하르와 그의 이름을 그대로 받아서 에후드 라는 이름을 사용한 또 다른 세 명의 에후드를 언급하며 순국 희생자들을 기념했다.에후드라는
어린 시절 5월은 가정의 달이었다. 이맘때면 가족이 함께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돗자리에 앉아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보냈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이 넘은 나의 5월은 차가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는 모습이다. 그리고 부담스러운 아버지와의 통화를 뒤로 미루고만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투 샷 커피보다 더 쓴지, 핸드폰 화면의 통화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했다.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영화를 한다. ‘빅 피쉬’, 제목을 보니 어릴 적에 어머니가 ‘마음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그 당시 내게는
내가 어렸을 때 소원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다. 7월 초에 보리를 추수하고 11월에 벼를 추수했는데, 가을에 거둬들인 벼로 보리를 추수하는 7월까지 먹고살아야 했다. 하지만 5월이 되기 전에 쌀이 동나버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7월까지 나물이나 풀뿌리를 먹고 때로는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했다. 나는 7월에 태어났는데, 갓 거둬들인 보리를 먹을 때였다. 어쩌다 보리밥 위에 흰 쌀이 조금 덮여 나오는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지금 우리는 당시 대통령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산다. 삶이 정말 풍요로워
미국의 유명 내과의사인 디펙 초프라 박사는 시사주간지 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이자 *심신의학과 **대체의학의 권위자이다. 심신의학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그가 저술한 주요 저서들 중에서 , , 등은 전 세계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렸다.*심신의학心身醫學 : 육체의 질병을 단순히 육체적 원인에서만 찾지 않고 몸과 마음 양면을 검토하는 학문이다. 질병의 연구와 진단, 치료에 있어서
중학교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2개짜리 방을 3개로 만들어 나에게 자투리 방 하나를 쓰게 해 주셨다. 그전까지 나는 다락을 썼고, 마당 세면장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 앞에 앉은뱅이책상 하나를 놓고 있었다. 그곳엔 거의 쓸 일 없는 살림살이가 가득했고, 나무와 먼지가 섞여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새로 옮겨간 자투리 방도 볼품없고 방음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지만, 드디어 다락에서 해방이 되어 좋았다. 작은 방 한 면에 세워둔 큰 책꽂이에는 도서 외판원을 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팔던 전집이 꽂혀 있었는데 주로 위인전이었다.나와 책의 인연
결과는 과정의 모음이다성공, 목표달성, 성과…, 우리는 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과정이 없는 성공이나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의 내 모습은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 오늘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해져 만들어진다. 목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지만, 그 도달을 위한 중간 과정들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1,000m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한 발 한 발의 도약들이 100m가 되고 1,000m, 10,000m가 될 수 있다. 급하게 수익을 내기 위해 주식이나 비트코인, 부동산에 빠지
헤르만 헤세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를 비롯해 등 유명 작품을 남겼다. 그중 장편소설 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헤세는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수도원에 입학했지만, 시인을 꿈꾸며 7개월 만에 도망쳐 나온다. 이후 서점 직원과 기계 공장의 수습 직공으로 일했으며, 한때 신경쇠약증에 걸리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헤세의 삶과 닮은 소설 주인공의 이름은 ‘한스 기베란트’이다. 그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당시 부자가 아닌 집안의 재능 있는 아이에
십수 년 전,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한 중년 부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교 말씀을 달게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 부인이 어느 날 나에게 면담을 청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목사님, 저는 2년 전에 이혼했습니다.”음악을 전공한 그 부인은 차분하고 성격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왜 이혼했는지 궁금했다.“왜 이혼을 했습니까?”“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요.”내가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합니까?”“목사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그 사람과 살아 봐요. 진절머리가 나요.”“내가 왜 그분하고 살아요? 내 아내하
3월이다. 봄이 왔다. 나는 매년 이맘때면 어린 시절 머리에 ‘빵꾸’ 난 일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긴 겨울 동안 동네 친구들과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미나리꽝이나 강을 찾아다니며 썰매를 타다가 얼음 두께가 얇아져 더는 탈 수 없을 때가 되면, 이젠 산에 올라가서 잣 치기를 하거나 새총 싸움을 하거나 칡을 캐면서 놀았다.이날도 친구들과 함께 동네 옆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오후 내내 실컷 놀다보니 해질녘이 되었다. 그때 동네 형이 말했다. “여기서 마을까지 누가 빨리 내려가나 시합하자.” 우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라면, 사회는 일하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습득하고, 회사는 일을 하며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학생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지식을 습득한다면, 직장인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어 제공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또한 학교는 혼자 모든 것을 터득해야 한다. 같이 공부를 하더라도 각각이 전체를 알아야 하는데, 회사는 나눠서 하되 합쳐서 결과를 낸다. 이외에도 학교는 돈을 내고 강의를 수강하고 공간을 사용하는 반면,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이다. 그렇다면 학생에서 직장인